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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마지막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날이었다. 학원가는 길에 잠깐 백화점에 들러서 선생님 드릴 선물을 골랐다. ‘설화수’의 아이크림. 잔주름과 다크서클 없애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런 것에 관심 기울일 나이이니까, 괜찮은 선물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하 식품 매장에서 치즈 케이크도 하나 샀다. 학원에는 여러 선생님들이 있으니까, 나눠 드시라는 뜻에서.

3시 10분 정도에 레슨이 시작되었다. 우선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모차르트 론도 악보를 보여드리고 몇 군데 손가락 번호를 새로 정했고, 까다로운 리듬을 한 번씩 연습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연습하고 있던 아델라이데 콘체르토로 돌아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례 훑었다.

이렇게 끝났다. 일기장을 뒤져보니, 이 학원에서 첫 레슨을 받은 날에 쓴 글이 있다. 첫 레슨을 받은 날은 2007년 10월 4일. 그러니까 이번 선생님에게서 레슨을 받은 게 꼬박 2년이다. 과거 일기에는 ‘선생님’ 대신 ‘강사’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내가 얼마나 타인에 대해 냉정하고 방어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도 학원을 처음 찾았을 때가 기억이 난다.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 학원을 찾아볼 여유도 없이 개강을 맞이했다. 연대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지원해서 합격하면 단원들에게 물어서 학원이나 레슨 선생님을 소개 받을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1년 뒤 입단해서 단원들의 사정을 살펴보니, 바이올린 파트 사람들 중 레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어차피 혼자 알아 볼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아무튼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학교 근처에 있는 이 학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개강 한 달째를 맞이할 무렵, 불쑥 학원에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원장 선생님은 당장 수강 신청서를 들이밀 기세였지만, 난 레슨 선생님을 직접 만나보기 전에는 등록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레슨 선생님을 직접 만나보겠다고 학원 복도 의자에 앉아 버트란드 러셀의 ‘Conquest of Happiness’를 읽으며 30분 넘게 기다렸더랬다.

결국 바이올린 선생님과 만나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현재 음악 활동은 하고 있는지, 교육 방식은 어떤지 등을 나름 꼼꼼하게 질문하고서야 수강 신청서를 작성했더랬다. 사실 우리나라 정서상, 출신 학교 같은 걸 물어보는 것이 실례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것들을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또 기본적으로 신뢰가 바탕 되어야 사제 관계도 좋지 않겠는가.

선생님은 레슨 시간을 변경하는 일이 제법 있기는 했지만, 지도 자체는 성실했다. 나도 워낙 성실한 학생이어서 레슨 시간에는 대체로 수업에만 집중 했지만, 간혹 가다가 수업 중에 서로 즐거운 수다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선생님이 참여하는 연주회 무대를 보러 간 일이 있다. 재밌는 건, 선생님이 몸담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이 유포니아 선배라는 것이다. 앞으로 연주회를 보러 가게 되면 인사를 드릴 사람이 있으니 즐거울 것이다.

학원 등록 후, 유포니아에 입단하기 전까지 약 1년 동안은, 평일이면 거의 거르지 않고 학원에 가서 최소 1시간씩은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내 성실함에는 선생님들도 탄복할 정도였다. 그렇게 키운 실력으로 학원 발표회 무대에도 섰고, 내개 한 번 탈락의 쓰라림을 안겨준 유포니아에도 배짱을 가지고 재도전하여 결국 합격을 할 수 있었다.

학원 원장 선생님은 상당히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악수를 하며 ‘건승’을 기원 해 주었다. 임관 후 서울 쪽에 배치가 되면 다시 오라는 말과 함께.

내가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4년이 조금 넘었다. 그 4년의 시간 중 2년을 함께 했으니, 이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또 일기장을 뒤져본다. 2007년 8월 2일, 일본에서 마지막 레슨을 받은 날 쓴 글이다. 말미에 이렇게 적혀있다.

<레슨이 끝난 뒤, 사장님 부부에게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했다. 사장님은, 아직 출국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한 번 더 들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아사이 선생님에게도 직접 작별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가능하다면 시간을 내서 아사이 선생님이 출강하는 수요일에 한 번 더 들르기로 하고, 나는 학원을 빠져나왔다.

하늘은 아직도 환했다. 처음 레슨을 받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학원을 나설 때면 이미 어둑어둑했었는데 말이다. 레슨 받으러 가면서도 찬바람 맞아 손 굳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장갑을 끼고는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바이올린 짊어진 어깨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만큼 시간이 흘렸다. 문득 깨닫고 보면 이렇게 놀랄 만큼 환경이 바뀌었는데, 그 변화의 과정은 느리고 자연스러웠다. 나도 내 안에 쌓아 올린 시간만큼 변화했을까. 그만큼 성숙해졌을까. 바이올린 실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나는 삶을 음미하는 자로서의, 그 인간됨의 무게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모르겠다. 역시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은, 주위 환경을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다만 즐거웠다는 것 밖에는,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난 2년간 내가 얼마나 더 성숙해졌는지, 그 시간이 내 인생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자연스런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고, 음악을 더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삶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데에 조금 더 능숙해진 것 같다.

이제 입대를 하면, 훈련을 받는 4개월 동안은 레슨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래 최장의 휴식 기간이다. 더군다나 혼자 연습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어, 체감하는 공백 기간은 더욱 길 것이다. 어쩌면 바이올린 시작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별 걱정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바이올린을 그만 둔다는 것은 이미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처럼, 악기를 다시 집어 들었을 때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그마저도 자연스럽다. 내가 악기 케이스를 다시 여는 것 자체로…….

2009/09/10 02:53 2009/09/10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