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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武王)이 은나라를 평정해 천하는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삼게 되었는데, 백이, 숙제 형제만은 이를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 신의를 지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연명하였다. 그리하여 굶어서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노래를 지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지금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캐노라.
무왕은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고도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더라.
신농(神農), 우(虞), 하(夏)는 어느 사이엔가 이미 사라져버렸으니,
내 어디로 돌아가리? 아, 가리라, 목숨도 이미 지쳤거니.
이 노래에서와 같이 백이,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이 노래를 두고서 생각해 본다면, 과연 백이, 숙제는 사람을 원망하는 뜻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이렇게도 말한다.
“하늘의 도리(天道)는 사사로움이 없으며,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이 된다.”
그렇다고 하면, 백이와 숙제 같은 이들은 과연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어진 덕을 쌓고 품행이 소박하기를 이와 같이 하고도 마침내 굶어 죽었으니 말이다.
이런 예는 또 있다. 공자의 문하에 있던 70여 제자 중에 공자는 오직 안회만을 가리켜 학문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칭찬하였다. 그러나 안회는 자주 끼니를 잇지 못 하였고, 지게미와 쌀겨로조차 배를 채우기가 어려워 마침내는 요절하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은 이런 것인가?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인명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쳐먹고 포악 방종한 수천 명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하였지만, 끝내 아무 천벌도 없이 제 목숨을 온전히 누리고 살았다. 이것은 대체 무슨 덕에 의해 그렇게 되었는가?
여기에 든 것은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들이다. 그 밖에 근세에 이르러서는 그 하는 짓이 방종하여 남에게 못 할 짓을 마음대로 하고도 종신토록 호강하며 살고 부귀가 자손에까지 이어지는 예도 적지 않다. 이런 일에 비해 걸음 한 번을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밟고, 말 한 마디를 하는 데도 적당한 때를 기다려서만 말하고, 길을 가는 데도 지름길을 가지 않고, 공정한 일이 아니면 분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재앙을 만나는 일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일은 나를 아주 당혹스럽게 한다. 이른바 하늘의 도리라고 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틀린 것인가?
공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실천하는 길이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는 것도 같이 하지를 않는다.”
이것은 각기 자기 의사를 좇아서 할 것을 말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또 이렇게도 말한다.
“만약에 부귀가 뜻하는 바와 같이 얻어질 수 있다면, 천한 직업인 경마잡이 하인일지라도 나는 이를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얻어질 수 없는 것이라면 내 즐기는 바를 좇을 것이다.”
다시 이렇게도 말한다.
“겨울 추운 때를 당해서야 비로소 송백(松柏)이 푸르른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이 혼탁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청렴한 사람이 더욱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부귀를 중히 여기는 속인들과 의를 중히 여기는 인사들은 뚜렷이 대조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공자가 말하듯 군자는 죽은 뒤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가자(賈子, 賈誼)는 말한다. “탐욕스러운 자는 재물 때문에 죽고 열사는 이름을 위해 죽고 권세를 부리고자 하는 자는 권세 때문에 목숨을 잃고 평범한 서민은 그저 생활에 급급하다.”
같은 광명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무리는 서로 어울리기를 마치 구름이 용을 따르고, 바람이 범을 따르는 것과 같이, 성인(聖人)이 세상에 나타나고서야 만물도 빛을 얻게 되는 것이다. 백이, 숙제는 현인이지만 공자의 붓을 통해서 비로소 그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고, 안연(顔淵, 顔回)은 학문에 충실하였지만 공자의 기미(驥尾)에 붙음으로써 그 조촐한 품행이 더욱 더 돋보이게 되었던 것이다. 함께 동굴에 숨어 사는 선비라도 나가고 들어감에 때의 이로움과 이롭지 못 한 것이 있으니, 허유나 무광 같은 분의 이름이 높이 나지 않은 것은 슬픈 일이라고 하겠다. 촌구석에 살면서 품행을 닦고 이름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덕 있는 명사를 만나지 못 한다면 어떻게 이름을 후세에 전할 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