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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로나

Two households, both alike in dignity,

In fair Verona, where we lay our scene,

지체 높은 두 가문의 이야기로,

무대는 아름다운 베로나,

밀라노를 출발한 기차는 북부 이탈리아의 드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내달렸다. 이 기차는 이탈리아 북동부 해안에서 ‘자유의 다리’를 건너 베네치아의 ‘산타 루치아’ 역에 이르면 멈춘다. 그러나 나는 빠듯한 여행 일정에도 베네치아 도착을 하루 미루고, 이 노선의 중간에 위치한 도시에서 내리기로 했다. 바로 ‘아름다운 베로나’다.

기차역 여행자 안내소에서 얻은 지도로 길을 더듬어 숙소를 찾았다. 그곳에 짐을 풀어놓고, 다시 뜨거운 햇살 아래로 걸어 나갔다. 이 날 저녁 일정은, 베로나의 고대 로마 원형 극장에 오르는 오페라를 보는 것이었다. 해가 저물 때 까지는 도시 이곳저곳에 위치한 성당 몇 군데를 둘러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언덕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우연히 베드로 성에 들르게 되었다. 언덕에 위치한 베드로 성에서 베로나 시의 풍경을 굽어 본 순간, 숨 가쁘게 짜놓은 오후의 일정들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렸다.

눈을 자극하지 않는 온화한 붉은색의 지붕들,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성당들, 그리고 스위스 고지대에서 발원하여 알프스 산을 타고 내려와 베로나의 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아디제 강. 해마다 여름이면 괴테도 감탄한 고대 로마의 원형 극장 무대에 베르디의 오페라가 오르는 음악의 도시. 베네치아 파의 거장 베로네세의 고향. 그러나 무엇보다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으로 유명한 베로나. 셰익스피어가 베로나를 무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쓰지 않았던들, 이 도시가 오늘날처럼 불멸의 명성을 누리진 못 하였을 것이다.

베로나에는 줄리엣의 집(카사 디 줄리에타)도 있고, 로미오의 집(카사 디 로메오)도 있다. 물론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위해 만든 장소이지만, 그래도 줄리엣의 집에는 문학사상 가장 달콤한 사랑 고백의 장면이 연출된 발코니도 있고, 그 아래 청동으로 만든 줄리엣의 동상도 서 있다. 줄리엣은 그녀의 가슴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미신 때문에, 오늘도 관광객들의 손길에 시달리고 있다.

2010/04/19 06:00 2010/04/19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