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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는 연도(年度)는 둘. 하나는 1797년. 남자라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따위의 멋들어진 대사를 내뱉으며 한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버리는 불굴의 무인에 대한 동경을 품는 바보 같은 시기를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인간이 되는 거고, 그렇지 못 하면 짐승이 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나폴레옹이 왜 알프스 산맥을 넘었는지, 사람들은 관심이나 있나?

나는 ‘나폴레옹 멋져’란 생각 때문에 이 연도를 외우고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1797년은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은 해도 아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방면 사령관으로 부임한 것은 그 전 일이니까 처음 알프스를 넘은 것은 1797년 이전일 것이고, 저 유명한 일화는 오스트리아와의 전투를 위해 한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 때의 일이라니까 좀 더 후의 일일 것이다.

1797년은, 바로 나폴레옹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킨 해이다. 이로써 1200년 존속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진부한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때 유럽 제일이었던 국가의 부와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파상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까지 생존했던 이 국가는, 결국 유럽 국가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서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평할 줄 알았던 나폴레옹이, ‘바다와의 결혼식’ 행사 때 베네치아 통령이 타던 선박인 ‘부르키엘로’는 호화롭다고 바다 위에서 불살라버렸다. 참고로 이 부르키엘로의 아주 작은 모형이, 이탈리아 해군 기지인 아르세날레 남쪽에 위치한 해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혹 베네치아에 관광 가는 사람이 있거든, 한 번 쯤 들러보라.

나폴레옹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는 또 하나의 연도는 1812년으로,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해이다. 사실 이 사이에 나폴레옹의 대관식도 있고 한데……. 이 1812년이라는 해를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다음에 소개할 곡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1840-1893)


차이코프스키 작곡 ‘1812년 서곡’ 작품 번호 49번.

‘1880년에 작곡된 이 장대한 오케스트라 곡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에 대한 러시아 군의 승리를 묘사한 것으로써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국가를 병치시켜 양국 군대의 치열한 전투와 러시아 군의 최종적 승리를 생생하게 그려낸…….’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중학교나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나? 그런데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국가도 구분 못 하는 애들한테 러시아적인 선율이 어쩌고 해도 사실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란 말이다. 결국 실제 대포를 가져와 펑펑 쏴대고, 교회 종을 울려가며 연주했다더라 하는 ‘일화’ 정도나 기억하면 아는 척 거들먹거릴 수 있단 얘기지.

사실 이 곡은 정말 단순하고 유치하다. 하지만 이 곡에는, 정치적 선전이라는 의도도 어느 정도 들어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하고 노골적이고 유치한 것만큼’ 이에 효과적인 것도 없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부터 ‘아 차이코프스키’란 느낌의 선율이 연주되다가, 잠시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하더니, 요란한 대포 소리와 함께 힘찬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이 연주된다. 그러다가 마치 러시아의 민족의 각성을 암시하는 듯한 서정적인 선율이 연주되더니, 이번에는 프랑스 군의 고전을 암시하는 듯 라 마르세예즈가 조각조각 해체되어 삽입된다. 마지막에는 러시아의 국가 ‘신이시여 차르를 구하소서’의 주제가 힘차게 연주되는 가운데, 승리의 팡파르로 장식된다.

혹시 여기 삽입된 멜로디가 러시아 국가가 맞는지 확인 해 보겠다고, 러시아 국가 찾아 듣는 짓은 하지 말기를. 차이코프스키 시대의 국가가 현대 러시아 국가랑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재밌는 것은, 정작 전투가 벌어졌던 1812년엔 러시아에 국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러시아 국가는 1815년에 처음 지정되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시대에는 ‘신이시여 차르를 구하소서’가 1833년부터 새로 국가로 지정되어 불리고 있었다. 이후 소련 시대에 국가가 무려 네 차례나 바뀌었고, 소련이 해체된 직후인 1991년에 국가를 새로 정했으나, 2000년 푸틴 대통령 때 다시 한 번 바뀌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도, 분명 혁명기 때부터 널리 불렸으나 국가로 지정된 것은, 1812년 서곡이 작곡되기 불과 1년 전인 1879년이었다. 그 힘차면서도 호탕한 선율 때문에 사랑받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놈들의 더러운 피를 밭에다가 뿌리자’라든가…….

곡만 들으면 러시아 군의 통쾌한 승리가 연상된다. 그러나 어디 러시아 군이 이렇게 칭송할만한 기념적인 승리를 거둔 적이 있었던가……. 사실 이 곡이 묘사하고 있는 ‘보르디노 전투’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쿠투조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이 맞닥뜨려 서로 비슷비슷한 피해를 입고 결국 결판을 내지 못 한 싸움이었다. 게다가 쿠투조프가 퇴군을 하는 바람에 결국 나폴레옹이 모스크바까지 진격하게 됐으니, 이 싸움이 어디 이렇게 웅장한 음악으로 치장할 만하냔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事實)이 아니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의 무와탈리에게 거의 죽임을 당할 뻔 하고, 겨우 상대방의 실수로 목숨을 건져 ‘평화 조약’을 맺는 것으로 체면치레 했으나, 이집트 전역에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찬란하다 못 해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용의 기념 부조들로 자아도취의 향연을 펼쳐놨으니, 후대 사람들은 그를 정녕 위대한 승리자요, 이집트의 자주적 혼이라 여기지 않는가.

다섯 권짜리 ‘전쟁과 평화’로 읽는 것보다도 이렇게 15분 정도의 음악으로 듣는 이야기가 뇌리에 더 선명하게 각인되는 것이다. 정치 선전이란 ‘단순하고 노골적이고 유치해야’하며, ‘반복적’일수록 효과가 좋다.

하지만 곡의 이러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정작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이 쓴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래 현명한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의 두뇌에 가장 직접적이고 위력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들을 혐오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 우리들은, 그저 예술 작품의 하나로서 감상하면 될 것이다.

바로 이 곡이, 유포니아의 가을 정기 연주회 서곡이며, 나는 제1 바이올린 주자로서 연주하게 된다.

2009/07/21 04:15 2009/07/21 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