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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운동과 독서와 음악 감상과 바이올린 연습과 글쓰기를 모두 할 수는 없겠지. 군인이라서가 아니고, 게을러서 그렇다. 지금은 백수가 된다고 해도 건전하게 살 자신이 없다.

아무튼 오늘은 스포츠 센터 중강당에서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요새는 이상하게 중강당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장소 선점하기가 쉽지 않다. 어제는 웬 남자가 음이 1도 가까이 내려간 낡은 피아노 앞에 앉아있더라니까. 설마 그 피아노로 뭘 연습이라도 하려는 걸까 싶어, 문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운동도 하려고 운동복도 챙겨가긴 했는데, 룸메이트와 곪고 곪은 상처를 터트리며 제대로 푸닥거리 한 판 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다 헛되이 써버려, 결국 운동은 못 했다. 이래서 누구와 함께 사는 건 안 된다. 난 결점 많은 인간이거든. 그리고 난 성격도 괴팍해서 멍청한 것, 게다가 겸손할 줄 모르는 것, 의사소통 능력마저 없는 것, 그리고 2천년을 이어온 기독교도의 음습한 습성의 하나로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외부의 것들까지 그 안으로 끌어들여 끼리끼리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 따위는 용서를 못 하거든.

인간은 누구나 조금은 자아도취적인 상태에서 인생을 살지만, 자기가 만들어낸 환상 속의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정말 꼴불견이다. 나로 하여금 그런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은, 타인의 객관적인 시선에 대한 의식이다. 사무실 사람들이나 군대 동기들이나 학교 동창들이나 오다가다 마주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고, 이 세계에 실제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 지성인들의 시선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신앙이라면 신앙인데, 내 신앙의 대상은 신처럼 관대하지 않기 때문에 반 푼의 달란트를 가지고 안하무인격으로 설치는 꼴은 용납을 하지 않는다. 나는 몽테스키외 같은 사람에게서 “그는 자기가 바보라는 사실을 대대손손 알리기 위해 그런 멍청한 글을 썼지.” 같은 평가를 듣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게 취한 사람들은 곧잘 그런 멍청한 말들을 흘린다. 가련하게도.

2010/11/17 22:58 2010/11/17 2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