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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G 보상 휴일. 이렇다 할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빈둥거리며 보냈다. 잠도 푹 자고. 오전에는 롯데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그래봤자 우유라든가 치약이라든가 몇 가지 샀을 뿐이지만. 곧 추석이라, 점원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추석 선물 세트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햄 세트라든가 샴푸 세트 같은 것들을 사보라고 권하는데, 이런 게 추석 선물로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가령 내가 누군가로부터 샴푸 세트를 선물 받는다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까.

롯데마트 다음에 들른 곳은 관저동 가구단지. 여기서 책장 하나를 주문했다. 방에 책장이라고는 달랑 하나 있는데, 책과 술 기타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서 방바닥에 책들이 나뒹굴고 있는데, 이 꼴을 더 이상 용인할 수가 없었다. 폭 1m 20에 3 X 3 칸짜리다. 술병들을 옮겨놓고 보니, 제법 훌륭한 술 진열장이다.

한 달 만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악기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악기를 사고서 한 번도 점검을 받은 적이 없구나. 이런 무심함이라니. 악기를 제작한 공방에 들고가는 게 제일 좋겠지만, 일단 선생님에게서 대전 시내에 있는 악기사 한 곳을 추천 받았다. 활 털도 교체할 겸 내일 들고 가봐야지.

레슨 내내 나의 모차르트 연주를 불만스럽게 여기던 선생님은 결국 모차르트 포기 선언을 하셨다. 아주 완곡하게 돌려서 말했지만, 해석하면 “모차르트 할 실력이 안 된다.”겠지. 대신 다른 곡을 해보자는데, 하고 싶은 거 아무거나 말해보라고 도발을 해서 “브람스 소나타 1번이요.”했더니, 그건 또 안 되겠다고……. 아니 나도 될 거라고 생각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고. 그러면서 브루흐는 어떠냐는데, 아니 무슨 브루흐. 아무리 생각해도 브루흐가 모차르트나 브람스보다도 훨씬 어려울 것 같은데. 선생님 말로는 낭만파 곡을 만지면서 소리 내는 법, 표현하는 법을 좀 익혀야 할 것 같다나. 아무튼 무슨 곡을 하게 될 지는 여전히 미정이지만, 조만간 낭만파 협주곡 하나 들어가긴 할 것 같다. 모차르트는 한 2년 쯤 후에 다시 도전해야지.

선생님이 노은동 쪽에 연습실을 마련한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 월 8만원이나 내고 대여하고 있는 클라리넷 학원 대신 저렴한 가격에 자기 학원 연습실을 대여 해 주겠단다. 나로서는 잘 된 일이지. 다음 레슨은 일단 다음 주 수요일로 잡아 놨다. 그 다음 주부터는 연이어 통역 출장을 나가게 될 것 같아, 또 다음 레슨을 기약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복싱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권투’말이다. 원래부터도 심각한 운동 부족이었지만, 본부로 옮긴 이후로는 정말 서 있는 시간도 없이, 늘 앉아서만 생활하다보니 살은 찌고 몸은 둔해지기만 한다. 복싱을 잠깐 배운 친구가 줄넘기를 추천 해 줬지만, 몇 번 하다가 포기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악기 연습 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칵테일도 만들어 마시는 자율적인 인간이지만, 도저히 운동만은 자율적으로 못 하겠다. 결국 난 나를 강제로 운동하게끔 해 줄 곳에 몸을 투신해버렸다. 원래는 테니스를 배우고 싶었지만(고등학교 때 잠깐 배운 적이 있다), 집중적으로 운동하며 살도 빼고 민첩성을 기르기에는 복싱이 더 나을 것 같아서, 바이올린 연습실과 가까운 곳에 있는 체육관을 찾아가 등록했다. 첫 날은 줄넘기와 뒷짐 지고 제자리 뛰기. 둘째 날은 3:1 뛰기(3번 제자리 뛰기 후 1번 앞으로 점프 했다가 다시 뒤에서 3번 뛰기 반복), 오늘 겨우 주먹을 쥐었다.

일단 시작은 했는데,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다. 아주 지루한 게 딱 내 스타일이긴 하지만(지루한 걸 견디는 것은 천성인 모양이다), 원래부터 하고 싶었던 운동은 아니니, 일단 올해까진 열심히 해서 살 빼고 민첩성을 기른 다음, 내년에는 정말 테니스를 시작해볼까 싶다. 하지만 모르지. 이러다 또 복싱의 매력을 알아서 빠지게 되면, 바이올린처럼 평생 쭉 하게 될지도.

본의는 아니지만, 아무튼 매우 바쁜 생활을 하게 됐다. 6시 40분에 기상, 7시 5분에는 보통 출발한다. 공식적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 적당히 5시 5분이나 10분쯤 일어나서 퇴근한다. 방으로 돌아오면 보통 5시 40분쯤. 저녁 먹고 쉬다가 7시에는 바이올린 연습을 하러 나가야 한다.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 딱 두 시간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나면,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체육관으로 간다. 여기서 대략 1시간 내지 1시간 반 정도 운동하면 11시다. 방으로 돌아오면 11시 반. 개운하게 샤워하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12시다. 운동을 떠나서, 이런 생활을 지속하면 살이 안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체력이 버텨주려나.

일찍 자야겠다.

2011/09/08 00:55 2011/09/08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