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Filed under 서재/수필

할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뇌출혈이다.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신 이후론 간병인들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원에서 생활 해 오고 계셨지만, 밤중에 일어난 일이어서 그 누구도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아침에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곧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이미 머릿속에 피가 고여 있는 상태라고 한다. 연세가 많아 수술은 어렵고 약물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의식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 해 주는 의사는 없었던 모양이다.

몇 해 전 할아버지께서 크게 앓으신 이후로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점차로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기에, 이번 일은 내게 충격이라기보다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직은 현실감이 없기에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막상 중환자실에 의식을 잃고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다면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2009년 초에, 중병을 겨우 이겨내고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신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그해 2월, 할아버지와 함께 일주일 동안 홋카이도에서부터 큐슈까지,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할아버지는 홋카이도 상공에서 눈 덮인 산하를 보는 순간부터 눈이 많이 내렸던 북녘의 자기 고향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가 함께 목욕을 하고 자리에 누우면 잠들기 전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얘기를 들려주셨다. 자신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그렇게 자세하게 들려주신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그때 이미 자신의 생을 정리하기 시작하며, 자기 삶의 기억 중 일부라도 손자에게 전달 해 주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나대로, 그것을 할아버지와의 이별 여행으로 받아들였다. 홋카이도의 최북단 항구 마을에서 얼어붙은 오호츠크 해를 신기하게 바라보시던 할아버지. 그 쓸쓸한 바다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딘가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았고, 그래서 서글펐다. 그때 나는 어쩌면 눈물을 흘렸던 것 같기도 하다.

여행은 기어코 술을 계속 마셔야겠다는 할아버지와 맥주 한 캔 이상은 안 된다는 손자 사이의 잦은 다툼의 연속이었지만, 할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홋카이도에서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눈 터널을 뚫고 달리는 기차를 탔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니이가타 현을 지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영향으로 일본어를 배운 손자가 대학 시절 1년을 보낸 오사카를 거쳐 무탈하게 이어졌고, 큐슈의 후쿠오카에 이르러 끝이 났다.

나는 어디에서나 밝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며, 스스로에 대한 긍지를 잃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랐고, 또 집안에 내가 존경하고 본받을 만한 어른들이 계셨던 덕분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직접 말씀 드린 적은 없지만, 아마 할아버지는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하신다면, 그때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직접 말씀 드리고 싶다.

“당신께서는 제게 행복한 삶을 선물 해 주셨습니다. 제가 할아버지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결실이 될 수 있도록, 제 인생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심하고 따라 걸을 수 있는 발자국

2012/06/29 02:03 2012/06/29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