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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는 오랜만에 고교 동창 선민군을 만났다. 여느 때처럼 서현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냥 기다리기는 지루해서, AK 플라자의 지하 식품 매장을 둘러보았다. 스파게티나 샌드위치 만들 때 쓸 만한 도톰한 수제 베이컨을 발견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 사려다가 그만 깜빡해버렸다. 생선들이 싱싱해 보였다. 갈치를 세일하고 있어서 살까 했지만, 차를 끌고 나온 것도 아니고 들고 다니는 게 번거로워서 일단 포기했다.

선민군과 만나 저녁 식사를 하러 간 곳은 딘타이펑. 이제 가는 곳은 여기로 정해진 모양.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의미에서 밥은 내가 샀다. 그런데 평일에는 점심 저녁 상관없이 딘타이펑 주요 메뉴를 반값에 파는 행사(?) 중이었다. 덕분에 딤섬 한 접시가 5,000~6,000원 선. 사먹는 입장에서야 대단히 고마운 일이지만, 어쩐지 음식점의 품위도 반 토막 난 것처럼 느껴진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딘타이펑의 이미지는 상당히 고급스러웠는데 말이다.

식사 후에는 바바로사라는 맥줏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씩 했다. 이 가게 이름 바바로사는 제3차 십자군 원정 때 무릎 깊이의 강에서 익사한 바로 그 바바로사(프리드리히 1세)에게서 따온 것이다. 메뉴판에 적힌 설명에 따르면 그가 최초로 독일 내 맥주 제조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나.

맥주는 평소 못 보던 종류의 것들을 갖추어놓고 있어 흥미로웠지만, 안주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나초에 치즈를 좀 얹어서 내오는 가장 저렴한 안주가 15,000원. 역시 맥주 마시기에 최적의 장소는 대학가인 모양이다.

어제는 다섯 번째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분명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못 일어나서 선생님이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비몽사몽간에 레슨 시작. 그런데 선생님 왈, 자다 일어나서 힘이 빠져서 그런지 활 쓰기가 훨씬 좋은 것 같다고…….

하이든 2번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뭐 나는 개의치 않는다. 진도야 내가 잘 하면 언젠간 나가주겠지. 이 선생님과 만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초반과 다름없는 꼼꼼함으로 잘 가르쳐준다. 이번에는 선생님을 잘 만난 것 같다.

곡의 경우, 첫 주제를 잘 연주할 것. 잘 연주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음정’과 ‘박자’를 완벽하게 지키는 것에서부터 비브라토 하기, 활 배분 잘 하기, 악센트 넣기, 다이나믹을 살리기 등등 모든 것을 의미한다. 첫 주제에서 이것들을 완벽히 할 수 있으면 뒷부분은 술술 풀리게 되어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음.

오후에는 중국어, 영어 학원을 다녀왔다. 영어 회화반에는 11월도 절반 이상이 지나간 이 시점에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왔다. 덕분에 반의 규모가 좀 커졌다. 그래도 꾸준히 결석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10명 이상이 함께 수업을 듣는 경우는 없지만.

내년 3월에 있을 유포니아 정기 연주회에 참여할 사람 조사를 하기에, 일단 참여하겠다고 대답해버렸다. 후배한테 빌려온 총보가 있어서 음악을 들으며 대충 봤는데, 이것도 참 앞이 캄캄하다. 27일인가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차이코프스키 5번을 연주한다고 해서 보러가려고 했는데, 이미 모든 자리가 다 매진되었고, 남은 자리라곤 합창석에 달랑 다섯 자리 정도였다. 혹시 캔슬이 발생해서 자리가 생기지 않나 좀 기다려보고, 안 되면 합창석 자리라도 사야겠다. 어차피 관객보다는 연주자로써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니까, 합창석에 앉아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호흡하는 모습을 지켜 봐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합창석은 가격도 저렴하고.

날씨가 상당히 춥다.

2009/11/18 01:41 2009/11/18 0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