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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곤하긴 피곤한가보다. 연주회에서 졸다니. 사실 프로그램들이 전체적으로 밋밋하긴 했다. 베버의 오베론 서곡,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 게다가 연주회장 분위기도 너무 안 좋았고. 초딩의 힘은 예당의 연주회장 분위기까지 압도해버린다. 연주 중에도 휴대폰 만지작거리고 앉아있고. '어린 것들이 무슨 죄랴, 이 사회가 저들을 버린 것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휴대전화 뺏어서 던져버리고 싶었다.

예당의 공기를 좋아하긴 하는데, 여름에는 너무 붐빈다. 오늘은 주차장 들어가는 데만 10분 넘게 대기했고, 주차할 자리가 없어 또 헤매다가 연주회 시작 5분 전에 겨우 콘서트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카페마다 사람들이 가득해서 프로그램 북 읽으며 누리는 커피 한 잔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고. 이 무슨 실패한 주말이란 말인가.

그래도 시벨리우스 2번. 4악장을 듣기 위해 연주회장을 찾은 거다. 4악장의 제1 주제가 울려 퍼지는 순간에는 졸던 사람도 깨어나고, 휴대폰 만지작거리던 초딩도 잠시 액정에서 눈을 떼서 무대를 바라봤다. 누가 봐도, 누가 들어도 아름다운 절대적인 미(美)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 같다. 물론 1분 후, 다들 원상태로 돌아가 버렸지만.

마티즈 엔진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차 터지겠다."

"혹시 튜닝 했냐?"

"좋은 장갑차를 가지고 있구나."

머플러 갈았다. 조용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숙소에 사람 한 명이 더 들어온단다. 124기 신임 소위 몇 명이 더 충주 비행단으로 부임 해 오는데, 관사가 부족해서 여기저기 끼워 넣어야한단다. 그런데 마침 짬이 안 되는 소위 둘이 같이 쓰고 있는 내 관사는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 뭐 이따위 경우가 다 있지. 관사 관리하는 근무지원중대장이 동기라서 전화 걸어 따져봤지만 헛일. 일단 다른 방이 비는 데로 조정해주기로 약속은 받았는데, 일이 빨리 처리될지 모르겠다. 금요일에 떠나면서 내 방 문은 걸어 잠그고 왔다. 새로 오신 소위분이야 거실에서 주무시든 넓은 옆방에서 주무시든 알아서 하라지. 내 방은 문 턱 넘는 것도 허락할 수 없다.

2010/08/15 03:33 2010/08/15 0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