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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단한 인생살이에 무슨 의미가 있기에, 그렇게 끙끙거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걸까, 가끔 영문을 모르겠는 때가 있어요.”

미래의 행복 같은 건 믿어 본 적도 없다. 애당초 나는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기에. 어느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연주자는 마침 내가 너무 좋아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되어있었다. 기대에 부푼 나는, 가장 값비싼 자리를 예약하고 연주회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연주회에서 기립 박수를 쳐본 적이 없다. 기립 박수를 어쩐지 쑥스럽게 여기는 한국의 관람 문화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연주회는, 여러 모로 좋은 기회였다. 최고의 연주자에 최고의 곡. 내가 충분히 감동 받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리 기립 박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연주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1악장을 들으면서부터 가슴 깊은 곳이 바늘로 콕콕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 ‘아름다워야 할’ 하루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기립 박수’를 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연주회가 끝났다. 나는 일어나 박수를 쳤다. 연주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립 박수를 쳤다. 그날 연주회 장에서 멋진 연주에 대한 화답으로 기립 박수를 치는 것이, 내가 미리 그려놓은 스케치 안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미리 구상한 그림 안에 나의 삶을 위치시키는 것. 그 완벽한 구성 안에서 존재와 행위는 위치를 점하고,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믿는다.

미신(迷信).

아침 5시 20분, 기상. 하루하루 피로는 누적되어 간다. 하루의 시작과 함께 벌써 하루의 끝을 예감한다. 내 인생에서 통째로 들어내질 하루. 나는 더 이상 이 하루에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태풍 북상의 뉴스와 함께 많은 비가 예고된 하루. 우중충한 날씨. 그러나 기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숨 막힐 듯 덥고 습하다. 군 복무 기강 점검을 나와, 각 부처에서는 사무실 온도를 규정 온도에 맞추느라 냉방 가동을 제한했다. 혹서기 실내 적정 온도는 무려 28도라고 한다. 30도를 넘어가면 실외 활동이 금지되는데, 아무리 실내라지만 28도는 상식 밖이지 않은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르고, 전투복은 기분 나쁘게 몸에 착 달라붙는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어떤 게 아침 식사 메뉴였고 뭐가 저녁 반찬이었는지도 헷갈린다. 그 사이사이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점점 무거워지는 몸, 내려앉는 눈꺼풀. 그러나 교육 사항이나 업무 지시는 놓치면 안 되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급여가 들어왔다. 어째선지 조금도 기쁘지가 않다. 100만원 돈 대신에 10만 원짜리 연주회 티켓이라도 쥐어준다면, 뭔가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은, 뭐에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녁 9시 반, 우산을 받쳐 들고 터벅터벅, 군화발로 물웅덩이 철벅이며 걸어가는 내 자신이 너무 낯설다.

음악 감상은 어느 쪽이냐면 ‘고상한’ 취미에 속하겠지. 그러나 나는 지금 음악을 마약처럼 이용하고 있다. 방에 돌아와서는 두 시간 동안 내내 브람스만 들었다.

2010/08/10 23:51 2010/08/10 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