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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니아 총회에 다녀왔다. 총회는 의례적으로 연주회 직후에 열린다. 총회 참석 대상은 연주회 참여자 전원이며, 개회 정족수는 정원의 절반. 그러니까 연주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참석해야만 총회를 열 수가 있다. 사실 동아리 총회가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을 철저히 지킬 줄은 몰랐는데, 정확히 지키더라.

나는 개회 시간인 7시보다 30분가량 늦게 회의 장소에 도착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도착함으로써 개회 정족수를 채워 바로 총회가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유포니아의 예산 집행 및 결산 보고. 오케스트라 동아리의 자금 운용 규모가 얼마인지 사실 궁금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상당히 큰 액수. 단체의 돈 관리라는 것이 아무리 작은 액수라 하더라도 여러모로 힘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유포니아의 저 막대한 예산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일은 얼마나 수고롭겠는가. 새삼 회계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총회의 메인이벤트는 차기 총무 및 회계의 선출. 유포니아 회칙 상 총무 및 회계는 한 학기 동안의 임기를 마친 뒤 자동적으로 회장 및 부회장으로 승격되기 때문에, 총무 및 회계 선거는 곧 회장 및 부회장 선거다.

총무와 회계는 선거로 뽑고, 유포니아 내의 여러 행정 임원들 및 각 악기 파트의 파트장들은 전 임기의 임원들이 임의 내정하였다. 내정자 대부분이 08학번 학생들로, 유포니아는 바야흐로 08 학번들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다.

총무 및 회계 선거에 대해 약간 더 부언하자면, 총무 후보로는 모두 세 명이 나서서 제법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 중 한 후보는 세 차례의 고사 끝에 네 번의 추천을 받고서야 겨우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재밌는 것은 세 후보 모두 바이올린 파트 소속의 남학생들이었다는 것. 관례적으로 총무직에는 남학생, 회계직에는 여학생이 선출된다.

첫 투표에서는 과반의 득표를 기록한 후보가 없어 재투표까지 실시해야 했고, 결국 한 사람이 5표의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 회계 선거는 한 사람이 단독 출마하여 찬반 투표 끝에 당선되었다.

한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책임을 떠맡는 것이다. 실로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러나 역량과 여건을 떠나서 용기, 혹은 객기로라도 그것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은 청년에게 허락된 특권이 아닐까. 사실 나도 1학년 때 당시 몸담고 있던 동아리 회장 선거에 출마 한 적이 있다. 나 스스로는 전혀 생각도 않고 있었지만, 회장님의 부탁을 받아서 어렵게 결정하고 나간 자리였다. 그러나 결과는 복학을 한 대선배에게 당선이 돌아간 것이었고, 회장과 부회장은 성별이 다른 것이 좋다는 암묵적인 룰에 따라 나는 부회장직에서도 자동적으로 배제되었다.

당시를 돌이켜 생각 해 보면, 물론 나에겐 회장직이나 임원직을 떠나서 동아리 활동 자체에 이미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사건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까닭으로, 그나마 맡고 있던 임원직은 후임에게 인수인계하고, 다른 어떤 직책이나 역할에 대한 제의도 고사한 채 동아리를 떠났지만, 한편으로는 조직의 리더로서 조직의 미래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그려보았던 복안들이 쓸모없게 된 것에 대해 조금은 허탈해 한 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사람의 욕심을 존중한다. 욕심은 도전과 성취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덤비는’ 사람들의 유별난 의욕에 대해서도, 나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사실 ‘욕심’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자연스런 본능이 아닌가. 욕심을 억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조선의 가치가 여전히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욕심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기 있는 행위로 칭찬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반장 선거나 전교 회장 선거, 대학에 들어와서는 동아리 회장 선거까지 거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출마했으며, 그 중 거의 대부분의 선거에서 낙선한 경험이 있는 나는 이제 내성이 생겨서 선가라는 것이 한 번 욕심을 부려볼 만한 것이고 떨어지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여전히 출마라는 것이 일대의 고민이고, 낙선이 상당한 상처가 되기도 할 것이다.

군대 문제로 발목 잡히지만 않았더라면, 낙선을 각오 하고서라도 한 번 출마를 해봄직 했겠지만, 나는 이제 창창한 후배들이 동아리의 벅찬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하는 장면을 한 구석에서 카메라에 담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낙선자와 함께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그 덧없어 보이는 도전의 가치에 대한 역시 덧없는 칭송을, 잔을 비울 때마다 되풀이 한 것이다.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시다,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고속도로를 타고 왔는데, 미터기 요금에 톨비가 합산되는 건지 어떤 건지도 나는 모르고, 또 새벽에 장거리를 타고 왔으니 3만원 가까이 나온 요금에 만원을 더 얹어 지불했다. 이거야 뭐 신촌에서 모텔 방 잡아 자는 게 나을 번도 했군.

내일, 정확히는 오늘 오후, 바이올린 마지막 레슨이다.

2009/09/08 05:26 2009/09/08 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