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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쌌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이올린 연습을 했고, 매일 1시간 이상 운동을 했으며, 공부를 한 시간은 잠을 잔 시간의 두 배쯤 된다. 나의 평범한 한 주는 이렇다.

바이올린 레슨. 결국 미국에 카본 활 하나를 주문하게 될 것 같다. 가격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저렴하다. 100만 원 이상은 줘야 될 줄 알았는데, 80만 원 선에서 해결이 될 것 같다. 아무래도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에 쓸 만한 활은 하나 개비해 두는 게 좋겠지.

오늘 논어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께서 서과피지(西瓜皮?)를 말씀하셨다. ‘수박 겉핥기’란 뜻이다. 나는 나름대로 부지런히 예습을 해가고 있지만, 그때그때 문장의 뜻을 피상적으로 해석만 할뿐 그 한 문장 한 문장의 깊은 뜻을 곱씹어 생각하는 데에는 미치지 못 하고 있다. 좀 더 분발을 해야 할 것 같다.

내일 서울에 올라갈지, 아니면 그냥 토요일 아침에 올라갈지 아직 결정을 못 했다.

2013/01/25 02:12 2013/01/25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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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에서 멈추겠다. 내 인생에서 어떤 부분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윤회(輪廻) 같은 것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다음 생애’라는 것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 현재,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나의 삶의 방식이 달라졌을까? 무한하게 주어지는 시간에 만족하며 지금보다 훨씬 나태한 삶을 살았을지, 아니면 다음 기회라는 것을 믿고서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미친 짓들을 감행했을지?

“Fate and temperament are two words for one and the same concept(from Demian by H. Hesse).”

아마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다. 나의 타고난 기질은, 이렇게밖에는 살 수 없도록 나를 운명 지었다. 나는 현재의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기보다는 받아들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다음 생애’라는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래서 나의 영혼이, 비록 지금의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은 모두 잊어버리더라도 먼 훗날 새로운 육신에 깃들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면, 나는 이번 생애동안 내가 쌓을 선업의 대가로 다음 생애에서도 지금과 같이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다만 그 인간은, 자신보다 운명의 호의를 덜 입은 자들에 대한 공적인 책임감을 잊지는 않으면서도, 자기 외적인 세계의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덜 민감하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는 조금 더 민감하며,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고 한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History, my only consolation.

Future, my sole hope.

Yet, love, my one and only dream, indeed.

2013/01/24 02:21 2013/01/24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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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왕래가 잦으면 곧 다니기 편한 길이 생기는 것처럼,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생활은 몸이 따르기 편한 습관을 낳는다.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장 에너지를 적게 소모하면서도 일정한 성과를 내는, 가장 효율적인 생활 방식인 듯하다. 점점 수면 시간이 줄어 평일에 자는 시간은 거의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 하루 4시간 이하로 잠을 자는 사람) 수준에 근접했지만, 그래도 생활은 유지된다. 하지만 난 태생적인 쇼트 슬리퍼는 아니니까, 건강을 생각해서 최소 5시간 정도는 자려고 한다.

오늘은 헤밍웨이의 ‘For Whom the Bell Tolls’ 가운데 에서 인상 깊은 구절을 하나.

Vamos, I'm not ugly. I was born ugly. All my life I have been ugly. You, Ingles, who know nothing about women. Do you know how an ugly woman feels? Do you know what it is to be ugly all your life and inside to feel that you are beautiful? It is very rare."

I also was born ugly. Yet I have done nothing to adorn myself through whole my life. People often say the inner beauty is more important than the outward appearance. However, is it fair wishing to be judged by one's inside while judging others by the way they look?

첨삭

2013/01/23 02:15 2013/01/23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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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바쁜 한 주였다. 목요일 아침,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국방장관과 일본 대사 접견에 통역으로 들어갔다가, 일 끝나고 국방부에서 근무하는 동기와 같이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대전으로 내려와 다시 차를 타고 공주로. 잠깐 논어 수업을 듣고 나서 선생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다. 연말이기도 하거니와 나를 공주의 한문 선생님에게 소개시켜준 사형(師兄) 구 모 중위가 이달 말에 제대를 하기 때문에 사은(謝恩)의 의미로 둘이서 선생님께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던 것. 식사 후에는 유성으로 가서 바이올린 연습을 1시간 하다가, 다시 구 선배의 연락을 받고 충대 인근의 궁동으로 가서 충남 도립교향악단 첼리스트,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안디 무지크의 비올리스트와 어울려 술자리를 가졌다.

금요일 저녁에는 서울 공군회관에서 공군 참모총장 주관 통역장교 격려 행사가 있었다. 사실 내가 낄 자리가 아니었지만, 꼬인 일이 있어서 어깃장 좀 놓아주려고 다녀왔다.

토요일에는 이탈리아어 수업. 벌써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한 지도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모처럼 토요일 오후에는 약속을 잡지 않고(몇 주 만인지 모르겠다) 집에서 푹 쉬었다.

크리스마스 때는 집에 올라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2012/12/23 23:49 2012/12/23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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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기계처럼 움직이되 정신은 언제나 명료하게. 어쩔 때는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쯤 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침에 출근해서 이탈리아 동사표를 외우는 나와 자정 무렵 체육관에서 샌드백을 치는 내가 좀처럼 하루라고 하는 시간관념 안에서 포개지지 않는다. 사라장 연주회가 어제였다는 것도 믿을 수 없다. 며칠 전쯤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아무튼 나는 내 자신에게 쉬는 시간조차 거의 허락하지 않고 있다.

내일은 장관 통역을 하러 서울로 출장 간다. 통역 마치는 대로 돌아와 레슨을 받아야겠다. 지난주에 받지 못 했으니.

2012/12/12 00:55 2012/12/1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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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좋은 연주와 그렇지 못 한 연주는 대체 어떻게 다르냐고 묻는다면, "연주 중에 딴 생각이 드느냐 안 드느냐의 차이"라고 대답하겠어. 온전히 연주에만 집중하게 되면, 곡이 끝났을 때 왠지 내 숨이 가빠져 있는 걸 발견하지. 잠시 숨 쉬는 것마저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연주회 끝나고 사인회가 있었다. 나는 앨범 두 장을 사서 둘 모두에 사인을 받았다. 줄 서서 사인까지 받고 나니, 시간이 제법 늦어버렸다. 운동과 바이올린 연습 중 하나를 택해야했지만, 오늘 같은 날 답은 뻔 한 것 아닌가. 결국 연습실로 향했다.

2012/12/11 00:48 2012/12/11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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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차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앞, 뒤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확인해보니 운전석 쪽 뒷바퀴가 움직이지 않았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얼어버린 것이다. 겨울철에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면 안 된다는 간단한 상식을 무시한 대가가 이렇다. 다행히 길은 간밤에 내린 눈이 얼어 미끄러운 상태. 최대한 ‘눈길’만 골라서 미끄러지듯 주행해, 가까운 정비소에 차를 맡겼다. 뭐 이 차가 늘 그렇지만 뒷바퀴를 해체해보니 문제는 사이드 브레이크 케이블만이 아니었다. 브레이크 라이닝도 다 망가져있고, 휠 실린더도 수명이 다했다. 보지 않았으면 모르되 보고서야 아니 교환할 수 있으랴. 결국 또 거금 19만원을 들여 뒷바퀴의 부품들을 대거 교체했다.

차는 정비소에 맡겨놓고 택시 타고 출근. 차가 없어서 오늘 논어 수업을 들으러 가지 못 했다. 퇴근 버스를 타고 돌아와 차를 찾고, 바이올린 연습을 하러 가는 길에 이번에는 접촉사고. 이런 날도 있다.

내일은 원래 저녁 때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보고, 밤늦게 운전을 해서 서울에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진이 사납다. 눈도 온다고 하니, 운전은 삼가야겠다. 예매는 취소.

2012/12/07 01:04 2012/12/07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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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내렸다. 부서 체육 활동으로 실시할 예정이었던 트래킹은 취소되었다. 원래 체련일이기도 하고 눈도 많이 내리니, 조금 일찍 퇴근하는 것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어차피 사무실에서 공부하나 도서관에서 공부하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퇴근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려고 했지만, 폭설을 예상하고 차를 가져오지 않은 몇 사람을 태워주기 위해 결국 일찍 사무실을 나오고 말았다. 그래놓고 어차피 내가 향한 곳은 도서관.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날이었는데, 선생님에게서 눈이 많이 오니 하루 쉬자는 연락이 왔다. 레슨은 취소됐지만, 나는 눈 속을 뚫고 연습실에 가서 기어이 악기를 1시간 연습했다.

논어 팔일(八佾)편 너 댓 장(章)을 읽었다. 이제 해석을 참고하지 않고도 제법 독해가 가능하다. 내가 찍은 구두점도 얼추 들어맞는다. 어떤 토를 달아야 할지는 늘 헷갈리지만,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지. 내년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까지 논어는 완독해야겠다. 이탈리아 갈 때는 맹자를 들고 가겠다.

그렇다. 그런 날이 있었다. 어슴푸레한 새벽의 기운이 감도는 시간, 잠에서 깨어 창문을 열어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은 색(色)을 잃고 하얘졌지만, 신열(身熱)에 들뜬 내 두 눈은 붉었다. 모든 소리마저 눈에 덮여버리던 날, 그 고요 속에 들어앉아 글을 쓰고 있으면 빈 페이지를 긁는 펜촉의 서걱서걱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그런 아름다운 날이 있었다.

2012/12/06 00:22 2012/12/0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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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의 메시아. 지루했다. 이 대곡을, 어쩌면 이렇게도 박력 없게 연주할 수 있을까. 관객 태반이 졸았던 것 같다. ‘할렐루야’를 부를 땐 관객들이 거의 모두 기립했다. 사실 난 사람들이 안 일어날 줄 알았다. 일본 오사카에서 공연을 봤을 때도 외국인 관객 몇 명 정도만 일어났었는데. 아무래도 대부분은 갑자기 몇몇 사람들이 일어나니까 얼결에 따라 일어난 게 아니었을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튼 집중하기 힘든 연주였다. 연말 분위기 내는 걸 이렇게 못 도와주나. 이번 주 금요일, 유니버설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에 기대를 걸어본다.

운동 좀 쉬었다가 다시 한다고 몸이 요란하게 반응한다. 안 쑤신 곳이 없군. 근육이 아파서 펀치를 내지르지 못 하겠다. 또 움직임은 왜 이렇게 둔한지. 피부 트러블의 원인은 강의로 인한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운동 부족이 아니었나 싶다.

방에 들어오면 12시 반이다. 도시락 통 설거지 하고 샤워하고 나면 1시. 좀 무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12/12/05 01:34 2012/12/05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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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진행하느라 3개월이나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관장님은 내가 제대하고 서울로 돌아가 버린 줄 알았다나. 전화 한 통 없이 사라져서 섭섭해 했다고 한다. 나도 이렇게 오래 쉴 줄은 몰랐지. 오늘 오늘이 이번 주 이번 주가 되고, 이번 주 이번 주가 이 달 이 달이 되어버렸지. 몸으로 배운 건 잘 안 까먹는다지만, 다시 손 봐야 될 구석이 어디 한 둘일까. 줄넘기 5세트 정도는 그래도 여전히 가뿐했지만, 미트 칠 때는 말 그대로 숨이 넘어갈 뻔했다.

아무튼 한겨울에도 땀을 쫙 빼는 것은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이것으로 나는 완전히 일상으로 복귀했다.

내일은 헨델 메시아를 보러 간다.

2012/12/04 01:10 2012/12/04 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