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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 반, 근무 오프. 관사로 돌아와 한 잠 늘어지게 잤다. 소파에 불편하게 몸을 구긴 채 그나마 2~3시간 정도 선잠 밖에는 못 이룬 나는 푹신푹신한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두 시간 후 나를 깨운 건 알람 소리가 아니라 허기였다. 훈련소에서부터 하루 세 끼 챙겨먹는 것이 습관화되어, 한 끼라도 거르면 심한 공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집 안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에어컨 기사에게 전화해서 언제 올 건지 물었다. 내일 부대 안에 에어컨 설치할 일이 더 있어서, 그때 같이 해 주겠단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 부는 이 시기에 에어컨 설치하는 사람이 이 좁은(?) 부대 안에 나 말고도 또 있었단 말인가. 아무튼 이번에는 내일 저녁 5시 반으로 확실히 시간을 못 밖아 두었다.

저녁 무렵, 바이올린과 교본 따위를 챙겨들고 외출을 했다. 중간에 옷 좀 사고 저녁 식사도 했다. 학원에는 약속 시간인 7시 정각에 도착했다.

무슨 입시 학원 분위기다. ‘오늘은 리스트 50번만 치자’라니……. 초중등 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애들이 리스트의 ‘난쟁이의 춤’이나 베버의 ‘화려한 론도’를 치고 있다.

레슨은 7시 반부터 8시 반까지 한 시간 동안 진행됐다. 레슨 받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상당히 긴장했다. 일단은 기본기 체크 차원에서 G major 스케일부터 시작해서 곡까지 군데군데 선생이 지시하는 곳을 연주 해봤다. 기본 평은,

“소리 잘 낸다. 남자라서 그런지 힘도 있다. 그리고 음정도 맞는 음과 틀린 음 구분할 줄 안다. 그런데 곡을 연주하기에는 ‘기본 테크닉’이 너무 부실하다.”

정도. 이 음치가 바이올린 경력 햇수로 5년에 음정 맞고 틀린 거 구분 할 수 있게 됐으면, 나로선 된 거다. 기본 테크닉? 이제부터 갖춰나가면 되겠지.

1. 잡는 음?

스케일을 연습하든 곡을 연주하든, 한 음을 연주하고 다음 음을 소리 낼 때는 소리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음 한 음 연주할 때마다 손가락을 2~3cm씩 띄워서는 ‘절대’ 안 되고, 항상 다음 음을 소리 낼 때까지 이전 음을 확실히 잡고 끌어주어야 한다. 이건 확실히 피아노 연주의 기본이기도 했지. 바이올린 레슨 받으면서도 종종 지적 받았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이 기본 핑거링만 잘 되도 음정 틀릴 걱정은 훨씬 줄어들고 소리에는 자신감이 깃든다.

2. 활 쓰기

활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온활 쓰기. 활의 밑 부분과 윗 부분을 얼마나 버리지 않고 잘 활용할 수 있느냐가 최종적으로는 연주의 질을 결정한다. 온활을 잘 쓰기 위해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배분.’ 연습 할 때 항상 활의 배분에 신경 쓸 것. 빠른 활, 느린 활 구분하며 속도에 따라 활을 얼마만큼 쓸 것인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비브라토는 기초부터!

필름통 활용한 암 비브라토 연습부터 시작하자.

뭐 오늘 레슨의 주요 사항은 이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선생은 상당히 꼼꼼히 본다. 물론 여태까지의 경험 상 첫 레슨에서 꼼꼼하게 보지 않은 선생은 없었지만, 옆에서 다른 학생들 지도하는 모습을 봐도 꽤 까다롭다. 나로서는 이렇게 지적 많이 해 주는 선생일수록 감사하지.

아무튼 이제 시작했다. 다음 주 목요일에는 출장 때문에 레슨을 받을 수 없어서 일단 월요일로 일정을 당겨 놨다. 그러나 야근이라도 하게 되면 레슨은 날아가는 거다. 자신의 생활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다.

그래도 레슨을 시작한 것만으로 기분이 좋다. 적어도 10년은 관두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바이올린. 어느 덧 시작한 지 5년이 흘렀다. 그 5년 동안, 이 악기와 씨름하는 일은 나의 삶을 얼마나 다채롭게 만들었던가. 대학 시절의 추억이라 부를만한 기억들 치고 바이올린에 빚지지 않은 것은 거의 없을 정도다. 군 생활 3년 동안에도 바이올린이 생활의 활력이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2010/09/09 22:12 2010/09/09 2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