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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Joseph Noel Paton (1821?1901) The Reconciliation of Titania and Oberon. Oil on canvas, size 30 x 48.5 inches,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부수음악(附隨音樂)이라는 장르가 있다. 영어로는 Incidental Music이라고 한다. ‘부수’라는 단어는 흔히 우리가 ‘무엇에 따라오는’이라는 의미로 쓰는 ‘부수적인’이라는 표현의 그 부수가 맞다. 그러므로 ‘부수음악’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무언가에 붙어서 따라오는 음악’이 된다. 그렇다면 부수음악은 본래 독립적인 연주를 목적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란 얘기가 된다. 부수음악의 본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흔히 연주회용 서곡으로 알고 있는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은 원래 부수음악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에그몬트 서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극음악(劇音樂) ‘Egmont Op. 84’의 첫 번째 곡인 ‘서곡Overture’에 해당한다. 본래 이 곡은 서곡 외에 9개의 곡 등 총 10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토벤은 괴테의 동명 희곡(戱曲) ‘에그몬트’에 크게 감명 받았고,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릴 때 연극에 삽입시킬 목적으로 이 곡을 작곡했다.

이처럼 부수음악이란 보통 연극을 공연할 때에 서곡, 막간곡, 배경음악, 혹은 멜로드라마(마치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연극 도중에 배우가 노래로 대사를 표현하는 부분)로 사용할 목적으로 작곡된 일련의 모음곡을 말한다. 부수음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그리그 작곡의 ‘페르귄트 모음곡’이 있는데, 본래 이 페르귄트 모음곡은 ‘인형의 집’을 쓴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를 위해 작곡된 극음악이었다. 그러나 연극 자체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 했고, 자신의 곡들을 아깝게 여긴 그리그가 추후에 전곡 중 일부를 추려 모음곡 1과 2로 출판한 것이 오늘날까지 연주회용 ‘페르귄트 모음곡’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곡 역시 부수음악이다. 이 장르의 음악 중 페르귄트 모음곡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곡이며, 전 세계에서 매일 수 백 번씩은 연주되고 있는 곡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바로 밤을 헤매는 유쾌한 방랑자다.

네 눈에 마술의 꽃물을 발라주마. 네가 깨어나면, 그 때부터는 다시는 잠들 수 없는 상사병에 걸릴 거야! 그때까지는 잠재워 두도록 하지.


-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中 요정 퍼크의 대사 -

한여름 밤의 꿈. 셰익스피어의 희극(喜劇)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고르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 작품을 꼽겠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희곡은 개연성이 엉망이고,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너무나 달콤하다. 수많은 명대사들로 가득하며, 제목처럼 몽환적이다. 일단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꿈을 꾸기 시작하여 요정 퍼크의 인사와 함께 다시 막이 내릴 때는 오직 달달한 여운만이 남은 채 기분 좋게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꿈의 내용이 제아무리 뒤죽박죽이고 유치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을 집필한 지 200여년이 흐른 뒤인 1826년 독일. 방금 독일어 번역판 ‘한여름 밤의 꿈’ 마지막 장을 읽고는 책을 덮은 17세의 청년은 두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내일부터 ‘한여름 밤의 꿈’을 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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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x Mendelssohn Bartholdy(1809-1847)

이는 15세 때 이미 첫 교향곡을 작곡하고, 16세 때에 현악 8중주를 작곡한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Felix Mendelssohn Bartholdy)의 야심찬 선언이었다. 곡을 빨리 써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던 멘델스존은, 해를 넘기지 않고 가장 뜨거운 계절인 8월에 곡을 완성했다. 그것은 연주 시간이 11분 남짓 되는 짤막한 하나의 곡이었으며, 악장 구분도 없고 소나타 형식을 갖추었으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를 띠는 곡이었다. 이 곡은 이듬해인 1827년에 처음으로 공연되었으며, 멘델스존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소개된 것도 이 연주회에서였다. 이 연주회에서 연주된 곡들은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과 역시 멘델스존의 작곡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었는데, 이런 구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반적인 연주회 구성과 완벽히 일치한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은, 본래 극음악(劇音樂)이 아닌, 연주회용 서곡(Concert Overture)로 작곡 된 것이다. 18세기 말엽부터 오페라의 유명한 서곡들이 기악 음악회에서 독립적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19세기 초반까지도 연주회용 서곡이 독립적으로 작곡된 예는 흔하지 않았다. 멘델스존은 ‘핑갈의 동굴 서곡’이나 ‘고용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서곡 등 훌륭한 연주회용 서곡을 많이 남겨서 이 장르의 선구자로 여겨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은 연주회용 서곡이라는 장르의 시금석으로 평가 받는 곡이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 달궈진 천재 청년의 가슴은, 이 훌륭한 한 곡의 서곡을 작곡함으로써 진정이 되었던 듯하다. 그가 다시 이 작품을 되돌아보게 된 것은, 천재성에 원숙미가 더해진 33세 때의 일이었다.

1842년. 한여름 밤의 꿈을 작곡한 지 16년이 흐른 뒤, 그는 왕립음악원의 음악 감독이 되어있었다. 당시 프러시아의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멘델스존이 작곡한 음악과 함께 상연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공연에 크게 만족하고 비슷한 작품들을 더 쓸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멘델스존은 이번에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자신의 곡을 덧붙여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하고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무려 16년 전, 셰익스피어의 달콤한 시어로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을 달래고자 일필화의 기세로 써버린 ‘서곡’을 다시 꺼냈다. 그는 청년 시절의 앳되고 낭만적인 감성이 서린 그 서곡을 그대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에는 서곡 외에 14개의 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 날에는 이들 중 일부만 추려서 연주되고는 하는데, 본래 부수음악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인물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 연주되는 행진곡이나 팡파르, 그리고 대사를 음악적으로 처리한 성악곡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독립적인 연주회에서 원곡을 전부 연주해버리면 매우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음악과 극의 진행은 대강 다음과 같다.

먼저 서곡의 연주와 함께 극은 시작되는데, 마치 우리를 꿈속으로 인도하는 듯한 목관의 화음이 네 번 연주되고, 이어서 현들은 마법의 숲 속에서 조곤조곤 요정들이 움직임을 묘사한다. 이어서 금관이 당나귀의 큰 울음소리를 내면서 이제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나 완전히 환상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1장은 별다른 음악의 연주 없이 진행이 되고, 1장과 2장 사이에 간주곡으로 스케르초가 연주된다.


연이어서 2장은 음악을 반주로 까는 멜로드라마로 시작되고, 오베론은 ‘요정의 행진곡’과 함께 등장한다. 2장의 2막은 성악곡 ‘얼룩무늬 뱀’으로 시작하고, 2막과 3막 사이에 다시 간주곡이 들어간다.


솔로 호른과 이를 뒷받침하는 바순의 조화가 아름다운 녹턴은 3막과 4막에서 연인들이 숲 속을 헤매다가 단잠에 빠졌을 때 연주된다.

4막과 5막 사이의 간주곡은 바로 그 유명한 ‘결혼 행진곡’이다. 이 한곡으로 인해 멘델스존의 부수음악 ‘한여름 밤의 꿈’은 불명의 생명력을 누리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어느 나라 어느 동네에서는 이 곡이 울려 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여름 밤의 꿈’의 무대는 다시 당나귀의 울음을 묘사한 서곡의 주제를 그대로 살린 베르가마스크 무곡으로 마무리 된다.



그리고 여기에 에필로그가 따라붙는데, 퍼크의 저 유명한 마무리 대사에 반주를 붙이고, 무대를 열었던 네 개의 코드가 다시 한 번 반복되면서 이번에는 밤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고 우리를 현실의 세계로 되돌려놓는다.

멘델스존은 서곡을 완성한 지 16년이나 지나서 나머지 곡들을 썼지만, 그 기나긴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완전한 통일성을 지닌 아름다운 극음악을 완성시켰다. 멘델스존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천재성에 원숙미를 더하기는 했지만, 평생 청년의 쾌활함을 유지했다.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밝은 작품이 멘델스존의 작풍과 아주 잘 어울렸기에, 16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 짧은 시간 동안 작곡 되었음에도 이토록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2010/11/03 23:01 2010/11/03 2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