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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사회 통역을 한 게 자넨가? 대단히 잘 했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내가 널 좀 데려다 써야겠어.”

부대 복귀 첫 날, 10월 말쯤 공분본부에서 열릴 한일정보교류회의 통역으로 와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확실히 참모총장 만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기왕 통역이 되었으니, 참모총장뿐만 아니라 국방부 장관도 한 번 만나 봐야지.

그저께였던가, 공군회관 7층에서 공군전우회 회장님과 함께 밥 먹던 사람이, 오늘 새로운 공군참모총장이 되었단다. 그때 살짝 얼굴은 봤는데, 이름을 몰랐다. 알고 보니 박종헌 전 교육사령관. 교육사에서 한창 군사훈련 받을 때, 지겹도록 외웠던 직속상관 관등성명에 등장하던 그 이름이다. 그리고 종교참석으로 절에 가면 그 뒷모습만 자주 볼 수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석가탄신일 전야 연등제 때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주지 스님과 선두에서 걸어가던 모습이 기억... 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 때의 일일랑은 마치 10년 전의 일처럼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복귀 첫 날 보고를 마치자마자, 새로운 파견 허가를 요청해야 했으니 사무실 내에서의 내 입장은 점점 더 난처해지고 있다. 통역하러 온 거냐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내 파견은 윗사람들이 결정하는 일. 사실 내가 어떤 대단한 자리에 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건 내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오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체력검정. 훈련 받을 때처럼 다 알아서 해줄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스스로 챙길 게 많았다. 자기 일은 내팽개쳐두고 바깥 일만 신경 쓴다고 오늘은 좀 깨졌는데,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한 번 씩 이런 쓴소리 들을 위치에 있는 거니까, 내가.

3km 오래 달리기는 15분 15초, 3급으로 겨우 불합격을 면했다. 팔굽혀펴기도 3급. 윗몸 일으키기는 불합격했는데, 근성 있게 다시 도전 한 결과, 감독하던 부사관의 협조(?)와 숫자 세주던 병사의 적극적 협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나야 불합격 하더라도 상관은 없는데, 성과상여 평가할 때 반영되어 사무실 전체에도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편법이라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들수록 처세만 늘어가지고…….

내일은 국군의 날. 고대하던 휴일이 아니고, 고달픈 행군의 날이다. 1시간 반 정도 행군을 한다는데, 나는 소위라는 죄로 단본부 제대 선두에서 사람들을 인솔하게 생겼다.

유포니아 새 바이올린 파트 파트장(아마 악장이겠지?)한테서 연락이 왔다. 바이올린 신입 환영회가 있는데 시간 되면 오지 않겠냐고. 솔직히 대학교 1, 2학년들 주축이 되는 무대에 사회인 선배가 끼는 게 서로 무슨 재미가 있겠나(아니, 선배들은 좋아하지……. 그게 늙는다는 거고). 이 초대가 뭘 의미하는지는 알지. 예전에 유포니아 대선배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랑 받는 선배의 세 가지 조건!

첫 째, 칭찬을 많이 해 줄 것.

둘 째, 계산을 먼저 해줄 것.

셋 째, 돈 냈으면 빨리 사라져 줄 것.

통역 수고비에 파견비에 돈도 제법 벌었고 가서 좀 써줄까.

2010/09/30 21:54 2010/09/30 2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