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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세계의 주도권이 아시아로 넘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어있을까? 지난 2세기 동안 서구 문명이 세계를 휩쓸며 우리의 삶을 이렇게 변화시켜 놓았는데, 장차 아시아가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는 시대가 펼쳐지면 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어떤 문명적 진보를 선사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고민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중국의 저 십 수억 인구를 배경으로 장사나 해먹는, 돈 자랑하고 힘 자랑하는 깡패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나 일본의 위치는 중국이라는 조폭 우두머리 아래에서 콩고물이나 주어먹는 조폭 똘마니 정도가 되어버리겠지.

만일 우리가 말하는 세계의 주도권이나 패권이라는 것이 단순히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힘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아시아의 패권은 오히려 세계사적인 불행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서구의 문명이라는 것은 제국주의 같은 오점, 공산주의나 파시즘 실험이 낳은 과도한 폭력으로 많은 파괴를 불러오기도 했으나, 오늘날 우리가 투표권을 행사하며 우리의 정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는 것, 사소하게는 이렇게 자유롭게 입고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거주하는 이 삶의 양태까지를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다.

과연 아시아의 세기는 인류에게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 중국이 지금 같은 모습으로 세계의 패권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제국주의적인 야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 한 일본이, 이 새로운 아시아의 세기를 주도해 나가서도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으로서는 더더욱 이 두 나라가 더러운 과거라고 하는 분열과 불화의 씨앗을 안은 채 파워 게임에 경주하다가 결국 힘 있는 어느 한 쪽의 승리로 끝나는 게임을 쳐다만 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은 짱개라 욕하고 일본은 쪽바리라고 욕하는 사이에 상황은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분명 어떤 사명을, 역할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세기의 역사를 주도해 나갈 힘이 아시아로 넘어오는 이 시점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장벽을 제거하는 역할은 한국만이 할 수 있다. 한국은 20세기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일본에 대하여 철저한 역사적 반성을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일제의 식민지배와 이념 대립으로 인한 민족상잔의 내전, 그리고 군사독재라는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서도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수준 높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현한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일당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중국을 향해서도 민주화의 선배로서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이런 위치와 역할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 하고 단지 기업의 금력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만 주변 나라와 경쟁하려고 들고, 우리의 우위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는 결코 새로운 문화가 아니다. 우리의 복장은 이미 충분히 가볍다. 헐벗은 연예인들이 더 벗고 설친다고 해서 그것을 따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무를 즐길 자유를 누리고 있다. 연예인들이 방종하게 놀이의 쾌락을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닮을 필요는 없다. 엔터테인먼트는 돈 벌이의 수단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에, 나아가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무엇이 고작 그런 연예인들의 춤사위뿐이란 말인가. 보다 차원이 높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2/02/21 01:02 2012/02/2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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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는 기회만 있으면 약자를 약탈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 제도라는 제어 장치가 있어야 한다. 버트란드 러셀은 선거 제도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민주주의란 권력구조를 구성하는 절차적 방법론의 하나이다. 한 때는 그 절차의 확립 그 자체만을 위해 열렬히 투쟁했다. 당시에는 민주화가 목표였다. 민주화를 이룩하면 그 이후에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그때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투표권이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성인은 1인 1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아직 이 땅의 민주화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끝나지 않은 것은 민주화 투쟁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높은 수준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미완의 과정 속에서 경주하고 있다고 느끼는 까닭은, 민주화 이후에 추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1인 1표의 권리를 얻었지만, 아직 그걸 무엇을 위해 써야할지를 모른다.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권력은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돈이 위력적인 것은, 보통 금력으로 인력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무력으로도 지배할 수 있고, 이념으로도 지배할 수 있다. 본질적인 것은, 권력이란 다수의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소수가 누리는 것이라는 점이다. 다수가 소수에게 굴복하는 것은 분명 모순된 역학구조이다. 혁명가의 눈에는 이것이 필히 다수의 혁명에 의해 붕괴될 수밖에 없는 불안한 구조로 보였을 것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소수의 권력자란 다수가 힘의 균형과 안배, 조정을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이 안에서 구조적 안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도 보았다.

선거라는 절차는, 소수의 권력자를 투표권을 가진 민중이 직접 선택하는 시스템이다. 직접 선택한다고 하는 이 전제가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람들에게 막대한 권력을 쥐어주는 것에 대한 완벽한 정당성을 제공한다. 그래서 민주 사회의 지도자는 기실 과거 그 어떤 왕이 지녔던 권력보다도 더 막강하고 통제 받지 않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다만 그 권력을 가지고도 통치자들이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울 수 없는 것은, 그 권력에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선거철은 돌아오게 되고, 이를 통해 낡은 권력은 심판대에 오른다. 이 억제와 자정의 능력이야 말로 민주적 선거라는 절차가 지니는 가장 찬란한 장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놀라운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 한다. 우리는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에게 권력을 주고, 그것을 사용하게 한 다음, 잘못 사용하면 그 힘을 다시 뺏어오면 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정화 작용을 방해하는 수많은 눈가림식 장애들이 있다. 이를 테면 케케묵은 색깔론, 이념대립, 국가 위기론 따위 말이다. 권력의 오용을 목도하고도 끊임없이 그 부도덕한 권력이 재생산되도록 국민을 오판하게 하는 세력들을 우리는 한 번도 시원하게 청산하지 못 했다. 나는 이런 부도덕한 썩은 무리들이 현 정부나 여당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둘러싸고 있는 벌레 무리들은 정계, 재계, 언론계를 막론하고 어디에나 있다.

국민들은 더 이상 헛소리에 호도되지 않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화 그 다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이루어야 할 목표는 깨끗하고 정당한 권력의 안정적인 재생산이다. 법률에 위배되고, 나아가 도덕률에 위배된 채 부도덕하게 부당 취득된 권력과 부를 시민들이 빼앗아 재분배하는 것은 결코 빨갱이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 시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이다. 정치인이나 재벌은 양반 같은 신분 귀족이 아니다. 그런데 종종 그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과 자본을 독점한다. 이처럼 불법적인 권력 및 자본의 독점이 항구적인 상태로 고착되는 것은 북한 같은 독재국가에서나 용인될 법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순환되어야 한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2012/02/17 01:15 2012/02/17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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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8년 11월,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사촌 동생 루키우스1)의 죽음으로 나는 비통에 빠져있네. 그 아이의 죽음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공적으로도 얼마나 큰 손실이란 말인가! 나를 잘 아는 자네라면 지금 내 기분을 헤아려줄 수 있겠지. 타인의 훌륭한 성격이나 삶의 방식을 바라볼 때에 느끼는 흐뭇함을 나는 오롯이 그 아이를 보면서 누릴 수 있었다네. 자네도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생각하네. 내가 슬픔에 젖어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네 역시 모든 미덕을 두루 갖추고 진정으로 헌신적이었으며, 또 내 말에 따라 자네를 마음속으로부터 경애하던 친척2)이자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느낄 테니.

자네의 여동생3) 얘기를 써줬으니 말이지만, 동생 퀸투스4)의 마음을 고쳐먹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아마 누구보다도 자네 여동생이 잘 증언 해 줄 거라 생각하네. 동생이 약간 자네 여동생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 형으로서 달래기도 하고, 연장자로서 충고도 해보고, 잘못된 태도에 대해서는 질책도 했지. 그 이후 동생도 나에게 자주 편지를 써 보내는데, 편지의 내용으로 판단하건데 모든 게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들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네.5)

편지가 뜸하다고 나를 책망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네. 폼포니아는 편지를 부탁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알려주지도 않고, 나도 에페이로스로 가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네. 게다가 자네가 아테네에 도착했다는 소식도 아직 들리지 않고 말이야.

하지만 아쿠틸리우스 건6)에 대해서는 자네가 출발하고, 내가 로마로 돌아온 직후에 자네 지시대로 일을 처리 해 두었네. 다만 일이 긴급을 다투는 사안도 아니었고, 자네도 충분히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보다도 페두카에우스7)가 자네에게 편지로 조언을 주는 쪽이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네. 대체 며칠씩이나 아쿠틸리우스의 불평불만에 귀를 기울여준 나인데-그가 말을 늘어놓을 때 어떠한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만-자네에게 그 불평들을 전달하는 게 세삼 귀찮을 리가 있겠나. 그의 불만을 들어주는 게 조금 짜증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괴롭거나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편지가 적다고 나를 책망하는 자네야 말로 겨우 편지 한 통 보낸 게 다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자네가 나보다 편지를 쓸 여유도 있고, 편지를 맡길 인편도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그건 그렇고, 아무개씨8)가 자네에게 좀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내가 풀어줘야 한다고 쓴 거 말이네. 자네가 말하는 아무개씨가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는 잘 알고 있고, 그 일을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도 아니네. 하지만 그자는 뭔가 아주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어. 나로서는 자네와 관련해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미 다 해줬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세게 나가야 할지는, 자네 결심에 달린 일이지. 그러니 자네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걸 자세히 얘기 해 주게.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그냥 방치할 마음도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자네의 기대를 저버릴 생각도 없다는 걸 내 몸소 증명 해 보일 테니.

타디우스 건9)에 대해서 말인데, 내가 그와 얘기 나눠본 바로는 자네가 그에게 그 땅은 사용취득에 의해 취득한 것이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써 보냈다던데. 하지만 그의 딸은 법적 후견을 받고 있네. 그런 사람의 재산에 대해서는 사용취득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자네가 몰랐다니 놀랍군.

에페이로스에서 땅을 산 것에 만족하고 있다니 기쁘군. 또 자네도 써 보내줬듯이 내가 일전에 부탁한 투스쿨룸의 별장에 어룰릴만한 것을, 자네가 너무 번거롭지 않은 범위 안에서 구해줬으면 좋겠네.10) 내가 온갖 번잡스러움과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니까.

요즘은 매일 같이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네. 테렌티아11)는 관절통이 심해. 테렌티아가 자네와 여동생, 그리고 어머님을 얼마나 마음속 깊이 아끼는지는 잘 알걸세. 자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군. 귀여운 툴리오라12)도. 모쪼록 건강하게. 나에 대한 애정을 잃지 말기를 그리고 나 역시 자네를 형제처럼 아끼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 해 주게.


1) 루키우스 툴리우스 키케로. 키케로 작은 아버지의 아들. 젊은 시절 키케로 형재와 함께 아테네에 유학하였음.
2)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가 아티쿠스의 여동생 폼포니아와 결혼하여 성립한 인척 관계를 말함.
3) 뒤에 언급되는 폼포니아.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의 처.
4)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3-43). B.C. 65년에 평민조영관, 62년에 법무관, 61년부터 59년까지 아시아 속주의 총독을 역임.
5) 두 사람의 혼인은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사이를 긴밀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나, 정작 두 사람의 부부사이는 나빠서 결국 B.C. 44년 무렵에 이혼하였다.
6) 상세 불명
7) 섹투스 페두카에우스.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친구.
8) 67년도 법무관이었던 키케로의 친구 루키우스 루케이우스. 아티쿠스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불명.
9) 난해한 부분으로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곤란함.
10) 투스쿨룸의 별장을 장식할 미술품을 아티쿠스에게 알아봐 달라고 의뢰한 일.
11) 키케로의 처. 부유한 명문가 출신.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음.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46년 경 키케로와 이혼한 후에도 두 명의 남자와 결혼하였고, 103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짐.
12) 키케로의 딸 툴리아(B.C.77-45)의 애칭.

2012/02/08 01:45 2012/02/08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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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초니에레 中 85번째 시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이상엽 역
                      

VERMEER, Johannes, Girl Reading a Letter at an Open Window, 1657, Oil on canvas, 83 x 64,5 cm, Gemaldegalerie, Dresden

나는 한결같이 사랑했고, 지금도 더없이 사랑하오,
또 그 사랑은 하루하루 더 커져만 가니
그 달콤한 곳, 사랑이 내 가슴을 옥죄어 올 때,
수없이 울며 돌아오는 곳이라오.

또한 나는 변함없이 그때, 그 순간을 사랑하오
볼품없는 모든 사념들까지 떠올리면서,
또 그 아름다운 얼굴은 그것을 더욱더
그 보기와 더불어 잘되도록 하는 마음을 내게 갖게 한다오.

하지만 이전에 그 누구인들 보리라 생각했던가?
내가 몹시도 사랑하는 이 다정한 적들이, 사방에서
모두 함께, 내 마음을 빼앗아가려는 것을,
사랑아, 너는 지금 크고 큰 힘으로 날 압도해 오는구나!

그러나 내 바람대로 희망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나 쓰러져 죽으리오, 살고자 하는 열망이 이리도 큰 때에.

2012/01/03 00:51 2012/01/03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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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카이사르 : 제국을 만든 남자



대상이 살아있는 사람이든 이미 죽은 사람이든, 작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쓴다면 그 이유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든가 혹은 증오하든가. 물론 사회가 어린이들에게 습득시키고자 하는 구태의연한 도덕률이 위인들의 업적에 뻔뻔스럽게 덧칠되어있는 고리타분한 위인전 시리즈는 예외이겠지만.

다소 지루하게 쓰인 학술적 역사서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담겨있기 마련이다(혹은 억눌러져있으나 서슬 퍼런 울분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글의 행간에서 단지 활자화된 것 이상의 것을 아무 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면, 다시 말해 감정에 호소 해 오는 목소리가 없다면 그 글은 숱한 학생들이 억지로 써 내야만 했던 대학 과제물과 다를 바 없는 ‘죽은 글’이다.

저자가 까닭도 없이 고른 시대와 인물에 대해 그저 사실만 나열해 놓은 그런 무미건조한 책을 읽는 것은 시간의 낭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의 서두에 너무나도 당당하게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시각에서 서술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는 식의 글을 써놓은 것을 보면 더 이상 책장을 넘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어느 한 시대나 한 인물에 대해 평생 한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모든 가치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버린 채 저울처럼 공평하게 서술 된 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격렬한 애정이야말로 모든 위대한 문학의 어머니요, 끓어오르는 울분이야말로 모든 위대한 역사서의 토대다. 우리는 작가와 서술의 대상 사이의 애증의 관계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 우리의 위치를 정할 필요가 있다. 단지 지식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역시 사랑하고 분노하는 것, 그것이 곧 독서의 가치이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살아있었을 적에나 죽은 지 2000년도 더 지난 지금에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다만 민주주의 이념이 보편화되어버린 지금에는 카이사르의 결점을 지탄할 만한 뚜렷한 동기가 없어졌기 때문인지(오히려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경향마저 눈에 띈다), 현대의 카이사르는 리더십을 칭송 받는 역사적 영웅으로서, 매끄럽지만 다소 밋밋한 캐릭터가 되어버린 감이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에는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카이사르로부터 무얼 배워야하는지, 그의 일대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행위는, 카이사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마치 성경속의 우화처럼 느껴지게끔 한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우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한 인물이다. 그가 제국을 이룬 업적은 일개 기업의 성공 스토리와 비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의 관용과 응징은 부하 직원의 실수를 용서하느냐 마느냐하는 가벼운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관용에 배신으로 응수한 부족에 대하여, 전 부족민의 팔을 잘라버리는 것으로 응징했다. 카이사르의 도박은 전 재산을 거는 것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개인의 멸망과 조국의 파멸을 저울질 했다. 그리고는 자신 한 사람의 파멸 대신 로마 전역을 로마 시민과 원로원의 피로 물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카이사르의 이런 생생한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안내자들은 사실 너무 많다. 우선 카이사르 자신이 『갈리아 전기』와 『내전기』라는 너무나도 훌륭한 안내서를 남겼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책은 카이사르가 당대의 로마인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로마의 역사와 전쟁 이전, 이후에 얽힌 카이사르의 행적을 제대로 알지 못 하는 오늘날의 상당수 독자들에게는 입문서로 적절치 않다.

필립 프리먼의 『카이사르 : 제국을 만든 남자』는 카이사르가 태어난 시점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약 56년간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펼쳐 보이는데, 카이사르 개인의 행적뿐만 아니라 말기에 접어든 공화국 로마의 전반적인 역사도 함께 개괄 해 나간다. 서술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카이사르라는 인물의 생애가 워낙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그 점은 보상 받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라틴어 수업 시간에 지루해하는 학생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종종 카이사르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이 뛰어난 인물과 그가 살았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하는 이들에게 카이사르의 삶과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열망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노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 구석에는 “카이사르를 지나치게 칭송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 사이에 묻어버리고 싶지도 않다”고 못 밖아 놓기도 했다. 이런 작가의 정신상태 때문인지, 그의 저작 속 카이사르는 다소 변덕쟁이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의 목에 칼을 들이 댄 정적들까지 용서하고 요직에 앉힌 ‘관대한 카이사르’와 죽은 사람을 깎아내리기 위해 3류 타블로이드 지처럼 온갖 유언비어와 원색적 비난으로 가득 찬 책을 출판한 ‘비겁한 카이사르’는 어쩐지 동일 인물처럼 여겨지지 않기까지 한다. 저자는 카이사르의 이런 행위의 불일치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태도로 ‘이것은 관용, 저것은 실수’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넘어간다.

이 책은 명료하며 이해하기 쉽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로마의 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을 얻기에 적절하다. 더불어 서술의 저변에는 카이사르에 대한 저자의 호의가 깔려있다. 비록 저자 자신은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전문적인 역사 연구가도 아닌 고전 언어학자가 자기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때때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모자라 책까지 펼쳐냈을 정도라면, 카이사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의심할 수는 없으리라. 다만 이 러브 스토리는 다소 미적지근하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가슴 속에 열광적인 무언가가 끓어오르지는 않는다. 카이사르와 함께 그토록 바쁜 여정을 달려왔는데, 그 여정이 끝났을 때에 조금도 숨이 가쁘지 않다면, 역사의 오락적 측면을 달성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이나 혹은 전쟁보다도 더 치열했던 정치전에 대한 묘사도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것은 구태여 과장은 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자제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디테일을 많이 생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 얇지는 않더라도 한 권의 책에 한 인물의 생애를 통째로 담으려다보니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역사상 이렇게 사료가 풍부한 시대도 달리 없는 만큼 그 색채감을 선명하게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쉽다.

추가적인 탐구의 욕구를 일으키지 않는 어설픈 만족감은, 약간 균형을 잃은 격렬한 열망보다 위험하다. 저자는 카이사르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고 하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또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이 한 권의 책이 모두 짊어진 채로, ‘카이사르는 대충 이런 사람이었습니다’라는 이미지만 독자의 머릿속에 심어주고 끝나버린다면, 그건 애초의 의도와는 상반된 결과일 것이다.

총평의 의미로, 이 책의 의도와 가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카이사르의 육성이 담긴 『갈리아 전기』나 『내전기』, 그밖에 키케로의 『서간집』을 비롯한 당대의 기록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역사서에 대한 탐구를 위해 한 걸음 내딛어야 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소감을 적으며 마무리한다.

2011/12/06 00:20 2011/12/0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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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서재/논고

투표 한 번 잘못 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투표는 고사하고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정부가 들어선 적도 있지만, 이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마치 한 번의 투표로 모든 미래가 결정되고, 한 번의 실수로 앞날이 절단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후보자들의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정치라는 건 아주 이성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다분히 감정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보장된 거의 유일한 합법적 분탕질의 기회다. 시민들이 기분 내키는 대로 자신들의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2차 세계대전 때보다도 더 많은 피를 흘리며 이룩한 혁명의 유일한 결과물이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내던지며 얻고자 하는 목표이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한 가지 점에서 대단히 경탄해 마지않는데, 그건 여전히 모택동의 초상화를 광장 한 복판에 걸어놓고 신처럼 숭배하는 일당지배국가 중국과, 3대 세습이라는 전근대적 독재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과 인접 해 있으면서도 시민의 자발적 투표에 의한 정부의 구성이라는 민주정치의 기본 질서를 거의 완벽하게 실행하면서, 한국보다 100년 먼저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국의 길을 걸은 일본보다도 한 발 앞서서 정권 교체까지 이룩한 점이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 측면에서 투표라는 권리를 행사하고 그 결과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국가와 민족은 현대에조차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한국인들의 시민 의식은 상당히 성숙하다고 할 수 있다.

선거라는 것은 큰 틀에서, 시민들의 요구와 열망을 확인하고, 방향을 정하는 기회일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또 행정적으로 구체화 해 나갈 것인가는 선출자들이 임기 중에 고민할 문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 받게 될 것이다

이 흥미진진한 과정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시민이다.

2011/10/26 01:50 2011/10/2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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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록 많은 서양인들을 만나보지는 못 했지만, 그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습된 관용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학습된 관용 정신이란 나와 다른 사고방식도 존중하는 이성적인 태도를 말한다. 이웃 나라와의 백년에 걸친 전쟁이나 구교와 신교의 피비린내 나는 종교 전쟁, 수천만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했던 세계 대전의 골조차도 극복하게 만드는 화합의 힘은, 내 생각을 조리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설득력과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만나본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관용의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그건 ‘이슬람’이다. 요즘 서양 특히 유럽의 사람들은 이슬람에 대해 과거 십자군 전쟁 시대 못지않은 증오심 혹은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그것은 중동 사회의 정치적 불안정에 따른 다수의 난민 유입이 원인인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유럽 사회는 전체 인구의 약 7%가 이슬람교도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정치적, 경제적인 이유로 이슬람 국가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이다. 프랑스의 경우 이슬람 인구의 비율이 가파르게 증가하여 두 자리 수를 넘어섰다. 복지 혜택이 풍족한 스칸디나비아의 국가들에도 이슬람 난민들이 물밀듯이 들이치는 형국이다.

국가와 국가의 대립, 구교와 신교의 대립, 슬라브, 노르만, 게르만, 골, 유태인 등의 민족적 대립, 그리고 성적취향의 대립마저 극복할 것처럼 보였던 유럽 사회이지만, 거센 파도처럼 밀고 들어오는 이슬람에 대해서는 격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이것이 테러라는 아주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되기도 했다.

왜 이슬람은 유럽에서 관대하게 받아들여지지 못 할까. 비록 이슬람이 기독교 문명의 울타리 안에서 통합을 이루어온 유럽 사회의 시각에서 보자면 종교적, 인종적으로 멀리 떨어져있기는 하지만, 수천 년간 교회에서 박해를 받아온 동성애자나 유대인을 사회에서 추방하자는 의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는 해도 정치적으로 큰 공감대를 얻지는 못 하는 상황에서, 유독 이슬람에 대해서만은 적개심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분위기인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이 이슬람쪽에 있다고 주장한다. 재밌는 것은, 유럽인들의 입장에 서면 당연하게 들릴 이 주장이, 비유럽권에서도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에 대한 반감 때문만은 아니다. 아시아인인 우리에게도 이슬람은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다.

얼마 전, 이란의 여자 축구 대표팀이 국제 경기에 히잡을 쓴 채로 출전했다가 복장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몰수패를 당한 일이 있었다. 전 세계인의 스포츠인 축구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데에 대하여, 보수적인 협회측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국제 경기의 룰을 지키지 않고 끝까지 히잡을 고집하는 이란팀을 이해하지 못 했다. 사실 이런 여자 축구 대표팀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딱하다. 이란은 여전히 극단적인 원리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으며, 국가의 법률은 종교적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성립하고 있다. 만일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이 국제 경기 규칙을 지키기 위해 히잡을 벗어버렸다면, 경기는 진행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조국으로 돌아갔을 때에 그 팀이 존속하지 못 할 가능성은 물론이거니와 수많은 광신적 남성들의 폭력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 우려까지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다. 이슬람은 여전히 종교 중심적인 사회다. 즉 사회의 구성원들이 종교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과 두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사회도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근대의 사상가들은 근대 국가의 법률과 종교상의 교리를 분리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근대 국가를 설립시키는 데에 있어서 종교가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을 그대로 떠안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그 어떤 철학보다도 강하게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기준이 성립하는 합리적인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중심의 사회에서는 성직자들의 편익을 위해 신자들을 희생시켜도 그것의 불합리성을 지적할 수가 없다. 교리는 위에서 아래로 향할 때는 성직자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되지만, 아래에서 위로 향할 때에는 절대성을 부여 받아 결코 비판될 수 없는 것이다.

루소도 사회계약론에서 국가 전체의 이익과 교회의 이익은 완전히 합치될 수 없기 때문에, 교회가 정치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시민 혁명기의 사상가들은 완전한 이성에 의한 국가를 꿈꾸었기 때문에 종교적 비합리성을 근절시키기 바랐고, 프랑스의 혁명 정부는 유럽 사회를 교회와 단절시키려는 시도도 했다. 그들은 심지어 ‘일요일’을 없애기 위해서 한 주를 열흘로 바꿔버리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 시도는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 했지만, 오늘날 유럽인들은 여전히 많은 수가 기독교 신자이고, 교회를 나감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가치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교리가 낳은 편견에 사로잡혀서 합리적이지 않은, 그리고 공공의 이익에 합치되지 않는 주장을 제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로 간주 된다. 동성애는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죄악일 수 있지만, 민주적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선택의 문제다. 교회는 여전히 피임과 낙태에 대해 반대하지만, 사회적으로는 그것들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이 인정된다.

유럽에서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보다 축소된 영역에서 자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죽은 후의 세계가 아닌, 지금 살아있는 세계에 관한 한 종교보다는 이성적은 토의, 합리적 근거에 기초한 법률,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권익을 보호하는 민주주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에, 유럽 사회는 관용 정신을 교육할 수 있는 것이다.

이슬람은 확실히 덜 진보되었다. 이것은 밥을 숟가락으로 먹느냐 손으로 먹느냐 처럼 문화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논할 대상이 아니다. 소수의 권력자가 비합리적인 사회 구조를 교모하게 이용하여 다수의 자유를 침해하고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어떤 문화의 산물로도 인정될 수 없다. 이란의 정치 지도자들은 공개적인 연설을 통해서 공공연하게 여성들의 사회생활을 비난한다. 남자들은 여러 여자들을 아내로 삼지만,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남자와 관계한 여자는 돌팔매질을 당해 죽는다. 이것이 한 사회의 문화로 법률로 도덕으로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유럽으로 밀려드는 무슬림들은 서구의 합리적인 가치관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민을 간 것이 아니다.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궁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주를 한 것이다. 이 이슬람인들은 유럽으로 치면 중세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서 현대 사회로 뛰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주어지는 사회보장 혜택을 마다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 무관한 그 어떤 시민의 의무도 수행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합리적인 사고와 관용의 정신은, 종교적 배타주의에 젖어든 그들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유럽의 관용 정신이 그들을 포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유럽 사회가 무슬림들에 의해 이슬람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머지않아 무슬림들도 종교적 광신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배우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첨병은, 지금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유럽 사회의 이슬람들이 될 것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이 앞장서게 될 것이다. 유럽은 일, 이백년이나 앞서서 이것을 이뤄냈지만, 인류의 장대한 역사에서 보자면 겨우 진보의 한 걸음을 먼저 내딛었을 뿐이다.

2011/08/10 00:19 2011/08/1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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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민들이 정치에 대하여 갖는 영향력 이상으로 시민의 권익이 배려되는 사회적 시스템을 본 일이 없다. 만일 시민혁명의 주체 세력이었던 산업 부르주아들이 제1, 2신분이었던 귀족과 성직자들로부터 권력을 뺏어오는 방법으로서 시민들의 참정권을 고안해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종교적 박해와 조금도 다를 것 없는 경제적 박해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투표권은 종종 지배 계층의 무분별한 권력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로 존재하지만, 보다 강력한 장치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미래의 바람직한 사회상은, 중앙 정치보다는 지방 정치가 중시되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다. 국회에서 정당간에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다툼이 거대하게 부풀려져서 시골 촌부에게까지 확대 전파되도록 하는 거대 신문들은 없어지는 대신, 지역의 이해와 관심사를 다룬 지방지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의 실생활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거대한 정치 담론들에 너무 많이 휘둘리고 있으며, 지배자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설계하는 정책들에 대해 수동적인 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치가들이 결코 자신들의 특권을 희생시키는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중국과는 달라서, 시민들이 한 정치가의 정치적 생명을 끊을 수도 있고, 한 정당을 파괴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힘은, 정치 및 경제 분야의 지배자들이 사회 시스템 속에 교묘하게 심어놓은 각종 방해의 장치들과 시민들 스스로의 무관심 때문에 효과적으로 발휘되고 있지 못 하다.

아마도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힘겨루기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현상일 것이다. 오늘날 피지배 계층은, 과거 신민들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택할 수밖에 없었던 민중 봉기나 납세 거부보다는 보다 효과적으로 자신을 지킬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만일 정치를 통해 국가의 구성원들 중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일부 세력이 아닌, 다수 국민들의 권익이 추구되어야 한다면, 그런 정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가 가진 힘을 적절히 활용해야만 할 것이다.

2011/07/26 02:59 2011/07/2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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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때는, 전쟁이 일어났을 때이다. 전쟁이 발발하면 군대를 일으키고 필요한 군수 물자를 조달하기 위하여 국가의 가용한 모든 인적 자원과 생산 수단이 동원된다. 이때 국민 개개인은 징병을 당함으로써 신체적 자유가 구속되고, 자본과 생산 수단이 국가에 의해 점유되기 때문에 개인의 이익을 위한 자유로운 경제 행위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자유의 침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전쟁 시에는 언론의 자유, 정치적 행위의 자유 나아가서는 생각의 자유마저 빼앗기게 된다. 가령 전쟁의 무익함을 명백히 보여주는 자료를 제시하거나, 청년들을 강제 징병하는 국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개진하는 행위는 때때로 도덕적 비난을 넘어 법적 제재를 받기도 한다.

전쟁 시에 개인들이 이런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국가 권력의 비대화를 용인하는 이유는, 전쟁이 국가의 존망이 걸린 대사업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일차원적인 이유는 적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다. 인간은 쳐부수고 싶은 적이 있을 때에는 그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이 상처 입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동물이다. 적개심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하며, 감정에 따라 분풀이를 하도록 부추긴다. 이러한 증오심이 국가나 정당의 선전을 통해 마치 긍정적인 에너지인 것처럼 둔갑되는 경우는 왕왕 있다. 그 대표적인 수단은 이른바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종료 후 미국, 영국, 프랑스 국민들은 자신들의 조국이 독일인 병사들을 더 많이 살해하고, 그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강화 조약을 맺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영광스러운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 자랑스러운 조국은 동시에 전쟁의 광기로부터 벗어나 합리성을 되찾을 것을 역설한 수많은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묵살하거나 그들을 지위에서 끌어내리거나 심지어는 감옥에 처넣어버린 나라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승리자들을 그토록 만족시켰던, 패자에 대한 가혹한 처사는 이후에 더 큰 전쟁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증오심은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든다. 맹목적이 되어버린 사람만큼 통제하기 쉬운 대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증오심을 부추기는 이 수단은, 오늘날의 정당정치 체제에서도 대단히 유효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통해서만 권력을 얻을 수 있다. 이론상으로 그 권력은 직접 정치에 참여할 수 없는 수많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는 것이기 때문에, 정당은 권력의 주인인 지지자를 가장 두려워해야 하며, 국민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이와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 즉 정당은 자신의 지지자들을 가장 만만하게 본다. 한편 국민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이 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지지하지 않는 정당의 정책에만 늘 비난을 퍼붓는다. 이것은 우리가 항상 적개심과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정치인들은 적(敵)을 만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 공적인 경우에 그러하다. 국가 원로와 경제인과 엘리트들을 서민의 적으로 돌리거나, 노동자와 대학생을 자유주의의 적으로 돌리는 일은, 거의 언제나 특정 정당에게 유리하다. 국민들이 어느 한 편견의 지지자가 되어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더 많이 증오하고 비난할수록, 정당은 실제 정책의 방향성이나 그것의 실천 여부와는 상관없이 확고한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단체든 자신의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그렇다면 ‘정치적 화합’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놓는 한, 화합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방법은 국민들이 똑똑해지는 것이다. 관용은 분명 증오심보다는 격조가 있는, 추구할 만한 덕목이다. 그러나 관용의 정신은 단지 그것이 도덕적인 가치라는 이유만으로 추구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감정이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이유 때문에도 반드시 추구되어야 할 가치이다. 우리는 정치인이나 언론이 즐겨 언급하는 범주, 이를테면 ‘서민’, ‘학생’, ‘지역민’, ‘고용주’ 따위에 스스로를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국민은 누구나 어떤 범주에라도 포함될 여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고, 다른 생각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 시민의 자격이다.

2011/07/19 00:15 2011/07/1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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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 훌륭한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기보다 열 살 어린 사람 앞에서 현인(賢人)이 아닌 사람도 없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다. 내가 중학생 때 읊조릴 수 있었던 주문을,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외우고 있다. 나는 이미 믿음을 잃었기에 사람들의 지리멸렬한 훈계에 대해 귀를 닫고 나의 황폐한 삶을 끌어안은 채 은거하기로 했다.

대낮에 태양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은 없지만, 태양을 등지는 것은 간단하지. 결국 마음속 동굴이 우주에서 가장 후미진 곳이다. 한 줄기 빛조차 들지 않는 그 동굴 속에서 차갑고 쓸쓸한 내면을 관조하는 칩거의 생활에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도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의 관습에 따라 동굴 벽에 하루하루를 새겼다. 혹시 나의 달력에는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동굴 속 생활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길었을 수도 있고, 혹은 아주 짧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헤아린 시간에 오류가 있다 하여도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차피 내가 느낀 시간이, 내가 살아온 시간이다.

한 번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지났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하루에 두 번을 잤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이틀에 한 번 잤을 수도 있다. 일주일이나 한 달 같은 시간의 단위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동굴 속에도 1년이란 시간의 주기는 존재했다. 그것은 희미한 빛이다. 어떤 우주의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꿈쩍도 않고 있어도, 어느 순간엔가 동굴 입구에서부터 희미한 빛줄기가 들어오는 일이 있다. 태양의 잔광인지 아니면 또 다른 별의 흔적인지, 어쩌면 그것은 반딧불 같은 작은 불빛이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연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필연에 의한 것이든 그 조광(照光)은 내 마음 속 동굴로 뚫고 들어오는, 외부로부터의 유일한 침범이었다. 어떤 때는 1년이 700일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수를 제대로 헤아렸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다섯 번의 조우, 나의 셈법에 따라 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굴 속 인간은 새로운 신화를 창작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들쳐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그대. 나는 당신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세상과 달라지기로 했다. 그것이 나를 특별한, ‘읽을 가치가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앞으로 몇 년 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이 동굴을 비우게 될 때에, 벽에 빼곡히 적힌 글들은 너에게 남겨주겠다. 그것은 낭비되고 잘못 사용된, 그러나 겸허하고 진실 된 인생의 기록이 될 것이다.

깊고 어두우며 적막한 동굴에, 빛을 들고 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너를, 나는 상상했다.

2011/05/30 22:25 2011/05/30 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