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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젠가 이런 일이 다시 한 번 있을 것이라고, 그대는 예감하고 있었다. 사람의 인생은 짧지 않고, 그대는 아직 젊었으니까. 7월의 강렬한 햇살에 그대의 명랑하던 낯빛이 쇠하여 우울해지고, 걸어갈 수 있을 것처럼 평평한 수면 아래로 거세게 휘도는 소용돌이를 감추어 두었다가, 그대가 오늘 목을 맬 나뭇가지를 찾아 떠나면 사람들은 내일에 가서야 그대에게 심병(心病)이 있었음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 그대 인생의 방관자를 한 사람 세워두고서 그대 가슴을 갈라 병든 마음을 꺼내 하늘 높이 쳐들고 미친 듯이 춤을 추어라. 이윽고 다 짓물러 악취 나는 그것을 내 발 아래에 내려놓고서, 그대는 때마침 내리는 비에 차갑게 식어가는 저 땅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나는 한 장의 흰 종이가 되어, 그대가 버리고 간 것을 감싸 함께 불타버리리라.

2.

어제 주문한 논어 한 질이 도착했다. 중학생 시절, 아버지가 도올 김용옥 교수에게서 얻어다 준 ‘도올 논어’의 속지에는, 교수님 친필로 이런 글귀가 적혀있었다. “논어는 최소한 백독은 해야 한다.” 부끄럽게도 나는 백독은커녕 삼독도 하지 못 했다. 게다가 이렇게 한 구절 한 구절을 원문으로 읽어 나가는 시도는 처음이다. 오늘 받은 책 첫 머리에는 공자의 생애가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것을 읽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거나,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말로만 떠들다가, 너무 자주 떠든 나머지 결국에는 자기가 정말 그런 사람이고, 그런 일을 했다고 믿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가슴에 품고 죽은 웅대한 꿈으로 평가 받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오직 실천을 통해 무언가를 이룰 수 있고, 그 업적을 가지고서만 평가를 받는다. 날카로운 역사의 펜 끝 앞에서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실한 사람뿐!

2012/07/11 01:27 2012/07/1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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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민사에『논어』 한 질을 주문했다. 지난번에는 실수로 구결현토가 없는 책을 주문했지만, 이번에는 일부러 백문으로 된 책을 주문했다. 굳이 구결토가 없는 백문으로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겠나 싶기도 하지만, 역서 등을 참조하며 구결토를 직접 달아보는 것도 많은 공부가 된다. 이제 겨우 『대학』 한 권을 떼었을 뿐이지만, 벌써부터 적지 않은 문장들의 구조가 눈에 들어온다. 아무튼 오늘부터는 도서관에서 대학 복습과 함께 논어 예습에 들어갔다. 물론 중국어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는 사무실에서 눈치보고 뭐하고 할 여유도 없다. 나는 당당하게 책을 펴놓고 아주 집중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은 바이올린 연습, 복싱 대신 장을 보고 반찬을 만들었다. 두부조림과 깻잎절임. 내일 메인 반찬을 만들기 위해 고등어도 사왔다. 어쨌든 좀 넉넉한 기간을 두고 먹을 수 있는 깻잎절임을 만들어 놔서 마음이 놓인다. 가뜩이나 날씨도 더워서 음식 보관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장아찌 종류의 음식을 몇 가지 더 만들어 놔야겠다.

내일부터는 다시 도서관, 연습실, 체육관의 패턴으로 돌아갈 것 같다.

2012/07/10 00:36 2012/07/10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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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대학(大學)』 수업이 끝났다. 다음 시간부터는 『논어(論語)』를 시작하게 된다. 틀에 박힌 일상을 살면서도 나의 세계는 끊임없이 넓어지고 있다. 말로만 멋진 인생을 사는 척 떠드는 인간들을 보며, 삶은 치장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삶은 없다.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2012/07/06 01:21 2012/07/06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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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련활동으로 등산을 했다. 결과적으로 이게 내 일과에 두 개의 구멍을 냈는데, 도서관에 가지 못 했고, 복싱도 하지 못 했다. 그래도 바이올린 레슨은 받았다.

6개월 째 붙잡고 있는 브루흐는 브루흐대로 놔두고, 새로운 곡 하나를 시작했다. 바흐의 무반주 중 파르티타 1번의 사라반드다. 중음 연주가 대단히 많은 어려운 곡. 다행히 템포는 느리다. 올 연말에 선생님 제자 콘서트에서 곡 하나 연주하기로 했는데, 무슨 곡을 연주할지 아직 미정이다. 이대로 브루흐를 밀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사라반드 같은 느린 곡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쨌든 내 한계에 도전하는 무대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뭐 연주 자체야 이번에도 초등학생들 틈바구니에 껴서 하게 되겠지만…….

나도 바이올린 음악의 성서라 불리는 바흐의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악보를 한 권 가지고 있다. SCHOTT 출판사에서 펴낸 악보인데, 편집과 핑거링 지정을 한 것은 셰링이다. 그 옛날, 바이올린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셰링의 연주에 반해버렸던 나였기에, 셰링의 에디션이 아닌 다른 에디션을 구입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지, 셰링이 이렇게 변태적인 인간인줄. 선생님이 연주하기 쉽도록 핑거링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줬다. 연습 또 연습.

약간 탈진 상태다.

2012/06/27 23:47 2012/06/27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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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당신도 그렇겠지. 반듯한 인간은 남에게 관계나 애정을 구걸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보라, 저 화목한 가정을. 그 옛날 그리스의 한 철학자가 인간의 삶의 목적으로 제시했던 것, ‘행복’이 그 안에 담겨있는 것처럼 생각되지 않는가? 한 사람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할 때에 행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두 사람이 서로의 행복을 위해 함께 노력함으로써 더욱 행복해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두 사람 사이에서 가능하다면 더 많은 사람 사이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남에게 나의 행복을 위해 봉사할 것을 요구하지 말고, 나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한 제물로 삼지도 말아야 한다. 행복은 시간을 두고 키우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굵어져 쉽게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지만, 그 최초의 싹은 매우 연약하다. 하지만 고통이 촉발하는 불행은 담쟁이처럼 빨리 자라고 모든 것을 덮어서 이내 질식시켜버린다. 그러니 어느 한 사람에게 불편부당한 고통과 희생을 요구하는 관계는 지속하면 안 된다.

누군가가 내게 이로운 사람이라면, 나 역시 그에게 이로운 사람일 것이다. 이것은 같은 양(量)을 주고받는 계산적인 관계가 아니다. 공통의 밭을 일구며 함께 소출을 늘려가는 것이다. 마음의 밭이 황량한 사람, 그래서 누군가를 그 안으로 받아들여 함께 경작할 여지가 없는 사람과는 오래 같이 할 수 없다.

2012/06/27 01:58 2012/06/27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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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운명적.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을 자극하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평생을 통해 견지해온 삶의 태도는, 그런 말장난에 휩쓸릴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 나가 꾸준히 공부하겠다고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도 꾸준히 도서관에 나가 공부를 하는 사람은 나 혼자다. 이런 게 내 삶의 방식이다. 나의 심미적 감수성은 변덕보다는 꾸준함을, 운명보다는 성실함을 더 아름답다고 여긴다.

내가 스스로 성실한 인간임을 자부할 수 있는 한, 긍지를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미 홀로 서있다.

2012/06/21 01:32 2012/06/21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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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두 동강 나도 나는 내 할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하늘이 두 동강 나는 일은 없었다. 오직 내 마음이 두 동강 날 수 있을 뿐. “흔들리는 것은 깃발도 아니요, 바람도 아니요, 오직 그대의 마음이나니.”

그래도 나는 내 할 일을 한다. 혼자 세상 살아가는 거 아니니, 무슨 일에도 요란은 떨지 않으련다. 정신 수양을 위해, 대학교 1학년 때 살며시 집어 들었다가 거칠게 집어던진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세계사적 성찰’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 몇 페이지를 읽다보니 수 년 전에 내가 왜 ‘입문’ 챕터에서 책을 집어던졌는지 기억났다.

무,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부르크하르트가 원래 이렇게 글을 어렵게 쓰는 사람인가?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문화’는 이 정도로 난해하진 않았는데! 번역이 이상한 건가? 하긴 서문에다가 자신의 수년 전 번역은 중도 해임을 당한 황당함으로 급히 내놓은 거라 개판이었고 그 죄책감을 이기지 못 해 몇 년 만에 다시 수정 운운 하는 걸로 봐서 역자가 보통 똘아이는 아닌 것 같다. 무엇에서 해임 당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교수나 강사였겠지. 학문을 하는 사람이 해임 당했다고 황당함과 분노에 눈이 멀어 명저를 개판으로 번역해놓고 그걸 출판까지 했다니(혹은 그걸 변명이라고 하고 있다니), 이제 와 무슨 애프터서비스를 어떻게 한다고 해도 사양이다. 젠장 서문 정도는 읽어보고 구입했어야 하는 건데.

아니, 아니다. 문제는 부르크하르트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이름은 까먹은 역자에게 있는 것도 아니요, 오직 내게 있는 것이나니. 주자의 사서집주를 해독하는 그 집중력과 탐구심을 가지고서 국문을 꼼꼼하게 해체해서 읽으면, 난해하게 번역된 칸트의 개떡 같은 도덕론도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더냐. 그저 지금 내게는 그 정도의 집중력이 없는 게지.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그래 그렇다.

2012/06/18 01:01 2012/06/1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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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긴 휴가의 여파가 남아있었지만 오늘로써 일상으로 완벽하게 복귀했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012/06/13 00:49 2012/06/1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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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고통 속에서 끝날 뻔한 하루였다. 마지막에 겨우 한 줄기 희망을 찾아 끌어안고 잠자리에 든다. 아, 마음의 노곤함이여.
2012/06/12 00:44 2012/06/12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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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너를 위해 쓰고 여유가 되거든 세상을 위해서도 쓰겠다.
2012/05/21 01:59 2012/05/21 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