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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세계의 주도권이 아시아로 넘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어있을까? 지난 2세기 동안 서구 문명이 세계를 휩쓸며 우리의 삶을 이렇게 변화시켜 놓았는데, 장차 아시아가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는 시대가 펼쳐지면 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게 어떤 문명적 진보를 선사할 수가 있겠는가. 이런 고민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중국의 저 십 수억 인구를 배경으로 장사나 해먹는, 돈 자랑하고 힘 자랑하는 깡패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나 일본의 위치는 중국이라는 조폭 우두머리 아래에서 콩고물이나 주어먹는 조폭 똘마니 정도가 되어버리겠지.

만일 우리가 말하는 세계의 주도권이나 패권이라는 것이 단순히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힘을 지칭하는 것이라면, 아시아의 패권은 오히려 세계사적인 불행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서구의 문명이라는 것은 제국주의 같은 오점, 공산주의나 파시즘 실험이 낳은 과도한 폭력으로 많은 파괴를 불러오기도 했으나, 오늘날 우리가 투표권을 행사하며 우리의 정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는 것, 사소하게는 이렇게 자유롭게 입고 자유롭게 말하고 자유롭게 거주하는 이 삶의 양태까지를 우리에게 선사해 주었다.

과연 아시아의 세기는 인류에게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명 중국이 지금 같은 모습으로 세계의 패권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제국주의적인 야망을 완전히 버리지 못 한 일본이, 이 새로운 아시아의 세기를 주도해 나가서도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으로서는 더더욱 이 두 나라가 더러운 과거라고 하는 분열과 불화의 씨앗을 안은 채 파워 게임에 경주하다가 결국 힘 있는 어느 한 쪽의 승리로 끝나는 게임을 쳐다만 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중국은 짱개라 욕하고 일본은 쪽바리라고 욕하는 사이에 상황은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분명 어떤 사명을, 역할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세기의 역사를 주도해 나갈 힘이 아시아로 넘어오는 이 시점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의 장벽을 제거하는 역할은 한국만이 할 수 있다. 한국은 20세기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로서 일본에 대하여 철저한 역사적 반성을 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일제의 식민지배와 이념 대립으로 인한 민족상잔의 내전, 그리고 군사독재라는 뼈아픈 역사를 가지고서도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수준 높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구현한 나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일당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중국을 향해서도 민주화의 선배로서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이런 위치와 역할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 하고 단지 기업의 금력이나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만 주변 나라와 경쟁하려고 들고, 우리의 우위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는 결코 새로운 문화가 아니다. 우리의 복장은 이미 충분히 가볍다. 헐벗은 연예인들이 더 벗고 설친다고 해서 그것을 따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무를 즐길 자유를 누리고 있다. 연예인들이 방종하게 놀이의 쾌락을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닮을 필요는 없다. 엔터테인먼트는 돈 벌이의 수단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아시아에, 나아가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무엇이 고작 그런 연예인들의 춤사위뿐이란 말인가. 보다 차원이 높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2/02/21 01:02 2012/02/21 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