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Filed under 서재/논고

투표 한 번 잘못 한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 투표는 고사하고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정부가 들어선 적도 있지만, 이 나라는 망하지 않았다. 마치 한 번의 투표로 모든 미래가 결정되고, 한 번의 실수로 앞날이 절단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후보자들의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정치라는 건 아주 이성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다분히 감정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보장된 거의 유일한 합법적 분탕질의 기회다. 시민들이 기분 내키는 대로 자신들의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2차 세계대전 때보다도 더 많은 피를 흘리며 이룩한 혁명의 유일한 결과물이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내던지며 얻고자 하는 목표이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한 가지 점에서 대단히 경탄해 마지않는데, 그건 여전히 모택동의 초상화를 광장 한 복판에 걸어놓고 신처럼 숭배하는 일당지배국가 중국과, 3대 세습이라는 전근대적 독재 정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한과 인접 해 있으면서도 시민의 자발적 투표에 의한 정부의 구성이라는 민주정치의 기본 질서를 거의 완벽하게 실행하면서, 한국보다 100년 먼저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국의 길을 걸은 일본보다도 한 발 앞서서 정권 교체까지 이룩한 점이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적 측면에서 투표라는 권리를 행사하고 그 결과까지 확인할 수 있었던 국가와 민족은 현대에조차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한국인들의 시민 의식은 상당히 성숙하다고 할 수 있다.

선거라는 것은 큰 틀에서, 시민들의 요구와 열망을 확인하고, 방향을 정하는 기회일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정책적으로 또 행정적으로 구체화 해 나갈 것인가는 선출자들이 임기 중에 고민할 문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음 선거’를 통해 평가 받게 될 것이다

이 흥미진진한 과정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시민이다.

2011/10/26 01:50 2011/10/26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