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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大家)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대중의 환호와 갈채로? 선배 세대의 거창한 찬사를 받아서? 언론과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기획사들의 홍보 전략에 힘입어서? 대가라 칭해지는 이들은 무엇이 다른가? 보다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에 환호하는가?

내가 궁극적으로 체득하고자 하는 예술적 감수성의 경지는 대중의 환호와 갈채에 현혹되지 않고, 언론과 비평가들의 그럴듯한 말들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어떤 정통성과 권위보다도 나의 눈과 나의 귀에 의지하고 나의 지성으로 판단하여 진정한 미(美)의 가치를 꿰뚫어보고 즐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취미 생활’을 남들이 마련 해 놓은 해석과 비평을 취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미리 설명 해 놓은 대로 감정까지 느끼는, 편의적이고 양식화된 행위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이해하고 느낀 것이 아니면 나의 감정으로 인정할 수가 없고, 그런 기만적인 감정의 모사품들을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행위를 취미 생활로 인정 할 수도 없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이상론이다. 무감동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무지의 벽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어쩌면 평생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 한 채 다만 과정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쉽지 않은 과정에 기꺼이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이야말로 끊임없이 창작을 거듭해온 예술가들에 대한 예의이며, 사실상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어낼 수 있는 진정한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즐거움은 현란한 수사어로 장식된 예술가의 이름에 있지 않고, 좋은 자리를 점하기 위해 쏟아 부은 티켓 값에 있지 않으며, 애써 상상으로 그린 하룻밤의 낭만 속에 있지 않다. 더욱이 내가 진정으로 느끼지 못 한 바를 꾸며 쓰느라 애처롭게 늘어져버린 감상문 속에는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

즐거움이 있다면, 겸허하게 나의 무지를 인정하여 내가 모르는 무한히 넓은 영역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스스로 이해해보고자 기울이는 서툴지만 진지한 노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결실로 선사한다. 주의 깊고 세심한 관찰은 피곤하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만히 넋 놓고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건져 내준다.

첼리스트 장한나. 그녀에게 쏟아지는 갖가지 찬사는 내게 별 의미가 없다.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풀려졌다거나 칭찬 일색인 리뷰가 못 마땅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녀의 위대함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 위대함을 직접 느끼고 싶을 뿐이다. 이때에, 프로그램 북에 인용된 노(老) 대가들의 거창한 칭찬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미리 계획했던 기립박수를 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무엇에게 그토록 열렬한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환호해야 할까?

토요일 저녁, 지난 성남시향 연주회 때의 악몽을 되살리기 싫어서, 이번에는 양재역을 거쳐 남부터미널역으로 간 다음 버스를 타는 길을 택했다. 연주회 시작 30분전쯤 콘서트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비에서는 1,000원짜리 프로그램 북과 함께 장한나의 리코딩을 팔고 있었다. 가격은 한 장에 14,000원이었는데, 프로그램 북과 함께 구입하면 포스터를 증정한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이런 상술에 잘 넘어가주는 편이다. 그러나 판매중인 CD는 대중들의 입맛을 고려했는지 소품집이거나 유명 첼로 협주곡들의 일부 악장들만 모아놓은 것으로 별로 구매욕을 자극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CD와 증정용 포스터는 포기하고, 프로그램 북만 하나 달랑 구입하여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자리는 1층 C블록 11열 5번. 무대와 너무 가깝지 않으면서도 연주자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자리다. 연주회장은 만원이었다. 합창석 자리에도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과연 장한나란 이름이 갖는 관객 동원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저녁 8시. 연주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객석 쪽 조명이 어두워졌다. 무대 쪽 천정에서 내려오는 밝은 빛은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단상 위에 놓인 빈 의자를 비추고 있었다. 이윽고 무대 왼쪽의 연주자 출입구가 열리고, 오늘의 주인공 첼리스트 장한나와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즈가 등장했다(물론 반주자의 악보를 넘겨줄 넘순이도 함께).

장한나는, 벌써 기억이 모호하지만 짙은 회색 톤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한 손으로 들고 나온 첼로는 각봉이 끝까지 뽑혀 있었는데, 그 길이가 장한나의 키와 비슷해 보였다. 키는 작았지만, 왜소해 보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단단해 보였다. 한편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즈는 매우 늘씬한 미남이었다.

연주회 첫 곡은 슈만의 피아노와 호른을 위한 아다지오와 알레그로Adagio and Allegro for Piano and Horn Ab Major, Op.70이었다. 이 곡은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본래 피아노와 호른의 듀오로 연주되는 곡이다. 프로그램 북에 적힌 설명에 따르면 호른 부분을 다른 악기가 맡아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소 슈만의 곡들과 친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더군다나 호른 레퍼토리라니, 존재조차 몰랐던 곡이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프로그램에는 이 곡이 빠져있어서, 미리 예습 할 기회도 없었다.

연주회장에서 처음 만나는 곡이 신선한 즐거움으로만 다가오면 좋겠지만, 내 경우엔 사실 잘 모르는 곡의 선율은 귀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망각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곡을 들으면서 뒷부분을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에, 곡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러니까 종종 딴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래도 곡을 들으면서 문득 든 매우 즉각적인 생각은, “이걸 호른더러 불라고 작곡했단 거야?”란 것이었다. 물론 난 호른을 불어 본 경험은 없다. 하마터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라 호른 연주자로 들어갈 뻔했지만, 아무튼 그 운명은 나를 빗겨갔다. 그래도 호른이 불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첼로로 연주하는 것이 테크닉을 구사하기에는 호른보다 훨씬 유리하겠지만, 그래도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알레그로 부분에서는 스트로크로 강렬하게 연주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과연 호른으로도 이런 강렬함이 표현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호른 레퍼토리는 거의 모르지만, 언젠가 세브란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호른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러 간 일이 있었는데, 호른은 독주 악기로 쓰이기에는 좀 밋밋하다고 느꼈다. 물론 아마추어의 연주에다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으니까 더욱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슈만의 곡이 서곡 역할을 해주어, 들떴던 마음도 차분히 정리되고 연주에 집중할 자세가 갖추어졌다. 연주회장에 늦게 도착하여 미처 입장하지 못 했던 사람들도 첫 곡이 끝난 틈에 들어와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오늘의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과 2번. 어제는 분당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은 겨울의 시작을 알려주는 것이다. 벌써 가을은 저만치 물러가고 있지만, 브람스의 음악은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향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은 애수로 가득 차 있다. 3개의 악장이 모두 단조로 작곡되어 있어서 한층 쓸쓸한 정취를 풍기는 것 같다. 첼로는 낮은 음역에서 때로는 읊조리는 듯이, 때로는 애달프게 노래하는 듯이 자기 목소리로 감정을 담아 표현한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첼로 소나타 1번의 1악장은 브람스의 여러 음악들 중에서도 특히 첼로가 노래를 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첼로와 피아노의 대위법적인 진행은 참 아름답다. 음악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솔로 악기와 피아노로 구성된 듀오 소나타는 편성이 단출해서인지 비교적 음악의 짜임을 파악하는 것이 쉽다.

이날 첼로의 음색과 피아노의 음색이 잘 어우러졌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는 피아노의 소리가 조금 먹먹했다. 첼로가 단호하게 베는 듯한 소리를 들려주니까 피아노도 좀 더 단단한 소리가 났으면 좋았을 텐데, 약간 뭉글했다. 연주자의 터치가 그런 소리를 낸 것 같지는 않고, 피아노 자체의 소리가 좀 멍한 편이었던 같다. 대위법을 잘 구사한 브람스고, 3악장은 아예 푸가로 작곡되었으니까 첼로가 선율을 연주하면 피아노가 모방하고, 또 피아노가 선율을 연주하면 첼로가 뒤따라 모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만큼 두 악기의 음색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소나타 1번의 연주가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되었다. 인터미션 시간이면 으레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해놓고 프로그램 북이라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이날은 이미 카페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그냥 자판기 커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자판기는 리사이틀 홀 출입구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데, 출입구 앞에 놓인 프로그램 북을 슬쩍 보니까 이날 같은 시각 리사이틀 홀에서는 첼로 독주회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각 9시쯤 2부 연주가 시작되었다. 장한나는 정열적인 붉은색의 드레스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2번. 첼로 소나타 1번과는 2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작곡된 곡. 그만큼 원숙미가 돋보인다고 해야 할까. 브람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유지되면서도, 1번 때와는 그 표현의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3악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악장이 모두 장조로 작곡되어 있는 만큼 곡의 표정은 한결 밝아진 느낌이지만, 그 속에서도 애수가 간직되어 있다.

“연주를 하는 도중 실수로 악보가 두 장 넘어갔을 때, 연주를 멈추어야 한다면 좋은 연주자가 아닙니다.”

졸탄 코다이의 말이다. 이날 장한나는 전곡을 암보로 연주했지만, 피닌 콜린즈는 악보를 보고 연주를 했다. 물론 악보를 넘겨주는 넘순이가 있었다. 넘순이는 악보를 넘기기 전, 악보를 위에서 아래로 거의 반쯤 내려 접어 연주자가 악보의 마지막 줄까지 다 볼 수 있도록 배려 한 다음 연주자의 신호를 받아 악보를 넘긴다. 그런데 1악장 연주 중의 일이었다. 넘순이가 넘기려고 접었던 악보를 놓치는 바람에, 황급히 악보를 다시 잡아서 넘기느라 그만 두 장을 넘겨버렸다. 연주는 어떻게 됐을까? 물론 피닌 콜린즈는 좋은 연주자였다. 연주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1악장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2악장 첼로의 피치카토는 가슴을 쳤다. 이 곡의 2악장은 결코 유약하지 않다. 장한나의 피치카토 연주는 그야말로 박력이 넘쳤다. 현을 뜯으면서 악기를 그토록 풍부하게 울릴 수 있다니, 놀랍다. 그 소리가 연주회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2악장이 끝나자 또다시 여기저기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대체 이 사람들이 연주 중에는 어떻게 기침을 참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 연신 기침을 해대다가도 장한나가 활을 들어 올리면 신기하게도 기침을 멈춘다. 실황 연주 녹음을 들어보면 악장과 악장 사이에 기침은 세계 공통인 듯도 하지만, 때로는 이 기침 소리가 악장 사이의 눈치 없는 박수 소리보다도 더 거슬린다. 3악장은 피아노의 연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장한나에게만 집중을 하며, 연신 기침을 해대었다. 그때 갑자기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 덕분에 미처 기침을 멈추지 못 한 여러 사람 숨넘어갔다.

장한나는 액션이 큰 연주자다. 표정도 다양하다. 그만큼 음악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또한 장한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두터운 소리를 요구하는 브람스의 음악도 무리 없이 잘 연주 해 내는 것 같다. 분명한 건, 관객을 몰입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별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떠드는 짓은 삼가도록 하자. 새삼 그녀의 열정이나 관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몇몇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2부 프로그램이 조금 짧았기 때문에, 몇 곡의 앙코르 곡을 예상하긴 했지만, 관객들의 열광 속에 무려 다섯 곡의 앙코르 곡을 연주했다. 연주된 곡은 차례로 포레의 ‘꿈꾸고 난 후에’,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뒝벌?)의 비행’,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 구노의 ‘아베마리아’, 그리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였다.

장한나의 첼로 스승 미샤 마이스키가 내한 중이라고 한다. 먼저 첼로 독주회를 열었고, 며칠 후에는 하이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한나는 스승님과 같은 시기에 한국에 있게 되어 기쁘다며 구노의 ‘아베마리아’ 연주를 스승님께 바치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이면 구노의 ‘아베마리아’인지 모르겠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앙코르 곡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늘어서, 막바지에는 홀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조’의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이 퇴장한 후 출입문이 닫혔는데도 사람들의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실내의 조명이 환하게 밝히자 그제야 사람들은 퇴장하기 시작했다. 나도 무언가가 발산된 듯한 후련한 마음으로 콘서트홀을 빠져나왔다. 예술의 전당 정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기다란 줄에 합류했다. 첫 번째 버스를 보내고, 두 번째 버스에 겨우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강남역까지 가서, 분당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탔다. 외투 주머니에는 mp3 플레이어가 들어 있었지만, 이 날은 귀갓길에 음악을 듣지 않았다. 애써 잠을 청하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첼로의 선율이 흘렀다. 11시를 훌쩍 넘겨 분당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밤공기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러나 이제 저물어버린 가을에 더 이상 미련은 남지 않는다.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된 것이다.

2009/11/23 17:06 2009/11/23 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