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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대답은 “예스!”

사강을 좋아하세요?

대답은 “글쎄?”

시몽은 매우 잘생겼지만,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잘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외모가 출중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상상이 간다. 그런 캐릭터가 범인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인가 하는 점 말이다.

시몽은 14살 연상의 여인 폴에게 반한다. 소설의 제목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인 것, 그리고 시몽과 폴의 나이 차이가 14살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브람스가 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클라라 슈만은, 브람스보다 꼭 14살 나이가 많았다.

스스로 인생에서 해 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고백하는 이 무기력하고 허무적인 청년이, 폴과 만난 이후로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의미이며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그녀와의 사랑에 매달린다. 이 맹목적인 청년이 운운하는 ‘행복’이란 것에, 나는 반하지 않았다.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이지만, 시몽이라는 캐릭터에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폴에 대해서는 거의 절망적인 답답함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지 못 하며, 앞으로도 영영 브람스를 사랑할 기회를 상실 해 버렸다. 그건 그녀가 39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가장 두려운 ‘늙은’ 모습이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메마른 건초 밭으로 달려드는 불 수레바퀴의 경고장. 오감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짜릿짜릿하고 감정은 폭발한다.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사형’도 아니고 ‘고독 형’도 아니다. 다만 재가 남을 뿐…….

소설 속에서 시몽과 폴이 함께 들으러 간 ‘브람스’는,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이 곡은 브람스가 생애동안 단 한 곡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힘차고 아름다워 수많은 거장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떠들기 좋아하는 대중들의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호들갑스러운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곡의 가장 유명한 3악장을 올려본다. 언젠가 There will be blood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유전에서 기름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 3악장이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영화의 시종 암울했던 분위기 속에서 이 음악이 마치 태양의 반짝이는 빛처럼 느껴졌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연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셰링.

2009/06/21 20:35 2009/06/2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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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대비하여 도서관에서 밤샘하는 것은 이미 이벤트화한 지 오래. 학과 공부에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은 1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던 듯하다. 성적도 이 사실을 분명히 뒷받침해 주고 있고. 그때까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몸에 배인 모범생 근성을 떨쳐버리지 못 해서……. 아마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도 그 근성 못 버리고 있었겠지. 뭐 그 탈피가 바람직한 것인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 말이다(글쎄 나는 썩 만족하는데!).

이것으로 대학 교육의 모든 과정이 끝났는데, 일말의 시원섭섭함조차 없다. 이렇게까지 무감각할 수 있나 싶다. 하기야 이집트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연주회 준비로 또 매일 같이 학교에 나가야 하니, 그 때문에 학교를 떠난다는 게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떠난다’니? 내가 언제는 학교에 소속되어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체중 감량은 순조롭다. 몸무게가 정점을 찍었던 지난 3월 초를 기점으로, 약 5kg 정도 감량을 했다. 3월부터는 그래도 비교적 꾸준히 운동을 해왔고, 지난 2주 정도는 엄격한 식사 조절을 했다. 앞으로 한 4~5kg 정도만 더 감량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여행을 다니면서는 감량이 어렵겠지만, 많이 돌아다니고 음식은 가리고 절제해서 먹으면서 잘 관리하다가, 돌아와서 체중 조절을 계속 할 생각이다.

2009/06/20 04:21 2009/06/20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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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대학 시절 마지막 시험이 있다. 지금 도서관으로 마지막 밤샘을 하러 출발한다. 시험 기간이면 도서관에서 밤새는 일이 흔했다. 이따금 새벽에 밖으로 나오면 유난히 붉게 보이는 신촌의 밤하늘을 의아스럽게 쳐다보곤 했다. 이제 그것도 마지막이다.

2009/06/18 13:44 2009/06/1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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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카랄도 (1982년 작품)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출연: 클라우스 킨스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조스 루고이, 미구엘 앤젤

“‘카야하리 야쿠’, 정글 인디언들이 이 땅을 가리켜 ‘신이 아직 창조를 마치지 않은 땅’이라 불렀다. 그들은, 인간이 사라진 후에야 신이 다시 돌아와 창조를 마칠 것이라 믿었다.”

이 영화는 위의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곧이어 모터가 고장난 보트를 손수 노 젓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12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이틀 밤을 새며 강을 따라 이곳에 왔다. 노를 젓느라 살갗이 벗겨진 그의 손에는 붕대 대신 헝겊이 감겨 있었다. 그는 이미 공연이 시작된 가극장으로 달려간다. 표가 없다며 그를 들여보내지 않으려는 안내인을 향해 그는 말한다.

“이퀴토스에 가극장을 세울 거요. 그리고 카루소를 주연으로, 그곳에서 개관 공연을 할 거요. 어느 극장보다도 근사할 거요. 그리고 당신도 그곳에서 함께 일하게 될 거요.”

“현실이 오페라의 썩어빠진 모방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어!” 그는 외친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신이 온다면, 카루소의 목소리를 하고 올 것이다.”

피츠카랄도. 그는 오페라 광이다. 현실을 오페라 속의 구태의연한 이야기보다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 신이 오페라 가수의 음성을 하고 올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낙관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아마존 밀림 한 가운데에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려는 무모한 꿈을 가진 사람이다.

전축에 카루소의 레코드를 걸 때면 으레 다가오는 돼지에게 피츠카랄도는 약속했다. 언젠가 아마존 한 가운데에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면, 너에게 객석 정 중앙에 붉은 벨벳으로 장식한 의자를 마련 해 주겠다고.

피츠카랄도는 가극장을 세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 그는 낡은 증기선 한 척을 구입하여 수리하고, 감히 어떤 배로도 거슬러 오를 수 없는 급류 너머의 고무 농장에 인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또 다른 지류를 타고 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윽고 두 지류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반대편 지류로 가기 위해 300톤의 증기선을 타고서 산을 넘는다.

아무런 그래픽 효과나 미니어처의 사용 없이, 순수하고 또 고지식하게 인력만으로 배를 끌어 올려 밀림을 통과시키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스펙터클하며, 관객을 압도하는 장면일 것이다.

배는 결국 산을 넘지만, 그의 모험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마존 밀림 한 가운데에 오페라 하우스를 세우려 했던 피츠카랄도의 의지는, 어쩌면 다 끝마쳐지지 않은 카야하리 야쿠의 창조 작업을 마무리 지으려는 한 서구인의 광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신의 진노를 다스리는 제사의 의미로, 이 거대한 배를 급류에 떠내려보내버린다.

초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 하고 사업 실패를 눈앞에 둔 피츠카랄도는, 강 하류로 내려와 배를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극단의 단 1회 오페라 상연권을 산다.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선장에게 쥐어주며, 제일 좋은 시가와 붉은 벨벳 의자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실패한 사업자로서 이퀴토스의 항구로 돌아가는 피츠카랄도는, 배 위에서 자신만을 위한 오페라를 상연한다. 관객은 오직 자기 한 사람. 그는 붉은 벨벳 의자의 등받이를 짚고 선 채, 시가를 태우며, 자신만을 위한 오페라 공연을 감상한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벨벳 의자에 앉지는 않는다. 이 의자는 그가 카루소를 좋아하는 돼지에게 약속한 그 의자이므로…….

피츠카랄도는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영화화 과정에서 다소의 각색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영화 속 인물이 실제와 동떨어진 공상적인 인물이라 할지언정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의 인생,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 그가 사업에 실패했다고는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누가 그가 인생에서도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모험의 증거는 “내가 그것을 했고, 내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거장 헤어조크는 배가 산을 타고 넘는 장면을 아무런 그래픽 효과나 특수 장치 없이 인력만을 이용해 ‘실제로 배를 산 위로 넘기며’ 찍었다. 그리고 배가 급류에 휩쓸리는 장면도 정말 배를 급류에 내맡긴 채 그 안에서 찍었다. 이 과정에서 스태프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힘들었다. 무척 긴 영화이며, 유럽 영화인만큼, 이야기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술술 풀리지 않는다. 아마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의 느릿느릿한 항해 과정을, 우리는 역시 느긋한 호흡으로 함께 해야 한다. 그 대자연에 대한 응시, 자연의 소리에 대한 귀 기울임은, 피츠카랄도 개인의 거친 광기와 대비를 이루며 이 영화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개인적으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읽었던 아마존 강 항해 과정이 떠올라, 그 자연의 생생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깊은 숲’이란 정말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인가.

피츠카랄도가 단 1회 상연권을 사서 연주토록 한 오페라는,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청교도’다.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이여, 그대에게 사랑을’이라는 아리아로, “내 사랑하는 이여, 한 때 나는 그대를 향해 남몰래 눈물지었지만, 이제 사랑의 신은 승리와 기쁨 속에서 나를 그대에게 인도하고 있소. 이제 그대는 나의 것이오.”라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영화가 무척 마음에 들지만, 오늘날 가쁜 호흡의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섣불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2009/06/17 19:46 2009/06/17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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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신이니, 신은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우주이니, 신이 창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거대한 것은 공간이니, 모든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가장 빠른 것은 지성이니, 모든 것을 관통하여 내달리기 때문이다.
가장 강한 것은 필연이니,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가장 현명한 것은 시간이니, 모든 것을 결국 명백하게 밝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곤란한 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요, 가장 쉬운 일은 남에게 충고하는 것이다.”

디오게네스 라엘티오스가 쓴 그리스 철학자 열전의 첫 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탈레스. 그는 인류사상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곤 한다. 러셀의 서양 철학사를 펼쳐보아도 탈레스의 이름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다.

탈레스는, 잘 알다시피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주장한 사람이다. 탈레스의 이 명제는 일반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진짜 의미와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탈레스는, 이를테면 몇몇 특수한 상황에서 적용되는 법칙을,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반 상황에 폭넓게 적용 시키는 ‘일반화’를 처음 시도한 사람이다.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생각도 그저 공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태양이 물을 증발시키고, 바다의 표면에서 안개가 피어오르고, 구름이 비가 되어 떨어지는 자연 현상을 면밀히 관찰한 후에 도달한 결론이었을 것이다.

탈레스의 생몰 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고, 그의 업적에 대해서도 후대의 기록이 너무 분분하여서 대체 뭐가 진짜 그의 행적이고 말인지 불분명하다(위의 인용을 포함하여). 다만 탈레스가 일식을 예언했다고 하는 사실은 유명한 전승으로, 후대의 학자들은 탈레스가 예언했다는 이 일식의 시기를 측정하여(기원전 585년이라고 한다) 그의 활동 연대를 추정하고 있다.

2009/06/16 15:09 2009/06/1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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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책상 앞 벽면에 떡하니 붙여놓은 세계 지도를 올려다 볼 때면 생각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는 프리토리아…….’

가 아니고, ‘세상은 참 넓고, 갈 곳도 많다’라고. 일부러 한 벽면에 이렇게 큰 세계 지도를 붙여놓은 것은, 나라 이름과 수도나 외우자는 게 아니라,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코팅된 지도 표면에 내가 몇 가지 표시를 해 놓았는데, 하나는 다키아 속주까지 포함하는 고대 로마 제국의 최대 영토 경계선.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지금까지 가 본 도시들이다. 아무래도 세계지도이다 보니 규모가 큰 도시들만 표시되어 있지만, 아무튼 형광색으로 체크된 방문 도시는 다음과 같다.

- 아메리카 대륙 -

미국: 보스턴, 뉴욕, 워싱턴 D.C.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캐나다: 토론토, 몬트리올, 퀘벡

-유럽-

이탈리아: 밀라노, 로마, 바티칸, 나폴리

그리스: 아테네

-아시아-

일본: 삿포로, 하코다테, 아키타, 도쿄, 교토, 고베, 오사카, 후쿠오카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캔버라, 울룰루(에어즈록)

남미는 가 본 적도 없고, 아시아에서는 겨우 극동 지역에 머무르긴 했지만, 그래도 ‘명목상’ 지구상의 모든 대륙 중 아프리카와 남극 대륙을 제외하곤 모두 가 보았다. 이번에 이집트를 가니까, 아프리카 대륙에도 일단 발도장을 찍을 예정이고……. 살다보면 남극 대륙에 가볼 기회도 있지 않겠는가!

전 우주적 차원에서 보자면 그저 한 점 티끌에도 못 미치는 존재인 지구이지만, 한 인간의 관점에서 지구가 이만큼 크고, 나라가 이만큼 많은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애써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고자 하지 않는다. 난 늘 내 정체성을 보다 넓은 테두리에서 찾고자 한다. 레오나르도의 그림과 베토벤의 음악을 어째서 내 조상의 미술과 음악으로 여기면 안 된단 말인가?

난 적어도 55세까지는 어느 대륙, 어느 나라에서 살아볼지 대충 정해 놨다. 죽을 장소도 미리 ‘베네치아’로 골라 놨다. 이건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기 전에, 이미 베네치아의 어느 이름 없는 작은 다리 위에서 운하의 초록빛 물결을 바라보며 굳힌 결심이다.

물론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만 세상은 넓다는 것만은 절대로 잊지 않고자 한다.

2009/06/16 03:22 2009/06/16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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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 호텔에 있는 Pizza Hill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왔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느낀 건데, 레스토랑 이름이 참 직관적이다.

예약하고 갔는데, 예약하지 않았더라면 들어가지도 못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 과연 음식은 맛이 있더라. 시저 샐러드의 드레싱이 좋았다. 요즘 샐러드를 자주 만들어 먹고 있어서, 드레싱에 관심이 좀 있다. 지금은 그저 올리브 오일이랑 발사믹 식초를 적당히 뿌려서 먹고 있지만……. 조만간 카르파초 같은 요리에도 도전 해 봐야겠다.

피자는 그냥 평범하게 콤비네이션이랑 마르게리타를 시켰다. 나도 한때는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에 ‘피자’라고 답하던 어린애였는데. 어렸을 적에는 매주 주말마다 도미노 피자에서 치즈 피자 한 판을 시켜 먹었다. 도미노 피자에서 프로모션 차원으로 과천 시내 아파트에 ‘무기한 10% 할인 쿠폰’을 돌린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아파트들을 순회하며 우편함을 털어 100장 정도를 수거해 온 기억이 난다. 그런데 결국 우리 집에서 그 쿠폰으로 그만큼 피자를 시켜먹었으니까, 프로모션 차원에선 성공 아니었을까.

유독 우리 집에서 다른 피자는 일체 주문을 안 하고 ‘치즈 피자’만 주문했던 것은, 내가 매우 심한 편식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친구 생일잔치 같은 데에 가서 음식으로 피자가 나오면 가장 곤란했다. 토핑을 벗기고 먹는다든가…….

지금은 편식이 그 정도로 심하진 않지만, 남들 눈에는 그저 밋밋한 피자로 보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치즈 피자를 좋아한다. 피자는 가장 정직하게 빵과 치즈와 토마토소스로 맛이 결정 나는 거다.

이탈리아 여행 때는 대부분의 끼니를 피자와 스파게티로 해결했다. 나폴리에서는 세계 최초로 문을 열었다는 피자 전문점에도 가보았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살 때에도 매일 피자 한 두 조각을 점심으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대체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거야 마는 거야! 미국 전철역 같은 데에서는 무식하게 크고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끔찍한 피자를 조각 단위로 파는데, 전철역의 부산함과 얽혀서 아주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다.

일본에서 살 때엔 피자랑 인연이 별로 없었다. 기숙사 근처에 시카고 피자집이 있었는데, 배달시키지 않고 직접 찾아가면 20%인가를 할인 해 주었다.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드는 날, 피자 한 판 사와 먹거나 한 기억은 있다. 그러고 보니 오사카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개최한 이탈리안 페어라는 데에 가서 빵 같이 생긴 특이한 피자를 먹어 본 적은 있다. 그냥 크러스트 같이 생긴 빵 안에 짭짤한 치즈가 발려 있었다. 맛은 특별할 게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이때는 살라미에 더 정신이 팔려 있어서…….

어학연수 차 호주에 갔을 때, 딱 한 번 피자를 먹어봤다. 수도 캔버라의 나름 유명한 집이었던 것 같은데, 페퍼로니와 굵은 올리브가 올라간 매콤한 맛의 피자였다.

피자 얘기로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떠올라 적어봤다. 겨우 피자 한 판 먹은 것이 이렇게 기억되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번 이집트에 가거든, 거기서도 피자는 한 번쯤 먹어봐야겠다.

2009/06/15 04:16 2009/06/15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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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 시험에 대해 한 마디 써두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지난 토요일,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왔다. 신대방 삼거리 역 근처에 있는 ‘강현 중학교’라는 곳에서 봤는데, 학교가 꽤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매일 아침, 지각의 분초를 다투며 달리는 학생들에게 원성을 좀 살 듯하다.

입실은 1시까지 완료하라더니, 정작 시험은 2시 30분부터 시작했다. 고사실 찾아 가던 도중, 제1 고사실에 앉아있는 원종필을 발견. 이 녀석, 약사 자격증이 있어 10점의 가점을 받는다.

첫 시험 국사. 쉬웠다. 너무 쉬웠어. 근대 이후로는 일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제국 이후 범위에서 출제된 문제 몇 개를 못 맞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너무 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설렁설렁 전 범위를 다 훑는 거였는데.

언어 시험도 쉬웠다. 다만 문제 자체가 좀 바보스러운 것들이 있었다.

지각속도측정은 이미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시험을 봤다. 이 시험은 처음 접하는 학생들을 위해 예시 문제가 제시되고, 풀어볼 시간을 1분 준다. 방송으로 ‘시작’이라는 구호가 떨어지자마자 몇몇 응시자들이 착각하고 본 문제 풀이에 들어가 버리는 사태가 발생……. 이런 거 이렇게 떠벌여도 되는 건지 몰라.

아무튼 시간이 너무 부족한 과목. 나는 답이 O, X로 갈리는 문제는 모조리 찍고, 사지선다형 문제만 풀었다. 3분 동안 30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한 7~8문제 푸니까 1분 남았던 것 같다.

자료해석능력 시험은 각종 통계 자료를 제시해 주고 그것에 근거해 문제를 내는데, 문제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퍼센트 계산 같은 걸해야 하는데 제시된 숫자가 10만 자리까지 가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나.

공간인지능력이었던가 뭐 지도 읽기 시험이 나왔다. 내 위치 찾기와 건물 위치 찾기는 쉬웠는데, 틀린 지도 고르기가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 그래서 틀린 지도 찾는 문제는 모조리 찍었다.

상황판단능력 검사는 뭐 정답이 없다니까 마음껏 찍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시험은 아주 쉽거나 시간이 부족해서 건들지도 못 하거나 하는 두 부류. 이래서 변별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보통 합격하려면 두, 세 달은 공부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난 겨우 일주일밖에 공부를 안 했다. 과연 지각속도측정이나 지도 읽기 같은 건 훈련하면 숙달이 되겠지만, 그럴 필요까지 있나.

아무튼 시험은 끝나고, 결과를 기다릴 뿐.

2009/06/15 03:38 2009/06/15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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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調歌頭

                        蘇 軾

明月幾時有
밝은 달은 언제부터 있었는가?
把酒問靑天
술잔을 들어 하늘에 묻지만,
不知天上宮闕
천상의 궁궐에선 모를 것이다,
今夕是何年
오늘이 무슨 해인지를

我欲乘風歸去
바람을 타고 돌아갈까 싶어도,
又恐瓊樓玉宇
옥으로 지은 저 궁궐,
高處不勝寒
높은 곳에 있어 추울까 두려워,
起舞弄淸影
춤추고 그림자와 노닐 수 있어도,
何似在人間
어찌 인간 세계에 있음만 할까

轉朱閣低綺戶
붉은 기둥 돌아, 비단 창가에 스미어,
照無眠
달빛은 잠 못 드는 이를 비추네
不應有恨
한스런 일은 없을진대,
何事長向別時圓
어찌하여 헤어질 때 달은 더 둥근가

人有悲歡離合
사람에게 슬픔과 기쁨이 있고, 헤어짐과 만남이 있는 것은,
月有陰晴圓缺
달에 어두움과 밝음이 있고, 차고 기우는 것이 있는 것 같아서
此事古難全
예부터 어찌해 볼 수 없는 일이지만,
但願人長久
단지 바라네, 그대와 나 오래도록,
千里共嬋娟
멀리 떨어져서도 같은 달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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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4 05:00 2009/06/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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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마지막 강의 다음날. 인생의 다음 단계를 위한 시험을 하루 앞둔 날.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 낮에 잠깐 광화문 교보 문고에 들렀다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으러 갔다. 베토벤 7번의 군데군데에 대해 질문을 좀 하고, 아델라이데 콘체르토 위주로 레슨을 받았다. 각종 시험과 이집트 여행 관계로, 한 달간 레슨을 쉬기로 했다.

이 가슴의 공허함을 안고서 한 평생을 살아가야겠지. 장대한 인간의 역사에서 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란 덧없이 짧은 것이지만, 그것을 살아내야 하는 개인에게 있어 삶이란 버거운 과업인 것이다.

2009/06/13 02:15 2009/06/13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