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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5717일 조금 전,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내년에 있을)나의 선거1)에 대해서는 자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바탕으로 예측해보자면 전망은 대충 이러하네. 벌써부터 선거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푸블리우스 갈바2)뿐이지만, 시민들은 우리에게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그 지극히 솔직한 태도로 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네. 푸블리우스의 이런 성급한 선거 활동은 우리 쪽에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지. 그도 그럴 것이, 푸블리우스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나에 대한 의리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거든. 이처럼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가면, 점차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언제쯤 선거 운동을 언제 개시하면 좋을까가 문제이네만, 킨키우스가 자네쪽 소년이 이 편지를 가지고서 다시 자네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할 거라고 알려준 날, 그러니까 곧 마루스 평원에서 호민관 선거가 치러지는 717일부터 시작할까 생각하고 있네. 함께 입후보하는 이들은, 현재까지 확실한 건 갈바와 안토니우스3), 그리고 퀸투스 코르니피키우스야. 마지막 이름을 보고는 웃거나 혹은 탄식을 내뱉었겠지. 거기에 자네가 벽에다가 이마라도 박고 싶어지도록 한 사람 더 추가하자면, 카에소니우스5)마저 입후보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아퀼리우스는 출마하지 않을 것 같네6). 그가 출마를 부정했고, 신병이 있다고 선언한데다가, 법정에서 자신이 쌓아올린 왕국을 출마를 사양하는 이유로 들고 있네. 카테리나7)에 대해서는 심판인들이 대낮에 해가 진다는 따위의 판결을 하지 않는 한, 출마는 무리겠지8). 아우피디우스와 팔리카누스에 대해서는 일부러 쓸 필요도 없어. 현재 (올해 치러질 선거에)입후보 한 사람들10) , 카이사르11)의 당선은 확실하다고 생각되네. 또 한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텔무스와 실라누스12)일 거라고 보여지네. 하지만, 그들은 인맥이 빈곤하고 세간의 평가도 너무 낮아서, 툴리우스13)가 급부상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네만, 이건 나만의 생각일세. 내 계산으로는, 텔무스가 카이사르와 함께 당선되는 것이 가장 상황이 좋다고 생각되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입후보하게 될 해에 함께 겨루게 된다면, 지금 입후보 해 있는 사람들 중에는 텔무스가 가장 강력한 입후보자가 될 거라 여겨지기 때문이지. 그는 플라미니우스 가도14) 정비의 감독관을 맡고 있지만, 이 사업은 내가 선거에 출마할 즈음이면 여유롭게 마무리 지어지겠지15). 그러니까 나로서는 그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카이사르와 함께 집정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네. 이정도가 입후보자들에 대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네. 그리고 아마도 선거에서는 갈리아16)가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쪽의 법정(法庭) 일이 좀 잠잠해지면 9월에 피소의 부관으로서 그가 있는 갈리아로 재빨리 넘어갔다가17) 1월쯤에 돌아올까 생각중이네. 명사들18)의 의향이 어떤지 대충 파악이 되면 알려줌세. 적어도 시() 안의 경쟁 상대들만 놓고 본다면, 뒷일은 순조롭게 풀릴 거라고 보고 있네. 그렇지만 그 군단(軍團)만큼은 자네가 훨씬 더 가까이에 있으니까, 자네가 좀 맡아줬으면 좋겠네. 즉 우리들의 친구 폼페이우스19)가 이끄는 그 일개 군단 말일세20). 설령 선거에서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너무 섭섭해 하지는 않을 거라고 전해주게.

선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실은 자네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일이 있네. 자네의 백부인 카에킬리우스21), 푸블리우스 바리우스22)에게 큰돈을 사기 당했네. 그래서 백부께서는 바리우스에게 속아서 떠안은 물건을 두고 바리우스의 형제인 카니니우스 사툴루스와 다툼을 시작했지. 다른 채권자들까지 여기에 가세했는데, 그 중에는 루쿨루스23)와 푸불리우스 스키피오24), 루키우스 폰티우스25)도 있네. 특히 루키우스 폰티우스는 만약 재산 압류가 발생할 경우 그 재산에 대한 법정 관리인으로 세우려는 것 같네만,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좀 도가 지나친 것 같네. 어쨌든 여기서 좀 문제가 생겼다네. 자네 백부님께서는 나에게 사툴루스26)를 고소하는 편에 서 달라고 부탁을 하셨네. 그렇지만 사툴루스는 단 하루도 내 집을 방문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네. 사툴루스는 항상 루키우스 도미티우스27) 다음으로 나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지. 나 자신이나 동생 퀸투스가 입후보했을 때에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네.

사툴루스 본인과의 이런 친밀한 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도미티우스와의 관계도 있어서 나로서는 정말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일세. 나의 당선의 열쇠는 도미티우스가 쥐고 있네. 나는 이런 상황을 자네 백부님께 잘 설명 드렸지.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하였다네. “만약 백부님과 사툴루스, 두 사람만의 문제였다면 저는 지체 없이 백부님의 요청에 응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채권자들이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게다가 그 채권자들은 하나같이 매우 부유하여서 굳이 백부님께서 전면에 나서서 사람을 세워주지 않아도 모두들 소송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니, 당신께서도 저의 체면과 현재 제가 처해있는 상황을 좀 배려 해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지만 백부님께서는 내 말을 기대했던 것처럼은-그리고 신사에 어울리는 태토로는- 받아들여주시지는 않는 모양이야. 최근 며칠 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네만, 내가 그러한 대답을 드린 후로는 딱 연락이 끊기고 말았네.

이러한 상황을 부디 잘 헤아려주게. 그리고 친구가 이처럼 심각한 괴로움에 처해있을 때, 나로서는 그 친구를 고소하는 편에 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따름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사툴루스는 나를 위해 크게 힘을 써줬고, 봉사 해 준 사람이니까. 좀 냉정한 시선으로 보자면, 내가 앞으로 있을 선거 활동을 위해 백부님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설령 그 말 대로라 하더라도 내 입장을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왜냐하면 소의 가죽이나 산짐승을 얻고자 한 일은 아니니까28). 내가 어떤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내가 얻은 지지를 조금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서 얼마나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자네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 이 정도면 자네도 내 생각을 충분히 납득 해 줬으리라 믿어.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네. 자네가 보내준 헤르마테나29), 정말로 기쁘다네. 배치가 너무 훌륭해서 김나시움 전체가 마치 그녀에게 바쳐진 공물같이 느껴질 정도야. 정말로 고맙네.

 

1) 63년도의 집정관 선거
2)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65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다.
3)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휴블리다. 키케로와 함께 63년도 집정관에 당선되었다. 후에 속주 마케도니아의 총독으로 재직하던 중 부정축재로 고발되어 키케로의 변호를 받았지만 유죄가 선고되었다.
4) 퀸투스 코르피키우스. 67년 혹은 66년의 법무관.
5) 마루쿠스 카에소니우스. 69년에 키케로와 함께 조영관으로 근무했다. 65년 이전(키케로와 같은 해인 66?)에 법무관을 지냈다.
6) 코르피키우스 이하의 3인은 신분이나 경력으로 봐서는 특별히 열위에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키케로는 집정관으로서는 역부족으로 판단하고 있다. 가이우스 마퀼리우스 갈루스는 키케로의 친구로, 66년에 키케로와 함께 범무관을 지냈다.
7)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테리나. 63년에 국가전복의 음모를 획책하였지만 키케로에게 발각되어 사형.
8) 그는 속주 아프리카에서 부정축재의 죄로 고발당했다.
9) 역시 집정관이 되기에는 격이 떨어진다는 의미. 티투스 아우피디우스는 출신이 미천했지만 법무관(67?)으로까지 출세하였고, 아시아 속주의 총독으로서도 훌륭한 실적을 쌓았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팔리카누스도, 피케눔의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역시 법무관(68년 이전)까지 역임했다.
10) 다음 해(64)의 집정관. 실제 당선된 것은 A2의 시작 부분에 나와있듯 카이사르와 피글루스.
11) 유명한 카이사르가 아니라, 그의 먼 친척인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12) 미누키우스 텔무스는 66년 이전에 법무관을 지낸 인물로, 집정관에 당선된 피글루스의 별명일 가능성도 있다.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는 62년의 집정관 선거에서 당선.
13) 루키우스 툴리우스. 75년의 범무관?
14) 로마에서 북쪽으로 뻗어있는 가도.
15) 가도정비의 공적이 선거전에서 강력한 순풍이 될 거라는 의미.
16) 여기서 말하는 갈리아는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로마쪽)(갈리아 키살피나) 중에서도 파두스 강(포 강)보다 안쪽에 위치한 갈리아(갈리아 키스파나)를 말함. 이 지역은 89년에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다.
17)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67년의 집정관)은 당시 갈리아의 총독. 키케로는 63년에 부정축재 혐의로 고발된 그의 변호를 맡아서 성공을 거두었다.
18) nobiles의 번역.
19) 그나에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B.C. 106 ~ B.C. 48). 키케로와 동년배. 수많은 군공을 세워 하위 관직을 역임하지도 않고 단번에 집정관이 되어(70), 훗날 제일 삼두정치의 한 축을 맡았다.
20) 폼페이우스는 당시 동방원정중으로 1개 군단이라는 것은 그가 이끄는 병사들을 말함. 물론 이것은 농담조의 얘기로, 폼페이우스와 그가 이끄는 군대에 대해 선거 활동을 해 달라고 진지하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1) 퀸투스 카에킬리우스. 부유한 기사로, 대단히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라 전해진다.
22) 상세불명
23)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74년의 집정관으로, 72~71년에 폰토스의 왕 미트라다테스 6세와의 전쟁에서 전과를 올렸다(당시는 그에 대한 개선식을 요청하고 대기중이었다). 대부호로 호화로운 생활로도 유명하다.
24) 퀸투스 가에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52년의 집정관. 60년에 선거운동 중 매수죄로 고발당해, 키케로의 변호을 받았다.
25) 상세불명
26) 상세불명
27)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발부스. 54년의 집정관.

28) 호메로스의 일리아스22-159에서 인용. 흔하디흔한 것을 위해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는 뜻.
29) 투스쿨룸에 있는 키케로의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아티쿠스가 보낸 아테나 여신의 흉상.

2014/09/03 01:25 2014/09/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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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7년 8월,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이전부터 나는 내 의지대로 행동 해 왔지만, 자네가 아주 정성들여 쓴 두 통의 편지에 나와 같은 생각이 담겨있는 것을 보고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네. 게다가 살루스티우스1)도 자네와 루케이우스 사이에 예전의 그 좋았던 우호 관계를 돠찾아주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고 거듭 나를 채근한다네. 하지만 온갖 수를 써보았음에도 자네에 대한 그의 예전과 같은 호의를 되살릴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왜 자네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틀어져버렸는지 그 이유마저도 알아낼 수가 없었네. 분명 그는 자네가 행한 중재 건을 거듭 이유로 내세우고 있네. 또 자네가 여기 있었을 적에 그가 자네에게 분노했던 사정도 나는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그의 감정 깊숙한 곳에 뿌리내린 것이 있는 것 같네. 그게 무엇인지 자네가 편지를 보내거나 내가 캐묻는 것보다도 차라리 자네가 직접 이쪽으로 와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걸로 푸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을까. 물론 자네가 그렇게 하고 싶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말이지만. 그러나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자네가 자네의 평소 보여 온 인격에 어울리는 행동을 취하고 싶다면, 꼭 그리 해야한다고 생각하네. 일전에는 내가 하는 말이라면 그도 들어줄 거라고 해놓고 왜 이제 와서 자신 없는 소리를 늘어놓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게. 그의 마음이 얼마나 더 완고해지고, 그 분노가 얼마나 더 굳어져가고 있는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네. 하지만 자네가 와 준다면 분명 잦아들 걸세. 그렇지 않으면 (이 불화를 일으킨)책임이 있는 쪽에겐 매우 성가신 일이 되겠지.2) 내가 이미 당선되었을 것3)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보낸 모양이네만, 지금 로마에서는 입후보자처럼 온갖 부정에 시달리는 자들도 없으며, 선거가 대체 언제쯤이나 치러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네. 이에 대해서는 필라델프스4)가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 내 아카데미아5)를 위해 입수한 것들, 가능한 빨리 보내줬으면 좋겠네. 아카데미아를 실제로 쓸 때는 물론이거니와 다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기쁘다네. 또 자네가 모은 서적들은 누구에게도 넘기지 말게나. 약속했듯이 나를 위해 남겨두게. 나는 온통 그 서적들 생각뿐이라네. 반면 그밖에 일들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네. 모든 일들이, 자네가 떠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얼마나 나빠졌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라네. 1) 그나에우스 살루스티우스.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친한 지인. 공직에 몸담았던 흔적은 없음. 2) 완곡하게 아티쿠스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음. 3) 이듬해인 B.C. 66년에 행해진 법무관 선거. 각 정무관직의 선거가 행해지는 날짜는 꽤 유동적이었다. 4) 아티쿠스의 노예 또는 해방노예로 추정. 5) 투스쿨룸에 있는 키케로의 별장에 속한 김나지움의 하나.
2014/09/02 00:29 2014/09/0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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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카이사르 : 제국을 만든 남자



대상이 살아있는 사람이든 이미 죽은 사람이든, 작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쓴다면 그 이유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든가 혹은 증오하든가. 물론 사회가 어린이들에게 습득시키고자 하는 구태의연한 도덕률이 위인들의 업적에 뻔뻔스럽게 덧칠되어있는 고리타분한 위인전 시리즈는 예외이겠지만.

다소 지루하게 쓰인 학술적 역사서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담겨있기 마련이다(혹은 억눌러져있으나 서슬 퍼런 울분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글의 행간에서 단지 활자화된 것 이상의 것을 아무 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면, 다시 말해 감정에 호소 해 오는 목소리가 없다면 그 글은 숱한 학생들이 억지로 써 내야만 했던 대학 과제물과 다를 바 없는 ‘죽은 글’이다.

저자가 까닭도 없이 고른 시대와 인물에 대해 그저 사실만 나열해 놓은 그런 무미건조한 책을 읽는 것은 시간의 낭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의 서두에 너무나도 당당하게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시각에서 서술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는 식의 글을 써놓은 것을 보면 더 이상 책장을 넘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어느 한 시대나 한 인물에 대해 평생 한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모든 가치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버린 채 저울처럼 공평하게 서술 된 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격렬한 애정이야말로 모든 위대한 문학의 어머니요, 끓어오르는 울분이야말로 모든 위대한 역사서의 토대다. 우리는 작가와 서술의 대상 사이의 애증의 관계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 우리의 위치를 정할 필요가 있다. 단지 지식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역시 사랑하고 분노하는 것, 그것이 곧 독서의 가치이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살아있었을 적에나 죽은 지 2000년도 더 지난 지금에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다만 민주주의 이념이 보편화되어버린 지금에는 카이사르의 결점을 지탄할 만한 뚜렷한 동기가 없어졌기 때문인지(오히려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경향마저 눈에 띈다), 현대의 카이사르는 리더십을 칭송 받는 역사적 영웅으로서, 매끄럽지만 다소 밋밋한 캐릭터가 되어버린 감이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에는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카이사르로부터 무얼 배워야하는지, 그의 일대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행위는, 카이사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마치 성경속의 우화처럼 느껴지게끔 한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우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한 인물이다. 그가 제국을 이룬 업적은 일개 기업의 성공 스토리와 비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의 관용과 응징은 부하 직원의 실수를 용서하느냐 마느냐하는 가벼운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관용에 배신으로 응수한 부족에 대하여, 전 부족민의 팔을 잘라버리는 것으로 응징했다. 카이사르의 도박은 전 재산을 거는 것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개인의 멸망과 조국의 파멸을 저울질 했다. 그리고는 자신 한 사람의 파멸 대신 로마 전역을 로마 시민과 원로원의 피로 물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카이사르의 이런 생생한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안내자들은 사실 너무 많다. 우선 카이사르 자신이 『갈리아 전기』와 『내전기』라는 너무나도 훌륭한 안내서를 남겼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책은 카이사르가 당대의 로마인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로마의 역사와 전쟁 이전, 이후에 얽힌 카이사르의 행적을 제대로 알지 못 하는 오늘날의 상당수 독자들에게는 입문서로 적절치 않다.

필립 프리먼의 『카이사르 : 제국을 만든 남자』는 카이사르가 태어난 시점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약 56년간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펼쳐 보이는데, 카이사르 개인의 행적뿐만 아니라 말기에 접어든 공화국 로마의 전반적인 역사도 함께 개괄 해 나간다. 서술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카이사르라는 인물의 생애가 워낙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그 점은 보상 받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라틴어 수업 시간에 지루해하는 학생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종종 카이사르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이 뛰어난 인물과 그가 살았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하는 이들에게 카이사르의 삶과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열망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노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 구석에는 “카이사르를 지나치게 칭송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 사이에 묻어버리고 싶지도 않다”고 못 밖아 놓기도 했다. 이런 작가의 정신상태 때문인지, 그의 저작 속 카이사르는 다소 변덕쟁이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의 목에 칼을 들이 댄 정적들까지 용서하고 요직에 앉힌 ‘관대한 카이사르’와 죽은 사람을 깎아내리기 위해 3류 타블로이드 지처럼 온갖 유언비어와 원색적 비난으로 가득 찬 책을 출판한 ‘비겁한 카이사르’는 어쩐지 동일 인물처럼 여겨지지 않기까지 한다. 저자는 카이사르의 이런 행위의 불일치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태도로 ‘이것은 관용, 저것은 실수’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넘어간다.

이 책은 명료하며 이해하기 쉽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로마의 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을 얻기에 적절하다. 더불어 서술의 저변에는 카이사르에 대한 저자의 호의가 깔려있다. 비록 저자 자신은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전문적인 역사 연구가도 아닌 고전 언어학자가 자기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때때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모자라 책까지 펼쳐냈을 정도라면, 카이사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의심할 수는 없으리라. 다만 이 러브 스토리는 다소 미적지근하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가슴 속에 열광적인 무언가가 끓어오르지는 않는다. 카이사르와 함께 그토록 바쁜 여정을 달려왔는데, 그 여정이 끝났을 때에 조금도 숨이 가쁘지 않다면, 역사의 오락적 측면을 달성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이나 혹은 전쟁보다도 더 치열했던 정치전에 대한 묘사도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것은 구태여 과장은 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자제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디테일을 많이 생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 얇지는 않더라도 한 권의 책에 한 인물의 생애를 통째로 담으려다보니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역사상 이렇게 사료가 풍부한 시대도 달리 없는 만큼 그 색채감을 선명하게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쉽다.

추가적인 탐구의 욕구를 일으키지 않는 어설픈 만족감은, 약간 균형을 잃은 격렬한 열망보다 위험하다. 저자는 카이사르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고 하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또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이 한 권의 책이 모두 짊어진 채로, ‘카이사르는 대충 이런 사람이었습니다’라는 이미지만 독자의 머릿속에 심어주고 끝나버린다면, 그건 애초의 의도와는 상반된 결과일 것이다.

총평의 의미로, 이 책의 의도와 가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카이사르의 육성이 담긴 『갈리아 전기』나 『내전기』, 그밖에 키케로의 『서간집』을 비롯한 당대의 기록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역사서에 대한 탐구를 위해 한 걸음 내딛어야 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소감을 적으며 마무리한다.

2011/12/06 00:20 2011/12/06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