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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천 만 원의 돈으로도 하루 저녁의 행복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하기는 쉽지 않다. 훨씬 더 적은 돈으로도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지혜다. 그 지혜는 지식과 경험의 산물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샤인Shine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 남자의 두서없는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 그 남자는 유태계이고, 호주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정신병자이고, ‘피아니스트’이다. 그의 이름은 데이빗 헬프갓David Helfgott. ‘신의 도움Help of God’을 연상시키는 자기 성(姓)을 스스로 비웃는 그는, 라흐마니노프 3번을 연주하다가 미쳐버렸다.

라흐마니노프가 젊은 시절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야심차게 작곡한 교향곡 1번을 공개한 뒤 절망적인 혹평에 직면했고, 이후 우울증에 걸려 수 년 간 작곡에는 손도 대지 못 했다.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겨우 심리적으로 재기한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하여 단번에 작곡가로서의 명성도 얻지만, 본래 귀족 가문의 태생이었던 그는 트로츠키의 붉은 군대가 동토를 피로 적실 때 미국으로 망명한 직후부터 자신을 평생 따라다닐 새로운 정신질환을 얻게 되었다. 바로 향수병. 40년 가까운 미국 생활 동안 연주자로서는 평판이 좋았고 공연도 많이 했지만, 작곡가로서는 변변찮은 곡 몇 개를 쓰는 것에 그쳤다.

격동의 20세기. 라흐마니노프는 드뷔시,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와 동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그는 프롤레타리아를 가장한 농민들의 2월 혁명과 타이타닉 호, 우아한 레이스 부채를 든 귀부인들이 얌전히 앉아있는 살롱 대신 천재를 ‘소비’하려는 호기로운 대중들로 가득 들어찬 연주회장, 리코딩 기술과 재즈 밴드의 시대를 살기도 했다. 한 예술가의 업적은 어떻게 평가 받아야 할까. 그 어떤 예술가도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모든 예술가는 어떤 식으로든 과거에 빚을 지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다. 라흐마니노프는 19세기 낭만주의와 20세기 자유자본주의의 결정(結晶)이지만, 안타깝게도 새 시대의 개척자는 되지 못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최후의 낭만주의 작곡가.’ 그러나 구닥다리 과학이론은 폐기되거나 잊히고 최초의 발명품은 더 나은 발명품에게 자리를 내주지만, 예술은 그 대체 불가능함으로 인하여 영원한 생명력을 누린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대체 불가능한 그만의 색채로 그 가치를 평가받아 마땅하다(그리고 드뷔시,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등 새 시대를 열어젖히고자 노력한 많은 이들 중 감히 그 누가 라흐마니노프의 ‘인기’를 이길 수 있겠는가).

우리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에 서린 짙은 러시아 냄새와 차이코프스키가 물려준 정신적 유물, 20세기에 이미 당대의 현인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렸던 ‘뜨거운 혹은 미칠 듯한 열정’을 즐기면 된다. 한 세기 전의 대중들이 그랬던 것처럼.

피아니스트 백건우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별명이다. 이런 멋진 별명은 누가 생각해서 붙여준 것일까.

“그것은 가망 없는 질문이다. 모두가 작품에 대한 충실성을 이야기하며 ‘나는 작곡가의 영혼이 되어 연주해요’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작곡가의 혼을 담아 하는 우리의 연주는 어떠한가. 같은 피아노로 시작했을지라도 지휘자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결과물이 나오고 만다. 결국 ‘이것이 진실이다’라는 말은 음악에서 사라져야 한다. 다만 설득력에 대해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지휘자 므라빈스키의 말이다. ‘진리’의 부재가 곧 진리. ‘답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 걸어야 하는 가혹한 구도(求道)의 여정. 이것만큼 모순에 들어차 있으며, 철학자를, 예술가를, 과학자를 절망에 빠뜨리는 ‘진실’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것이 진실이다’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라는 말 자체는 어린 아이라도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도의 인생이 무엇을 남겼나? 이제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이 깊게 파인 60대의 노(老) 연주자가, 성실했던 자신의 인생을 걸고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엿볼 수 있는 것은 흔적, 그가 험난한 길을 직접 걸었다고 하는 증거뿐이다. ‘나만의 연주를 추구한다.’는 젊은 연주자들의 말에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지 않은 연주자가 있었던가? 지휘자를 향해 달려가든 혹은 그로부터 멀어지든 결국 자기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 한다. 한 시점에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많은 걸음을 걸었는지는, ‘들을 귀가 있는’ 청중이라면 들을 일이다.

말러 1번

내가 유포니아에서 처음으로 연주했던 교향곡. 신입 환영회 때 어떤 곡을 연주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농담조로 ‘브루크너’라고 대답했는데 돌아온 곡은 말러였다. 변변한 연습 공간이 없어 손끝이 얼어붙을 만큼 추운 복도에서 연습했던 기억.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늦은 밤이면 동아리 방에서 전기난로를 켜놓고 연습하기도 했다. 거대한 호숫가에 서서 조약돌 하나씩을 집어던지는 듯한 막막함을 선사해준 곡. 하루 한 번씩은 들었고, 보잘것없는 결과 앞에 멋쩍게 웃음 짓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결국 지킬 수 없었던, 찌릿찌릿한 연주회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곡.

태고의 신비라고 하든 아직 잠들어있는 대자연이라고 하든 불가사의한 현악기의 하모닉스 소리, 곧 소리가 만들어내는 정적. 그 정적을 뚫고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트럼펫 소리. 아! 정말 대기의 질량마저 느껴지는 원근법이로군! 그러나 트럼펫 주자를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았다. 조금 있으니까 무대 왼쪽에서 세 명의 트럼펫 주자가 쪼르르 들어온다. 그렇다, 그 트럼펫 소리는 ‘멀리서 들여오는 듯한’ 소리가 아니라 정말 ‘멀리서 들려온’ 소리였던 것이다.

완벽한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한 음반 작업 중이라면 모를까, 일회성이고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한 실황에서 굳이 연주에 대한 집중의 방해까지 감수 해 가면서 ‘멀리서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를 연출해야 했을까? 게다가 한 트럼펫 연주자는 자기 자리를 찾아 앉던 도중 악보인지 뭔지를 떨어뜨려서 큰 소음까지 만드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1악장은 반복이 생략되었고, 2악장 이전에는 ‘꽃의 악장’이 연주되었다. 이 모든 변수들이 집중을 방해했다. 요즘은 무엇이든 ‘최초의 의도’가 중시된다. 나는 대개 ‘최초의 의도’보다는 ‘최후의 의도’를 더 중요시한다. 물론 어떤 철학자는 죽기 직전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다고 평생 반종교적 신념으로 산 그 인생이 한순간에 재평가 받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말했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지경이 아니라면, ‘나중의 생각’을 존중 더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확고한 신념에 따라 인생을 산 사람도, 그가 산 삶으로 말미암아 생각에 변화가 생기게 마련이니까(간디가 젊은 시절 비폭력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그것이 그의 원 사상에 더 가깝다는 주장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것이다).

말러가 본래 2악장이었던 ‘꽃의 악장’을 나중에 삭제했다면, 그 의도를 헤아릴 수 없다 하더라도 그 결정은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적어도 수정 이전의 곡을 ‘본의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주위 사람들의 입김에 너무 자주 휘둘린 브루크너의 경우는 예외로 하더라도).

주빈 메타 그리고 이스라엘 필하모닉

파르시 지휘자와 키파를 쓴 연주자들. 그들 사이에는 묘한 연결고리가 있다.

영상으로 봤을 때는 흡사 실베스터 스탤론을 연상시키는 외모에, 위압적인 거구를 상상했지만. 실제로 보니 체구가 그리 커보이지는 않았다(이건 내가 무대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를 장악하는 그의 힘은 ‘거인’ 같았고 가히 ‘불의 숭배자’다운 화끈함을 보여줬다.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이스라엘 필하모닉은, 그에게는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완벽한 악기이리라.



올바른 정치를 위해서라면 음악의 힘을 사용하겠다는 주빈 메타. 순수한 예술지상주의자들에게는 이 생각이 타락으로 보이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오히려 너무 순진한 생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논평 할 생각은 없다. 그 역시 현 시점에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보여줄 뿐. 판단은 역시 들을 귀 있는 청중들의 몫.

앙코르

티켓 값이 얼만데, 그냥 보낼 수 없어! 협박의 기운마저 느껴진 관중들의 끈질긴 박수에 응해 연주한 곡.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Wiener Blut. 앙코르보다는 차라리 서곡을 챙겨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대곡을 마주하기 전에 집중력을 가다듬을 여유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반면 무게감 있는 메인 곡이 끝난 뒤의 가벼운 앙코르는, 오히려 연주회의 감동을 반감시키는 감도 없지 않다.

2010/11/29 01:15 2010/11/29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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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전

휴일도 아니고 근무 오프도 아닌 평일. 여느 때라면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출장 2일차. 오늘은 서울에서 일이 있다. 26일부터 시작되는 공군전우회 주관 한일교류 행사 통역 업무에 대비해서 사전 업무 협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도록, 말러 2번 3악장을 크게 틀어놓았다.

1층으로 내려가 냉장고 문을 여니, 지난 일요일에 사온 맥도날드 머핀이 그대로 남아있다. 차가운 머핀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작년 여름 맥도날드에서 받아 온 커다란 콜라 컵에 어름을 가득 채우고 콜라를 따랐다. 가사 도와주는 아주머니를 아주 오랜만에 봤다.

12시 반, 최대한 말쑥한 느낌으로 차려입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한낮의 도로는 대체로 한산했다. 그러나 서울 도심으로 갈수록 교통 사정은 좀 복잡해졌다. 대방동 공군회관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정문에서 헌병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았다.

4층 공군전우회 사무실 문을 두드리기 전 충주의 선임에게 전화 한 통을 넣었다. 선임은, 일이 일찍 끝나거든 충주로 내려와서 사무실에 잠깐 얼굴이라도 비추라고 했지만, 저녁 7시 반 연주회를 예약해 놓은 상태라 그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일단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은 해 두었다.

사전 협의는 20분 만에 어이없으리만큼 빨리 끝나버렸다. 너무 빨리 끝나서 어쩌면 사무실로 돌아가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그쪽에서는 상관 안 할 테니 알아서 하라는 눈치였다. 시간이 너무 남아서, 최근에 국내 개봉했다는 노다메 칸타빌레 극장판이라도 볼까 싶어 가까운 영등포 롯데시네마를 찾았지만, 낮 시간에는 상영 스케줄이 없었다. 결국 다시 차를 몰고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세종문화회관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으니 오후 4시였다. 그제야 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업무가 끝났다는 보고를 올렸다. 기왕이니 서점도 들르고 저녁도 해결하고 천천히 출발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일단 이것으로 행동에 제약은 없어졌다. 광화문 교보문고로 갔다. 연주회 시작 전까지 무료함을 달래 줄 소설책도 한 권 사고, 좀 이른 저녁도 먹었다. 그 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서 소설책을 읽었다. 연주회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15분 정도 눈을 붙이기도 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스테판 피 재키브,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회. 원래 이 연주회를 볼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임지 배속을 받은 후, 평일에는 꼼짝없이 충주에 갇혀 지내야 했다. 8월 한 달 동안이야 매일 같이 야근을 했으니 더욱 그랬지만, 비교적 정시 퇴근을 보장 받은 9월에도 평일 저녁 서울로 올라가 공연을 보는 건 근무 오프라도 받지 않는 한 불가능한 얘기였다. 나는 주말 저녁 열리는 저렴한 연주회들을 찾아다니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런던필의 공연일인 9월 16일, 출장 의뢰가 들어왔다. 아니, 실은 그 언저리 평일 아무 때나 골라 가면 되는 것이었지만, 내가 16일로 확정지었다. 15일 수원 출장과 함께 처리하면 편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출장지는 서울, 업무가 일찍 끝나면 그대도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가 런던필과 스테판 재키브의 협연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위험 부담은 있었지만, S석 자리를 예매 해 두었다(R석은 매진이었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었다. 16일 출장 허락을 받았고, 업무는 일찍 끝났다. 일이 일찍 끝나거든 사무실로 돌아와 얼굴이라도 비추라는 지시는 적당한 얼버무림으로 넘겼다.

연주회

연주회 시작 30분 전에 세종홀로 들어갔다. 로비에서 주차권부터 샀다. 공연관람객에게 한해서 7시간 주차권을 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주차권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10분에 500원씩의 주차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프로그램북을 구입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진열 해 놓고 팔고 있는 리코딩을 봤는데, 용재 오닐은 <노래>라는 타이틀로 또 다른 소품집을 내놓은 모양이었다. 스테판 재키브의 앨범은 이미 구입한 브람스 소나타 앨범이었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2층 D블럭 143번 석. 솔리스트들의 생생한 표정이나 연주를 감상하거나 그들의 소리를 듣기에는 그리 좋은 자린 아니었지만, 오케스트라를 한 눈에 담을 수 있고, 또 홀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를 듣기에는 괜찮은 자리였다.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그들은 참 즐겁게 연주를 했다. 스테판 피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은 마치 실내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먼발치에서도 그들의 표정이 생생히 읽히는 듯 했다. 스테판의 2악장 연주는 기대했던 것만큼 멋졌다. 찢어질 듯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소리를 넉넉하게 받쳐준 비올라의 연주도 훌륭했다. 아직 젊은 만큼, 주위의 다른 것들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들의 시간을 음악을 위해 온전히 할애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배타성이 그들로 하여금 음악을 순수하게 연주하게 하며, 오직 음악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터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인 모양이다.

고전파 협주곡답게 곡은 오케스트라의 긴 제시부 연주로 시작된다. 여느 협주곡이라면 이 때 솔리스트들이 손 놓고 쉬고 있겠지만, 이 협주곡은 다르다. 두 사람은 각각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의 선율을 함께 연주했다. 3악장에서도 보통의 경우 솔리스트의 부분이 끝나면 오케스트라가 종결구를 연주하며 곡을 끝맺지만, 이때도 두 솔리스트는 마무리까지 함께 연주했다. 생각해보면 솔리스트가 주인공인 협주곡인데, 오케스트라만 덩그러니 종결구를 연주하고 곡을 끝맺는 것은 어딘가 민망하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매우 좋아하지만, 3악장은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모차르트 특유의 유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묻어나는 1악장에 이어, 너무나 강렬한 인상의 2악장이 연주된 뒤에 이어지는 3악장은, 어딘가 1악장의 재탕 같고 개성이 없이 밋밋한 느낌이다. 2악장에서 한껏 고조된 감정이, 3악장에서 전환되고 발산되었다면 좋을 텐데, 뭔가 운명을 좌우하는 거대한 선택을 앞두고는 그냥 옆길로 새버린 느낌이랄까. 그래도 두 솔리스트의 훌륭한 앙상블을 끝까지 관람하는 것만으로 흡족한 연주였다.

차이코프스키 5번

좋은 연주라는 것은 어떤 연주일까.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즐거운 연주’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떤 연주가 즐거운 연주인가 하면, 일단 연주자들이 즐겁게 연주해야 한다. 나는 이따금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연주에서, 마치 내가 사무 보듯 그저 직업적, 기계적으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을 본다(놀랍지만 솔리스트 중에도 그런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문 연주자에게 항상 감상자의 수준을 뛰어넘는 열정과 지적 수준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주회장을 찾는 관객은, 분명 연주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음악과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연주자의 맥없고 사무적인 태도로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관객이 그토록 동경하는 세계에 앉아있으면, 프로는 설령 그것이 자신의 밥벌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더라도 관객이 기대하는 바에 맞춰 열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구석구석을 눈여겨 보다보면, 연주회의 기분을 완전히 망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 사람들의 연주가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할 수 없다.

악장부터 맨 뒷자리의 연주자까지, 적어도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만큼은 음악에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다는 듯한 적극적인 태도. 그것은 연주회를 관람하는 관객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연주회에 빠져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먼저 연주자들이 그런 기회를 제공할 마음자세가 갖추어져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런던필의 클라리넷 연주자. 마치 메트로놈처럼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온 몸으로 연주를 했다. 머리가 희어진, 나이 지극한 바이올리니스트는 풍채는 거의 지휘자급이었는데, 그저 음악이 너무 좋다는 어린애 같은 천진한 태도로 연주를 했다. 플루트의 음색은 반짝였다. 금관 쪽에서는 큰 실수가 한 번 있었다(트럼펫인지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의욕이 앞선 결과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연주를 세계인들에게 들려주고 또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굉장히 피곤한 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연주자들에게서 순간을 즐기려는 태도가 느껴졌다. 자연히 관객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1악장의 연주는 상당히 템포가 빨랐다. 클라리넷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악장인데, 연주자의 액션이 정말 컸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온몸으로 표현 해 주는 게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2층의 먼 객석에서도 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2악장의 호른 솔로는 너무 아름다웠고, 한 바탕 운명의 동기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에 이어진 바이올린의 노래는 황홀했다.

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에서는 내 귀가 틀리지 않았다면 한 차례 큰 실수가 있었는데, 금관 쪽에서 들리지 말아야 할 ‘빰’이 들렸던 것이다. 실수는, 곡에 대한 집중도를 한 순간 완전히 깨뜨려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기본이 잘 갖추어진 탄탄한 연주에서라면 한 번의 실수 정도는 연주회의 전체적인 만족도를 크게 저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가슴속에서 찌릿하는 전율을 느끼며, 무언가 격렬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낀 연주회였다.

앙코르 곡으로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세레나데 2악장 왈츠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3악장을 연주했다. 메인이 교향곡 5번이었는데, 4번의 한 악장을 통째로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것은 의외였지만, 4번의 3악장은 길이도 5분 남짓으로 짧을 뿐만 아니라 현악기군 전체가 활을 내려놓고 피치카토로만 연주하는 대단히 재미있는 악장이라 앙코르 연주로서 효과는 만점이었다.

연주회 후

응어리져 있던 것을 후련하게 발산하고, 개운한 상태에서 연주회장을 빠져나왔다. 멋진 저녁.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빼려는데, 출구 쪽으로 길게 늘어선 차들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었다. 15분가량을 차 안에서 기다리다가, 그냥 차를 다시 주차시켜놓고 연주회 전에 사둔 소설책을 들고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세종문화회관 로비는 아직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슬쩍 보니 스테판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이 사인회를 열고 있었다. 나는 두 연주자의 사인은 일전에 받아 두었으므로, 대기열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심야까지 영업을 하는 커피 빈에 들어가 티라미스 케이크 한 조각과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주문해서 소설책을 읽으며 먹었다. 11시 반이 다 되어서야 주차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서울 시내에는 많은 차들이 돌아다녀서 예상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지만, 이 날 만큼은 짜증이 나지 않았다. 플레이 리스트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 5, 6번을 올려놓고 재생시켰다. 느긋하게 주유를 하고, 혼잡한 서울 시내를 인내심을 가지고 빠져나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내일은 다시 출근. 이전과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오늘 이 꿈같은 하루는, 그 반복적인 하루하루와의 부대낌을 몇 달은 더 지속할 수 있는 활기를 부여해 주었다.

2010/09/19 22:54 2010/09/19 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