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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존심이 세고 신중하여 지금껏 별다른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태만했던 것이 아닐까? 지난 수요일, 청주에서 어학 장교 선발 시험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했다.

어학 장교 모집에는 대충 헤아려 60명 정도가 지원한 듯했지만, 그 중 영어과에 지원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일본어과에 지원한 사람은 겨우 3명이었다. 영어 외의 제2외국어과는 매기 1명 선발이 관례라니까, 아마 이번에도 셋 중 한 사람이 선발 될 것이다.

한 사람은 일본에서 대학, 대학원을 모두 마쳤고, 다른 한 사람은 현재 현역 교토 대학원생이다. 배경으로만 본다면, 고교 시절 독학으로 일본어를 깨치고 대학 학부 시절 겨우 1년 교환 학생 다녀온 나에게는 승산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뽑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이 사실을,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야 할까? 겨우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 선발되는데, 왜 나는 그게 내가 될 수 없다고 체념하여야 할까?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생각을 뒤집고,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듯 보이는 내가 경쟁에서 이기는 상황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이 왜 지금 내게는 결여되어 있는가?

일본어에 능숙하다는 것은 나의 오랜 자부심이었다. 나는 어떤 교육 기관에도 거하지 않고 오직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혔으며, 그렇게 익힌 실력으로 능력시험 1급에 합격했고, 첫 일본 여행도 무사히 마쳤다. 일본에서 살다 온 일이 없으면서도 일본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 나눌 수 있고, 어지간한 현대 작가들의 책은 원어로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은 나의 정확한 일본어 구사와 깨끗한 발음을 칭찬 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조금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어째서 나는 적당한 곳에서 멈추어버리고, ‘그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터무니없이 무욕적인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전과 후를 비교해, 내 일본어 실력은 별로 나아진 점이 없다. 언젠가 고토와 전화 통화를 했을 때는, 오히려 요즘 일본어 공부에 너무 소홀한 것 아니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왜 이런 정체를 가슴 아픈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까? 탁월함에 대한 동경, 스스로를 연마하는 즐거움 같은 것들은 내 안에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 속에 섞여, 모나지 않은 돌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독자적인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끝없이 높은 자부심을 안고서 살아갈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서 적당주의로 일관하는, 타성에 젖은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2009/06/21 21:22 2009/06/21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