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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우동이 포함되어 있는데도 젓가락을 챙겨주지 않는, 이상하고 또 맛없는 돈가스 정식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모든 상황은 순조로워보였다. 딱딱하고 질긴 겉껍질, 그리고 차갑게 식어 떡처럼 찐득찐득해져버린 타코야키를 씹는 순간, 불행의 전조는 찾아왔다. 이걸 쓰레기통에 처넣어야 할지, 판매자의 얼굴에 집어던져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은 내 뱃속에 다 털어 넣었다. 그래도 아직은 모든 것을 낙관할 만 했다. 하늘은 맑았고, 인공 연못 위에서 부서진 빛이 다시 커다란 유리창을 투과하고 들어와, 창가에 앉아 빵을 먹고 있는 7살 남짓 꼬마의 얼굴에 어른거릴 정도로, 정오의 나이를 조금 넘긴 태양의 햇살은 한창 싱싱했다. 부임 후 처음으로 제대로 누리는 금요일 오프. 긴 주말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낙관, 푹신한 소파와 달콤한 낮잠의 유혹에, 나는 심상치 않은 엔진 소리의 예언과 차갑게 식어버린 타코야키의 결정적인 경고를 무시하고 말았다. 시동을 걸었다. 스피커에서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5중주 2악장의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차는 심상치 않게 한 번 부르르 몸을 떨고,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휴게소 출구에 주유소가 보였다. 거의 바닥을 치고 있는 연료 게이지를 보고, 다시 한 번 주유소를 보았다. ‘기름을 넣고 갈까.’ 망설임 속에서 잠깐 차를 멈췄다. 차 안은 너무 따뜻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그리고 피아노의 선율이 엮어내는 푸가는 몽환적이었다. 강아지도 늘어지게 잠드는 따스한 창가, 푹신푹신한 소파, 길고 여유로운 주말……. 사르르 잠들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잠들었다.

마치 잠들듯, 소리 없이 시동이 꺼진 차는,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 내 차는 고속도로로 빠져나가는 출구와 주유소 입구의 중간 지점에서 이제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아침마다 한 번에 깨어나기를 거부하며 꼭 ‘5분만 더’를 외치는 애처럼 굴었던 자동차. 정지선에 멈출 때마다 한 생명체가 마지막 호흡을 내쉬듯 바들바들 떨었던 엔진. 그러나 차갑게 식어버린 타코야키처럼 신비주의적이며 사람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켜쥐고 지배해버리는 강력한 불행의 징조가 또 있을까. 시간에 대한 낙관,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으로 ‘여유를 만끽한다’는 것을 실천해보려고 했던 안일한 생각으로 머릿속에 타코야키에 대한 생각만 가득 품은 채 아직 한가롭던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휴게소로 방향을 튼 순간, 나는 스스로 불행의 씨앗을 심어버렸던 것이다.

그리 길지도 않은 운전 경력에 두 번째로 견인차에 올라탔다. 내 현재 신분이 군인이라는 사실은, 낯선 성인 남성과 친근하게 이야기 나누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받았던 훈련, 지금도 뺨이 얼얼하고 정강이가 시큰거리는 것만 같은 구타의 기억, 기상천외한 무용담……. 그 어떤 것도 나의 개인적 체험과는 무관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에 공감을 하고 맞장구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남자들이라면, 군대에 관한한 육체의 경험이 아니라 영적인 체험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죠.”라고 하든 “그래도 군대는 군대죠.”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 있으랴.

가끔 개도 같이 올라와 자는, 딱 내 키에 맞고 배게 대용인 푹신푹신한 쿠션이 있는 집의 소파 대신, 카센터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G20 정상회의 내용으로 도배된 신문이나 강간범 잡으러 다니는 내용의 TV 프로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자니, 직원 한 사람이 전날 대만 여행에서 돌아온 부인의 선물이라며 구진남(舊振南 Ziu Zhen Nan;대만 특산품으로 유명한 케이크 과자) 하나를 주었다. 혀 위에 그 부드러운 촉감과 달콤함이 녹아들 때에, 나는 나중에 내가 얼마를 청구 당하게 될 지 짐작도 못 했다. 내 차는 겉보기에는 바뀐 것이 없었다. 조금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깨어있다는 증거로 별로 듣기 좋지는 않은 거친 엔진 음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20만원 가까이 지불했고, 주인은 오래 기다렸다며 사은품으로 LED 라이트가 달린 조그만 키홀더를 주었다.

해가 기울었다. 혀 위에 달콤함의 여운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린 과자처럼, 아름다운 환상으로 부풀었던, 모처럼 따스한 햇살 속의 금요일 정오부터 해질녘까지의 시간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서울로 향하는 차들로 꽉꽉 막힌 영동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불과 몇 시간 전에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던 내 모습이 꿈이 아니었는가 생각해봤다. 끝없이 늘어선 자동차들의 붉은 미등, ‘정체, 정체, 정체’라 표시된 안내 전광판, 아슬아슬한 차선 바꾸기를 거듭하면서도 끝끝내 내 주위를 벗어나지 못 하는 검은 승용차. 이 기시감의 끝은 항상 이렇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이미 바닥도 차갑게 식어버린 집 안으로 들어가 소파 위로 쓰러진다. 창가로 환한 빛이 들어오는 따스한 날에는 가끔 개도 함께 올라와 자는, 그 푹신푹신한 쿠션이 놓여있는 소파에.

2010/11/15 20:06 2010/11/15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