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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大家)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대중의 환호와 갈채로? 선배 세대의 거창한 찬사를 받아서? 언론과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기획사들의 홍보 전략에 힘입어서? 대가라 칭해지는 이들은 무엇이 다른가? 보다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에 환호하는가?

내가 궁극적으로 체득하고자 하는 예술적 감수성의 경지는 대중의 환호와 갈채에 현혹되지 않고, 언론과 비평가들의 그럴듯한 말들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어떤 정통성과 권위보다도 나의 눈과 나의 귀에 의지하고 나의 지성으로 판단하여 진정한 미(美)의 가치를 꿰뚫어보고 즐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취미 생활’을 남들이 마련 해 놓은 해석과 비평을 취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미리 설명 해 놓은 대로 감정까지 느끼는, 편의적이고 양식화된 행위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이해하고 느낀 것이 아니면 나의 감정으로 인정할 수가 없고, 그런 기만적인 감정의 모사품들을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행위를 취미 생활로 인정 할 수도 없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이상론이다. 무감동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무지의 벽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어쩌면 평생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 한 채 다만 과정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쉽지 않은 과정에 기꺼이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이야말로 끊임없이 창작을 거듭해온 예술가들에 대한 예의이며, 사실상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어낼 수 있는 진정한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즐거움은 현란한 수사어로 장식된 예술가의 이름에 있지 않고, 좋은 자리를 점하기 위해 쏟아 부은 티켓 값에 있지 않으며, 애써 상상으로 그린 하룻밤의 낭만 속에 있지 않다. 더욱이 내가 진정으로 느끼지 못 한 바를 꾸며 쓰느라 애처롭게 늘어져버린 감상문 속에는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

즐거움이 있다면, 겸허하게 나의 무지를 인정하여 내가 모르는 무한히 넓은 영역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스스로 이해해보고자 기울이는 서툴지만 진지한 노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결실로 선사한다. 주의 깊고 세심한 관찰은 피곤하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만히 넋 놓고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건져 내준다.

첼리스트 장한나. 그녀에게 쏟아지는 갖가지 찬사는 내게 별 의미가 없다.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풀려졌다거나 칭찬 일색인 리뷰가 못 마땅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녀의 위대함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 위대함을 직접 느끼고 싶을 뿐이다. 이때에, 프로그램 북에 인용된 노(老) 대가들의 거창한 칭찬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미리 계획했던 기립박수를 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무엇에게 그토록 열렬한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환호해야 할까?

토요일 저녁, 지난 성남시향 연주회 때의 악몽을 되살리기 싫어서, 이번에는 양재역을 거쳐 남부터미널역으로 간 다음 버스를 타는 길을 택했다. 연주회 시작 30분전쯤 콘서트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비에서는 1,000원짜리 프로그램 북과 함께 장한나의 리코딩을 팔고 있었다. 가격은 한 장에 14,000원이었는데, 프로그램 북과 함께 구입하면 포스터를 증정한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이런 상술에 잘 넘어가주는 편이다. 그러나 판매중인 CD는 대중들의 입맛을 고려했는지 소품집이거나 유명 첼로 협주곡들의 일부 악장들만 모아놓은 것으로 별로 구매욕을 자극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CD와 증정용 포스터는 포기하고, 프로그램 북만 하나 달랑 구입하여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자리는 1층 C블록 11열 5번. 무대와 너무 가깝지 않으면서도 연주자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자리다. 연주회장은 만원이었다. 합창석 자리에도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과연 장한나란 이름이 갖는 관객 동원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저녁 8시. 연주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객석 쪽 조명이 어두워졌다. 무대 쪽 천정에서 내려오는 밝은 빛은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단상 위에 놓인 빈 의자를 비추고 있었다. 이윽고 무대 왼쪽의 연주자 출입구가 열리고, 오늘의 주인공 첼리스트 장한나와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즈가 등장했다(물론 반주자의 악보를 넘겨줄 넘순이도 함께).

장한나는, 벌써 기억이 모호하지만 짙은 회색 톤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한 손으로 들고 나온 첼로는 각봉이 끝까지 뽑혀 있었는데, 그 길이가 장한나의 키와 비슷해 보였다. 키는 작았지만, 왜소해 보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단단해 보였다. 한편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즈는 매우 늘씬한 미남이었다.

연주회 첫 곡은 슈만의 피아노와 호른을 위한 아다지오와 알레그로Adagio and Allegro for Piano and Horn Ab Major, Op.70이었다. 이 곡은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본래 피아노와 호른의 듀오로 연주되는 곡이다. 프로그램 북에 적힌 설명에 따르면 호른 부분을 다른 악기가 맡아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소 슈만의 곡들과 친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더군다나 호른 레퍼토리라니, 존재조차 몰랐던 곡이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프로그램에는 이 곡이 빠져있어서, 미리 예습 할 기회도 없었다.

연주회장에서 처음 만나는 곡이 신선한 즐거움으로만 다가오면 좋겠지만, 내 경우엔 사실 잘 모르는 곡의 선율은 귀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망각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곡을 들으면서 뒷부분을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에, 곡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러니까 종종 딴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래도 곡을 들으면서 문득 든 매우 즉각적인 생각은, “이걸 호른더러 불라고 작곡했단 거야?”란 것이었다. 물론 난 호른을 불어 본 경험은 없다. 하마터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라 호른 연주자로 들어갈 뻔했지만, 아무튼 그 운명은 나를 빗겨갔다. 그래도 호른이 불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첼로로 연주하는 것이 테크닉을 구사하기에는 호른보다 훨씬 유리하겠지만, 그래도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알레그로 부분에서는 스트로크로 강렬하게 연주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과연 호른으로도 이런 강렬함이 표현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호른 레퍼토리는 거의 모르지만, 언젠가 세브란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호른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러 간 일이 있었는데, 호른은 독주 악기로 쓰이기에는 좀 밋밋하다고 느꼈다. 물론 아마추어의 연주에다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으니까 더욱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슈만의 곡이 서곡 역할을 해주어, 들떴던 마음도 차분히 정리되고 연주에 집중할 자세가 갖추어졌다. 연주회장에 늦게 도착하여 미처 입장하지 못 했던 사람들도 첫 곡이 끝난 틈에 들어와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오늘의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과 2번. 어제는 분당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은 겨울의 시작을 알려주는 것이다. 벌써 가을은 저만치 물러가고 있지만, 브람스의 음악은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향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은 애수로 가득 차 있다. 3개의 악장이 모두 단조로 작곡되어 있어서 한층 쓸쓸한 정취를 풍기는 것 같다. 첼로는 낮은 음역에서 때로는 읊조리는 듯이, 때로는 애달프게 노래하는 듯이 자기 목소리로 감정을 담아 표현한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첼로 소나타 1번의 1악장은 브람스의 여러 음악들 중에서도 특히 첼로가 노래를 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첼로와 피아노의 대위법적인 진행은 참 아름답다. 음악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솔로 악기와 피아노로 구성된 듀오 소나타는 편성이 단출해서인지 비교적 음악의 짜임을 파악하는 것이 쉽다.

이날 첼로의 음색과 피아노의 음색이 잘 어우러졌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는 피아노의 소리가 조금 먹먹했다. 첼로가 단호하게 베는 듯한 소리를 들려주니까 피아노도 좀 더 단단한 소리가 났으면 좋았을 텐데, 약간 뭉글했다. 연주자의 터치가 그런 소리를 낸 것 같지는 않고, 피아노 자체의 소리가 좀 멍한 편이었던 같다. 대위법을 잘 구사한 브람스고, 3악장은 아예 푸가로 작곡되었으니까 첼로가 선율을 연주하면 피아노가 모방하고, 또 피아노가 선율을 연주하면 첼로가 뒤따라 모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만큼 두 악기의 음색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소나타 1번의 연주가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되었다. 인터미션 시간이면 으레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해놓고 프로그램 북이라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이날은 이미 카페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그냥 자판기 커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자판기는 리사이틀 홀 출입구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데, 출입구 앞에 놓인 프로그램 북을 슬쩍 보니까 이날 같은 시각 리사이틀 홀에서는 첼로 독주회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각 9시쯤 2부 연주가 시작되었다. 장한나는 정열적인 붉은색의 드레스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2번. 첼로 소나타 1번과는 2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작곡된 곡. 그만큼 원숙미가 돋보인다고 해야 할까. 브람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유지되면서도, 1번 때와는 그 표현의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3악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악장이 모두 장조로 작곡되어 있는 만큼 곡의 표정은 한결 밝아진 느낌이지만, 그 속에서도 애수가 간직되어 있다.

“연주를 하는 도중 실수로 악보가 두 장 넘어갔을 때, 연주를 멈추어야 한다면 좋은 연주자가 아닙니다.”

졸탄 코다이의 말이다. 이날 장한나는 전곡을 암보로 연주했지만, 피닌 콜린즈는 악보를 보고 연주를 했다. 물론 악보를 넘겨주는 넘순이가 있었다. 넘순이는 악보를 넘기기 전, 악보를 위에서 아래로 거의 반쯤 내려 접어 연주자가 악보의 마지막 줄까지 다 볼 수 있도록 배려 한 다음 연주자의 신호를 받아 악보를 넘긴다. 그런데 1악장 연주 중의 일이었다. 넘순이가 넘기려고 접었던 악보를 놓치는 바람에, 황급히 악보를 다시 잡아서 넘기느라 그만 두 장을 넘겨버렸다. 연주는 어떻게 됐을까? 물론 피닌 콜린즈는 좋은 연주자였다. 연주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1악장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2악장 첼로의 피치카토는 가슴을 쳤다. 이 곡의 2악장은 결코 유약하지 않다. 장한나의 피치카토 연주는 그야말로 박력이 넘쳤다. 현을 뜯으면서 악기를 그토록 풍부하게 울릴 수 있다니, 놀랍다. 그 소리가 연주회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2악장이 끝나자 또다시 여기저기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대체 이 사람들이 연주 중에는 어떻게 기침을 참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 연신 기침을 해대다가도 장한나가 활을 들어 올리면 신기하게도 기침을 멈춘다. 실황 연주 녹음을 들어보면 악장과 악장 사이에 기침은 세계 공통인 듯도 하지만, 때로는 이 기침 소리가 악장 사이의 눈치 없는 박수 소리보다도 더 거슬린다. 3악장은 피아노의 연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장한나에게만 집중을 하며, 연신 기침을 해대었다. 그때 갑자기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 덕분에 미처 기침을 멈추지 못 한 여러 사람 숨넘어갔다.

장한나는 액션이 큰 연주자다. 표정도 다양하다. 그만큼 음악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또한 장한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두터운 소리를 요구하는 브람스의 음악도 무리 없이 잘 연주 해 내는 것 같다. 분명한 건, 관객을 몰입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별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떠드는 짓은 삼가도록 하자. 새삼 그녀의 열정이나 관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몇몇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2부 프로그램이 조금 짧았기 때문에, 몇 곡의 앙코르 곡을 예상하긴 했지만, 관객들의 열광 속에 무려 다섯 곡의 앙코르 곡을 연주했다. 연주된 곡은 차례로 포레의 ‘꿈꾸고 난 후에’,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뒝벌?)의 비행’,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 구노의 ‘아베마리아’, 그리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였다.

장한나의 첼로 스승 미샤 마이스키가 내한 중이라고 한다. 먼저 첼로 독주회를 열었고, 며칠 후에는 하이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한나는 스승님과 같은 시기에 한국에 있게 되어 기쁘다며 구노의 ‘아베마리아’ 연주를 스승님께 바치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이면 구노의 ‘아베마리아’인지 모르겠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앙코르 곡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늘어서, 막바지에는 홀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조’의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이 퇴장한 후 출입문이 닫혔는데도 사람들의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실내의 조명이 환하게 밝히자 그제야 사람들은 퇴장하기 시작했다. 나도 무언가가 발산된 듯한 후련한 마음으로 콘서트홀을 빠져나왔다. 예술의 전당 정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기다란 줄에 합류했다. 첫 번째 버스를 보내고, 두 번째 버스에 겨우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강남역까지 가서, 분당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탔다. 외투 주머니에는 mp3 플레이어가 들어 있었지만, 이 날은 귀갓길에 음악을 듣지 않았다. 애써 잠을 청하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첼로의 선율이 흘렀다. 11시를 훌쩍 넘겨 분당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밤공기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러나 이제 저물어버린 가을에 더 이상 미련은 남지 않는다.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된 것이다.

2009/11/23 17:06 2009/11/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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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니아의 향상 음악회가 있기 하루 전날, 연주 준비로 수고하는 후배에게 맥주나 한 잔 사줄 요량으로 학교에 나갔다. 과연 향상 전야라서, 대강당 복도에는 여느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와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도 복도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악기를 꺼내 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훨씬 연습 할 맛이 난다.

후배 셋(학번으로 후배이지만 한 명은 입단 선배, 한 명은 입단 동기, 오직 한 명이 입단 후배다)과 함께 맥줏집에라도 가려 했지만, 맥주보다는 고기에 소주 한 잔 걸치고 싶다는 후배들의 바람에 길을 돌렸다. 다음 날 연주 잘 하란 의미에서 가볍게 한 잔씩만 하려던 생각이었는데, 네 사람이서 고기 두 근 반과 술 네 병을 해치웠다. 내친김에 2차까지 달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가 자중 시키고 해산해버렸다. 정작 연주 부담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말이다.

집에는 새벽 2시 반이 조금 넘어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주제로 글을 쓰려고 시도했다. 관련된 자료를 찾고 검토하다보니, 어느 새 동이 터버렸다. 아마 아침 7시가 넘어서 겨우 잠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대낮까지 자버렸고, 향상 음악회에는 지각 해 버렸다.

이번 향상 음악회는 1년 전처럼 대강당에서 열렸다. 2008년 가을 향상 음악회는, 내가 유포니아에 입단하고 나서 처음 참여한 공식적인 음악 활동이었다. 그때 나는 향상 팀으로서는 규모가 대단히 큰,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연주 팀에 살며시 들어가, 연주까지 조용히 묻어갔다.

반년 뒤 2009년 봄 향상 때에도 나는 정보국 국원들이 모인 큰 규모의 팀에 들어가서 눈에 띄지 않게 연주를 했다. 그때의 곡은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K136) 1악장. 나는 이때가 내가 경험하는 마지막 향상 음악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당 그랬어야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알 수 없는 것이라더니 결국 나는 이번 향상도 보게 되었다.

마치 인생에 덤으로 주어진 기회 같은 것이었지만, 나는 이번에는 어떤 향상 팀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일단 과거 연주 때와 같은 대규모 팀이 조직되지 않은 게 이유다. 이번에는 유난히 많은 팀들이 향상 음악회에 참가를 해서 대규모 향상 팀이 생기는 것을 자제시켰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면 나 역시 독자적으로 실내악 팀을 꾸려서 사중주든 오중주든 실내악에 도전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실내악은, 교향악보다도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큰 부담이 지어지는 소규모 실내악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곡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향상 음악회 무대에 가장 자주 오르는 ‘현악 4중주’란 장르가 가장 난해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현악 4중주는 규모 면에서는 겨우 네 개의 악기로 구성되어 작은 편이지만,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첼로의 구성은 성악으로 치면 소프라노에서부터 베이스까지 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라, 짜임새 있는 음악이 가능하다. 결국 현악 4중주는 ‘짜임새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음악과 접해온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는 이런 곡의 탄탄한 구성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실내악을 좋아하고 동경하지만 섣불리 다가갈 용기가 없는 나에 비해서, 유포니아의 많은 단원들은 상당히 거침없이 명곡들에 도전장을 내민다. 학생다운 패기라고 할까, 아마추어의 열정이라고 할까.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도 언젠가 꼭 한 번 도전 해 보고 싶은 실내악곡이 하나 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다. 브람스가 만년에 작곡하여 브람스를 대표하는 우수와 비애의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으면서도 구성 면에서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명곡 중의 명곡이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는 너무 높은 이상이고, 실은 한 번 진짜 팀을 꾸려볼까 생각하며 진지하게 검토 해 본 곡은 따로 있다. 뭣도 모르는 아마추어들에게 만만해 보이는 것이 역시 모차르트라고, 모차르트의 ‘플루트 4중주 A 장조’를 놓고 숙고를 했었다. 이 곡의 1악장은 변주곡 형식으로 작곡되었는데, 어려서부터 들어온 친숙한 멜로디가 아름답게 변주되어 가는 것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거의 플루트의 독무대지만, 나중에 가면 악기마다 고루 배려가 되어 있어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모차르트 사운드’에 대한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 향상에 모차르트 플루트 4중주를 들고 나온 팀이 있었다. 내가 고려했던 K298은 아니고, D Major인 K285였는데, 멤버 구성이 드림팀 수준이었다. 연주가 훌륭해서 내심 ‘이 팀이 대상 타가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대상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1등상이나 다름없는 특별상을 받았다. 뭐 이런 데서 단념하길 잘했다고 느껴봤자 나만 쓸쓸해 질 뿐이지만.

나는 객석에 자리를 잡고, 인터미션 때를 제외하곤 꼼짝도 않으며, 아름다운 감상용이 아닌 단순 기록용 사진을 열심히 찍어댔다. 초반 몇 팀의 연주는 놓쳤지만, 그래도 거의 스무 팀에 가까운 연주를 모두 들었다. 아무리 동아리 내부 행사라지만, 이런 진지한 관객도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향상에서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브람스의 현악 4중주, 5중주, 6중주가 모두 연주되었다는 점(신기하게도 모두 2번이었다). 역시 가을이라는 것일까. 특히 6중주 1악장은 지난 연주회 때 각 현 파트의 수석을 맡았던 파트장들이 모여 연주를 했다. 덕분에 첼로 한 대 대신에 베이스가 들어갔다.

향상 음악회에서는 다양한 곡들이 연주되는데, 지난 4년 여 동안 줄기차게 음악을 들어온 나도 접해보지 못 한 음악들이 연주되어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령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2번은 존재하는 것만 알고 있었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인데, 이번에 어떤 팀이 이 곡을 들고 나왔다.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2번은, 그가 죽던 해 정신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쓴 곡이다. 워낙 괴상하게 작곡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그가 미쳐버린 나머지 제대로 작곡을 하지 못 한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다는데, 쇤베르크 같은 사람은 이 곡을 극찬했다고 한다. 무조주의 음악의 창시자 쇤베르크에게는 이 곡이 미래를 예견한 곡으로 이해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쇤베르크마저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에조차 이 곡은 사람들로부터 별로 환영을 받진 못 하고 있다. 그런데 아마추어들이 이 곡을 꺼내어 연주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 빛을 발할 날이 정말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2번과 내용은 다르지만 음산한 배경을 공유하고 있는 곡도 있었다.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6번이다. 멘델스존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누나가 죽고, 그 충격으로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쓴 곡. 그리고 멘델스존 역시 이 곡을 완성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멘델스존의 밝고 아름다운 악풍과 완전히 다른 이 곡을 어떻게 연주했을지 궁금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곡은 내가 놓쳐버린 몇 개의 곡 중에 하나였다.

그밖에 드보르작의 피아노 5중주곡(이것도 놓쳤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4번과 7번,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13번(로자문데)과 14번(죽음과 소녀) 같은 유명한 곡도 있었다. 물론 유명한 곡은 그만큼 연주에 위험 부담이 따른다.

향상 음악회의 커다란 즐거움이라면 역시 비올라 향상이나 금관 향상 같이, 어딘가 좀 어설프지만 노력이 빛나는(그러나 실제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연주를 듣는 것이다. 비올라 팀은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몸에 눈(雪 )을 연상시키는 흰 공들을 붙이고 나와서 캐럴 메들리를 연주했다.

이번 향상 음악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팀이라면, ‘솔로의 자조’를, 적절한 배경 음악과 스케치북 소품을 이용해 유쾌하게 풀어낸 솔로 남자들의 팀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 용기가 가상했던 한 사람이 있는데, 혈혈단신으로 무대 위에 올라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중 6번곡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내려온 녀석이 있어, (장난 섞인)기립 박수를 받았다. 나도 ‘10년 동안 레슨을 중단하지 않겠다.’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나면, 한 번쯤 솔로 연주에 도전 해 볼까. 뭐 넉넉잡아 앞으로 6년 후의 일이다. 그때까진 꿈도 꾸지 않으련다.

오후 2시 반에 시작한 향상 음악회는 저녁 7시 무렵에야 끝이 났다. 가까운 고기 뷔페에서 뒤풀이를 하고 9시를 조금 넘겨 해산했다.

대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이 빛난 연주회를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참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음악과 접하면서 쌓아온 저들의 역량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모하다 싶은 도전도 거침없이 해버리는 그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어느 것이나 나에게는 부족한 것들이다.

다음 연주회 곡이 발표되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다.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내부 정보를 들은 이후로 나는 브람스를 열렬히 응원 해 온 터여서, 이 발표를 듣고는 허탈해졌다. 나는 보통 남들 앞에서 나의 호불호(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는 식의)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나는 브람스에 대한 나의 애착을 노골적으로 피로하고 다녔다. 어떤 곡이 주어지든 나는 불평할 처지가 아니지만, 덤으로 주어진 이 마지막 기회에 나는 꼭 브람스와 만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바라던 것과 달랐고, 어떻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2009/11/15 22:42 2009/11/1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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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해지는 방법 같은 건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불행해지지 않는 확실한 방법은 알고 있다. 그것은 남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오늘 하루 행복했던 사람에게는 축복을.

아침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벌써 네 번째 레슨이다. 스케일을 먼저 체크하고, 카이저 10번, 이어서 하이든 바이올린 협주곡 2번. ‘힘차게, 애절하게, 간결하게.’ 하이든 악보 군데군데 선생님이 적어놓은 것들이다. 음악에도 표정이 있다. 그걸 몰라서 표현 못 하는 것이라면, 개선의 여지는 없어도 마음은 덜 답답할 것이다.

점심때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 외식을 하고 왔다. 간밤에 통 잠을 못 자서 연주회 가기 전에 눈 좀 붙일 요량으로 소파에 누워 TV를 켜니, 마침 Arte TV에서 대한민국 국제음악제의 연주회를 재방송 해 주고 있었다. 음악이나 듣다가 서서히 잠들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하필이면 연주곡이 오늘 저녁 성남시향 연주회 프로그램에도 들어있는 브람스의 이중협주곡이 아닌가. 원래 연주회에 가기 전에 곡을 복습(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라면 예습)하는 습관이 있어, 잘 됐다 싶어 졸음을 잠시 참고 연주를 감상했다.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게데,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였다. 오케스트라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율리우스 베르거라는 첼리스트가 사용하는 첼로, 수령이 400년도 넘은 아마티의 작품이라던가.

브람스의 이중협주곡이 끝나니, 이번에는 지난 9월 유포니아 정기 연주회 때 연주했던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을 연주했다. 계속 보다가는 연주회장에 가서 졸 것 같아서, 적당히 볼륨을 낮춰놓고 일단 눈을 감아버렸다.

연주 시작 2시간 전쯤 집을 나섰다.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았지만, 조금 일찍 도착하면 간단히 뭐라도 사먹을 요량이었다. 차는 버스 정류장 근처 무료 주차장에 세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먼저 강남으로 가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초역으로 갈지, 아니면 양재로 가서 3호선 남부터미널역으로 갈지 잠깐 고민했다. 결국 고속도로를 타는 강남역 직행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이 선택이 잠시 후 예상치 못 했던 엄청난 결과를 몰고 왔다.

도로 사정은 이미 고속도로 상에서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일반차량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여 버스가 요금소를 빠져나와 전용 차로로 진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전용차로에 오른 뒤부터는 어느 정도 속도를 내긴 했지만, 오늘따라 버스가 많아서 여느 때처럼 빨리 달리지는 못 했다. 게다가 이따금 꽉 막힌 도로 사정에 짜증이 폭발한 일반 승용차 운전자들이 무단으로 버스 전용 차로에 진입하면서 버스의 앞길을 가로 막는 일도 생겼다.

반포 IC를 통해 강남으로 빠지는 길목에서 이미 끔찍한 정체가 시작되었다. 교보타워 앞 사거리를 돌아 신논현역 앞 정류장까지 평소라면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가는데, 평소의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이미 이 시점에서 내가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서울의 교통 혼잡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이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는 도시 문제가 과연 언젠가 해결 될 날이 오긴 할지 의문이다. 이건 문제다. 그러나 누구나 여기에 짜증은 내면서도, 정작 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래서 나는 정부 정책으로 행정 수도를 이전한다고 했을 때 쌍수를 들어서 환영을 했던 것인데, 헌재에서 관습 헌법 운운하며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이미 반쯤은 포기했고, 요즘 세종시를 둘러싼 유치한 논쟁을 보면서 완전히 절망했다.

강남역 인근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강남에 대체 무슨 볼거리가 있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꾸역꾸역 밀려드는지 모르겠다. 인파를 헤치고 강남역으로 걸어가, 간신히 지하철을 탔다. 그러나 여기서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사태가 벌어졌다.

강남역과 예술의 전당이 가까운 서초역 사이에는 단 한 역, 교대역이 있을 뿐이다. 이동 시간은 길어야 10분 남짓? 서초역에 도착해 출구에서 버스를 잡아타면, 적어도 연주회 시작 10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배고픈 것은 인터미션 때 로비의 카페에서 케이크라도 한 조각 사먹으면 달랠 수 있을 터. 교통이 혼잡했지만, 지각을 면하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이제 막 교대역에서 승객을 태운 열차가 다시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한 차례 열차의 문이 닫혔다가 다시 열렸다. “출입문 닫겠습니다.”란 기장의 안내방송. 다시 닫히는 문. 그러나 이내 문이 다시 열렸다. “출입문 닫겠습니다.” 다시 한 번 방송. 그러나 또 닫혔다 열리는 문.

“승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열차는 현재 출입문 고장으로 잠시 정차하고 있습니다. 조치 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뭐든지 꼬이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강남에서 서초까지 고작 두 정거장 가는데, 하필이면 그 사이에서 열차가 고장 날 게 뭐란 말인가? 처음에는 금방 고치겠지, 했는데 5분, 10분이 지나도 열차는 출발할 생각을 안 했다. 연주회 시작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표정이 일그러지고 나도 모르는 새에 주먹을 꽉 쥐기도 했다. 가끔은 정말 있는 힘껏 발로 땅을 구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짜증이 솟구치기 마련이다.

열차는 15분가량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열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도로 사정은 이쪽도 별로 좋지 않았다. 첫 프로그램인 ‘대학축전서곡’은 물 건너 간 것이 확실했다. 이제는 두 번째 프로그램 전에만 입장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할 판이었다.

콘서트홀에 도착했을 때, 홀 안에는 대학축전서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서둘러 현장매표소에 가서 티켓을 구매했다. 프로그램 일부를 놓쳤지만, 그래도 R석 괜찮은 자리의 표를 샀다. 일단 화장실에 들러 땀을 좀 닦아내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로비에서 역시 지각한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입장을 기다렸다. 금방 대학축전서곡이 끝났다. 직원은 티켓에 적힌 좌석과는 상관없이 일단 가까운 빈자리로 안내를 해주었다.

다행히 협주곡을 놓치지 않아서 안도했지만, 숨 가쁘게 온 터에다 아직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서 1악장 연주 때는 연주에 좀처럼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2악장 안단테가 시작되자 차분한 주제 선율에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첫 머리의 호른이 약간 불안한 것 같았지만, 무난하게 넘어갔다). 아름다운 선율을 고음부의 바이올린과 저음부의 첼로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참으로 평온하게 느껴졌다. 연주회장까지 오면서 쌓인 짜증이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이날의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아와 첼리스트 송영훈. 송영훈은 자주 본다.

그리고 3악장. 아마 브람스의 이중협주곡 중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악장일 것이다. 시작부터 첼로가 경쾌한 주제 선율을 연주한다. 이것을 곧바로 바이올린이 받고, 이어서 전체 관현악이 포르티시모로 연주하는데, 관객들로부터 최고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

입구에서 공짜로 나눠준 프로그램 북은 공짜인 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곡 해설은 책의 것을 그대로 베꼈거나 혹은 개인 일기장에나 적어두는 게 어울릴 만큼 주관적인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 북에 따르면, 이 곡을 작곡할 때 브람스는 솔리스트들의 기량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되어있다. 이 곡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텐데, 아마 브람스가 너무 어렵게 곡을 써놔서 마치 당시의 연주자들의 기량이나 한계 따위는 아랑곳 않은 듯 여겨진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곡은 연주에 고도의 기교를 필요로 해서, 솔리스트들 개개인에게 높은 역량이 요구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뛰어난 연주자들이 워낙 많으니. 이것도 프로그램 북에 적혀있던 내용이지만,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아는 뉴욕 콘서트 리뷰로부터 “정교하고 화려한 테크닉, 맑고 영롱한 소리, 깊고 넓은 음역, 열정적이면서도 담백한 연주 스타일, 바이올리니스트로 최상의 기량과 미덕을 갖춘 연주자”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되어 있다. 화려한데 정교하고, 열정적이지만 담백하며, 깊은데다가 넓기까지 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하지만 분명 솔리스트들의 연주는 훌륭했다. 다만 워낙 힘에 넘치는 대곡이고, 또 협주곡을 쓸 때에도 항상 오케스트라 부분을 탄탄하게 작곡해 놓는 브람스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바이올린의 경우에 프로젝션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던 건 있다.

이중협주곡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객석에서 휴대폰이 한 차례 울렸다. 그리고 1악장이 끝난 뒤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주회장 안에서 휴대폰을 꺼놓아야 된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몰상식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부주의에 의한 실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악장 사이에 박수는 좀 더 미묘한 문제다. 아마추어 연주회 때에는 별다른 주의가 없으면 십중팔구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 나온다. 지난 번 삼성필 연주회 때는 브람스 4번 1악장이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가 나오려는 것을 지휘자가 객석을 향해 손을 내저어 제지한 바 있다.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은 하나의 에티켓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은 물론 강제적인 사항은 아니다. 또 어떤 곡들은 정말 마음껏 박수를 쳐보라는 식으로 1악장을 끝맺는다. 가령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끝났을 때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악장이 연주 될 동안 어떤 감정을 유지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라는 것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은 무식한 행동’이라고 정의 해 버리면 간단히 끝날 일이겠지만, 오페라의 훌륭한 아리아가 끝나면 그 감동을 당장 표현하기 위해 열렬한 박수를 치는 것처럼, 종종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도 허용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악장 사이의 박수보다도 이때다 하고 터져 나오는 기침이나, 마지막 악장 마지막 음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아는 체하고 브라보를 외치는 따위의 행동이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터미션 시간에는 로비의 카페에서 치즈 케이크 한 조각과 카페라테를 사서 일단 허기를 달랬다.

오늘 연주회는 브람스 스페셜로 구성되었다. 첫 프로그램인 대학축전서곡은 놓쳐버렸지만, 그렇더라도 이중협주곡과 메인 곡인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이다. 특히 오늘 성남시향의 연주로 듣는 브람스 4번에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나는 국내 시향들의 연주를 직접 들으러 연주회장을 찾은 경험은 별로 없지만, 매일 같이 클래식 연주회 장면을 방송해주는 고마운 Arte TV를 통해 국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시향들의 연주를 다 감상했다. 이건 나의 솔직한 감상인데, 요즘 국내 오케스트라의 실력은 상당히 뛰어난 것 같다. 과거의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듣는 바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시향조차 오늘날의 영광을 상상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정말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들을 만한 연주’를 들려준다.

매년 봄이면 전국의 시향들이 총출동하여 ‘교향악 축제’를 여는데, 각 시향들이 서로의 역량을 비교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2003년에 생긴 성남 시향도 지금까지 세 차례 교향악 축제에 참가하였다. 자기 고장에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것은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겠다.

브람스 4번.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 전체적인 짜임새도 정말 훌륭하지만, 2악장이 너무나 아름다운 곡. 이 2악장은 시작과 함께 호른과 목관이 주제 선율을 연주해 나간다. 그 사이에 현은 피치카토로 반주를 한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프로 오케스트라를 비교하면 그 차이점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현악기의 ‘피치카토’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있어 피치카토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만일 ‘시간’을 x축에 놓고, 그 위에 현악기로 연주되는 음의 길이를 표시한다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다란 선분으로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피치카토는 시간 축 위에 점을 찍는 것이다. 연주 되는 음의 길이가 충분히 길면, 설령 첫 머리에 연주자들 간에 호흡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자연스럽게 하나의 소리로 모이게 된다. 그러나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 할 때에는 그런 여유가 없다. 한 번 소리가 어긋나면 시간 축 위에 무수한 점이 찍히게 된다. 그러면 정말 참아줄 수 없는 지저분한 소리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연주자들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추어 연주자라면 누구라도 피치카토 부분에서는 소심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 혼자 엉뚱한 박자에 소리를 내면, 피치카토 부분에서는 너무 확연히 드러난다. 이런 위험부담을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지저분한 소리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리가 사라져버린다.

의미 없는 음표는 한 개도 쓰지 않는 브람스다. 반주는 화성을 채워주고, 소리를 두텁게 하며, 긴장감을 유지시켜주고, 주제 선율을 돋보이게 한다. 이 반주가 무너졌을 때, 연주는 맥이 없어지고 흐물흐물 거리며, 무게 중심 없이 그저 부유하게 되어버린다.

탄탄한 소리와 팽팽한 긴장감 끝에 아름다운 현악기의 소리로 주제 선율이 변주되어 연주될 때, 비로소 감상자는 감동으로 살짝 눈시울을 붉힐 수 있는 것이다.

앙코르 곡은 예상했던 대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었다. 다행히 5번은 아니고, 1번을 들려줬다. 브람스가 꼭 가을에만 어울리는 작곡가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면 브람스의 곡을 많이 찾는 건 분명하다. 이제 겨울을 바라보는 늦가을, 브람스와 함께한 저녁은 즐거웠다.

2009/11/12 05:32 2009/11/1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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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벌어오는 가장에게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삼성 같은 대기업들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나는 조중동 같은 휴지에 사설이나 내는 부류의 인간들이 언급하기 좋아하는 ‘좌파적 사고에 물든 인간’도 아니고, 홀로 정의를 부르짖는 도덕론자도 아니다. 다만 눈뜬장님은 아닐 따름이다. 일개 기업의 부도덕, 부정(不正)에 대해 분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누구 한 사람 감히 직언할 수 없고, 점차 그것을 직시하려 하는 사람조차 사라져가는 무거운 현실은 나를 화나게 한다.

신화란, 과거를 현재의 입맛에 맞게 날조해버린 것이다. 찬란한 위광을 바라보며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걸어가는 사이, 우리의 눈은 완전히 멀어버리게 된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일평생을 위기의식 속에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이 모순된 사회의 정점에 서서 위기의식을 늘 조장하는 장본인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둥 ‘사람을 향합니다.’라는 둥 떠드는 꼴을 보면, 비위가 상한다.

대기업의 횡포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알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여하한 이유에서건 그것을 알기를 포기할 때에, 오욕의 과거를 깨끗이 포장해 반들반들한 현재로 만들어버린 그들에게 결국 미래까지 내어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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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는 취미 생활도 단순한 취미 생활일 수 없는 모양이다. 삼성필의 연주는, ‘백혈병 아동 돕기 자선 연주회’를 표방하고 있었다. 좋은 일은 좋은 일이니, 여기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독기 어린 얼굴로 악착 같이 투쟁과 혁신을 외치며, 이마트로 유통망을 장악하고는 PB 제품을 남발하여 제조회사의 목을 옥죌 때, 백혈병 아동을 자식으로 둔 가장은 실직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삼성필은 삼성 임직원들이 모여 만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다. 이것을 창단한 사람이 유포니아 출신의 선배라고 한다. 그래서 삼성필이 연주를 할 때면 으레 초대권이 날아오곤 하는 모양이다. 동아리 후배 녀석이 같이 가자는 제의를 해주어서 가기로 했다. 비록 내가 지금까지 아마추어들의 연주 무대를 꽤 여럿 보러 다니긴 했지만, 그게 취미인 사람은 아니다. 아마추어들의 열정이야 높이 사고, 나 역시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 자극을 받는 게 사실이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아마추어들에게 음악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대단하다는 삼성 그룹의 오케스트라이지만, 유포니아와의 인연이 아니었더라면 일부러 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주 장소가 세종문화회관이었다. 오랜만에 광화문으로 나갔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교보문고에 들러 명곡해설라이브러리 시리즈의 브람스 편과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일어판을 구입했다. 책값만 8만원 가까이 나와서 그동안 모아둔 적립금을 사용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 전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햄버거라도 하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버거킹이 있는 쪽 출구로 나가려는데, 출구 바깥에서부터 교보문고 안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오늘 무슨 작가의 사인회가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품에 끼고 있는 책을 힐끗 보았는데, ‘보통의 존재’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출구로 빠져나오니, 풍경이 낯설었다. 버거킹이 있어야 할 자리는 흉하게 뜯겨나가 있었다. 없어져버린 것이다. 교보문고에 오면 으레 들르는 곳이었는데.

이러는 사이 시간이 촉박해졌다. 뭐라도 먹어야겠기에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 있는 KFC에서 세트 메뉴 하나를 주문해 허겁지겁 먹고 대극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네댓 명 되는 일행과 만났다. 화장실에 먼저 들렀다가,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세종홀에 처음 온 한 사람은, 홀안 여기저기를 사진으로 찍어 남기느라 바빴다. 생각해보면 나도 작년 서울시향의 마스터피스 연주회 이후로 세종홀을 찾는 게 처음이다.

선배들이 보내준 초대권의 자리는 꽤 괜찮았다. 상당히 앞쪽 자리라, 관 파트를 보는 것은 어려웠지만, 대신 협연할 솔리스트는 가까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곡은 스메타나의 교향시 모음곡 ‘나의 조국’ 중에서 두 번째 곡인 ‘몰다우 강’이었다. 너무나 유명한 곡이지만, 연주하기가 쉽지는 않다. 사실 이 곡의 핵심은 다소 유치한 느낌마저 드는, 귀에 착 감기는 주선율이 아니라, 짧게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반주다. 바로 이 반주가 몰다우 강의 넘실거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강의 넘실거림을 표현한 스케일은 어느 한 파트가 단독으로 맡지 않는다. 때로는 저음 악기에서 고음 악기로, 다시 고음 악기에서 저음 악기로 건네주며, 시각적으로도 강물의 넘실거림을 완벽히 표현한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아마추어에게는 이런 주고받기가 쥐약이다. 강물의 유려한 넘실거림이라기보다는, 얼마 전 서울국제아트페어에서 본, 모터를 돌려 억지로 표정을 바꾸는 모택동 초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었다. 3악장 구성의 정통 첼로 협주곡은 아니지만, 단순한 소품 취급하기에는 규모가 상당한 곡이며, 첼로 협주곡 레퍼토리로 꽤 인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아하는 곡은 아니다. 나 역시 일반 대중들과 비슷한 입맛을 가지고 있다. 첼로 협주곡으로는 드보르작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엘가의 협주곡 1악장을 좋아하며, 경쾌한 하이든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그러나 어딘가 변주가 밋밋한 느낌이다. 어쩌면 주제 선율이 너무 단조로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탁월했던 차이코프스키이지만, 변주는 그의 장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협연한 첼리스트는 ‘송영훈’으로,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상당히 인정받는 대단한 실력자이다. 이런 사람을 섭외한 것도 삼성이니까 가능했던 것이겠지만, 굳이 이런 스타를 불어와야 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탁월한 솔리스트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결합은 반드시 절름발이를 낳게 되어있다. 유포니아도 바로 얼마 전에 대단한 교수님들을 모시고 연주회를 했으니까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오케스트라는 두 가지 생각을 품게 된다. 첫째는 솔리스트에게 적당히 묻어가지는 것이고, 둘째는 솔리스트에게 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솔리스트에게 묻어갈 생각을 버리고 당당히 ‘협연’을 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솔리스트에게 ‘폐’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솔리스트만 너무 부각된 나머지, 차라리 독주곡을 연주하는 게 나았을 뻔했다.

이날의 메인 곡 브람스 4번은, 처참했다. 내가 사랑하는 브람스의 교향곡이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지는 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었다. 내 옆의 두 사람은 브람스의 4번을 오늘 처음 들었다는데, 이들이 이런 엉망진창의 연주로 브람스를 접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이미 1악장의 제1 주제부터 엉클어지기 시작했다. 음정이 안 맞는 거야 둘째 치더라도, 오케스트라의 호흡이라는 게 실종된 듯 보였다.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의 유니즌으로 강한 표정이 살아나야 할 부분에서는 그저 얼이 빠져있었다. 관악기들은 조율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지, 아주 듣기가 괴로웠다. 클라리넷은 악기가 망가졌거나 아니면 연주자가 신종플루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를 하고 나온 악장은, 그저 나이가 많아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게 확실 해 보였다. 오케스트라를 리드하기는커녕, 옆 사람 쫓아가는 게 고작이었다. 실수는 또 왜 그렇게 잦은지. 감동의 떨림이 느껴져야 할 2악장에서는 창자가 내려앉는 것 같았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답게 허용된 템포 안에서 가장 느리게 연주한 3악장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듯한 답답함을 선사했다. 4악장의 피날레에 이르렀을 때, 언제나 특유의 치밀함으로 바닥부터 견고하게 쌓아와 클라이맥스를 들려주는 브람스의 교향곡은 간데없어, 왜 피날레가 지금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추어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과대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두어 시간 연습하면 그게 자신에겐 최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연주 무대에 서면 그 노력의 값어치를 사람들이 다 알아 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진지한 표정, 자못 자랑스럽다는 태도와 어설픈 연주의 부조화를 보며, 관객은 이게 장난하자는 건지 한 번 제대로 해보자는 건지 알 수 없게 된다.

앙코르 곡으로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를 연주했는데, 첼리스트 송영훈이 다시 나왔다. 이 대스타가, 구원투수가 아니라 패전처리 투수 역할을 맡았다.

백혈병 아동 돕기 성금 전달식을 하고,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는 관객들 앞에서 삼성의 사가(社歌)를 연주했다. 단언하건데, 이 날의 연주 중 가장 훌륭한 연주였다.

이들의 연주는, 아마추어의 열정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아마추어의 열정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엄청난 돈을 들여 대스타를 솔리스트로 부르고, 세종문화회관 같은 최고의 홀을 섭외하고, 백혈병 환우 돕기라는 공익적 가치를 내걸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초대장으로 불러와 떠들썩한 자리를 마련했지만 정작 연주에는 내실이 없고, 진심으로 노력한 티도 나지 않았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었고, 우리 삼성맨들은 노예 부림 같은 생활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관심의 끊은 놓지 않고 있다고 애처로이 항변하는 듯했다. 음악을 즐기고 싶으면, 겉치장부터 뜯어버리라고 충고해주고 싶었다. 이들이 입은 겉옷은 삼성이라는 이름으로 빌려 입은 것이지, 연주에 대한 열정이나 실력을 갖춰 입은 게 아니다. 한 마디로 겉멋 부릴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연주회 끝나고 신촌으로 가, 며칠 후면 군입대하는 전임 회장 송별연에 잠깐 얼굴을 비추고 맥주 두어 잔을 급히 비운 후, 나는 돌아왔다.

2009/11/09 16:11 2009/11/0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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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공연의 리뷰도 써야하나…….

아니, 난 관대하니까.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어머니의 대학원시절 지도교수였던 분이 성남아트센터의 무슨 회원 자격으로 이따금 공연 티켓을 제공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마침 성남에 살고 있는 엄마를 연주회에 초대한다. 이날도 그랬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나간다. 그러나 이 날은 아빠가 강연을 나갔기 때문에, 엄마는 대신 나를 대동하고 나가기로 했다. 무슨 연주회인지 아무런 정보를 듣지 못 했지만, 나는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흔쾌히 동행하기로 했다.

일찌감치 성남아트센터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콘서트 홀 앞에서 교수님 부부를 만나 티켓을 전달 받았다. 무슨 자선 콘서트를 표방하기에, 공짜표를 얻어 온 나는 일부러 내용은 아무 것도 없지만 가격은 3천원이나 하는 프로그램 북을 구입해 입장했다. 그리고 연주 시작 시간을 기다리며 그 빈약한 프로그램 북을 펼쳐 연주곡들과 연주단체를 살펴보았는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 단체는 분당 청소년 오케스트라. 그러니까 아마추어 공연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초중고교에 다니는 어린애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말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두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첫 번째. 대체 분당 청소년 오케스트라 같은 어린애들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성남아트센터 콘서트 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걸까?

두 번째. 학생들의 부모와 친척들이라면 모를까, 그 외에는 불러봤자 욕만 먹을 연주회에, 왜 초대장까지 뿌려가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까?

그런데 이 의문들은 공연을 관람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프로그램은 위와 같았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 만큼 연주의 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냥 연주 외적인 면에서 몇 가지 감상을 적자면, 어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든 악장 자리에는 바이올린 제대로 배운 티가 나는 녀석이 앉아있다는 것. 그리고 어느 어마추어 오케스트라든 비올라 파트는 대부분 움직거리는 마네킹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항상 수석 자리에 만큼은 바이올린을 했으면 나보다 잘했을 것 같은 실력자가 앉아있다는 것.

연주 자체는……. 아, 여기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했지.

하바네라 연주할 때에는 프로그램에 이름조차 적히지 않은 성악가가 나와서 오케스트라를 묻어버리는 노래를 부르고, 막판에 들고 있던 꽃을 객석에 던지고 나갔다.

그리고 인터미션도 없이 이어진 연주회의 9번째 프로그램. 갑자기 한 무리 백발의 노인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분명 아까 저녁 식사 때 식당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담소 나누느라 바빴던 사람들인데.

이들의 정체는 바로 CEO 중창단. 분당에 소재하는 각종 기업의 CEO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말하자면 ‘중창 동호회’인 것이다. 여기서 연주 시작 시부터 품게 되었던 의문을 풀어 줄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CEO 중창단 멤버 중에 ‘성남아트센터’의 사장도 속해 있었던 것.

그러니까 성남아트센터의 사장은, 지역 사회 공헌이라는 공익적 기치를 전면에 내걸고 자신이 속한 동호회의 연주를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올린 것. 그리고 분당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이 중창단의 반주를 위해(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MR를 깔고 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불려온 것이겠지. 엄마의 지도교수가 이 사장님과 무슨 친분이 있다고 하니까, 초대권을 받게 된 것도 납득이 간다.

그래서 노래 자체는 어땠냐면……. 아, 언급 안 하기로 했지.

애당초 아마추어 무대인 줄 알고 갔더라면, 나 역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개방적인 자세로, 따뜻한 시선으로, 즐기려는 마음으로 이들의 연주를 감상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마추어 연주를 꽤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이고, 그들에게 가장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교수님의 초대를 받고 간 연주회가 이런 것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사실 좀 툴툴거리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이 연주회를 살려준 것은 유엔젤보이스라고 하는 남성 6인조 중창단. 이들은 프로였다. 노래를 잘하는데다가 잘생기기까지 해서, 관객 호응도가 대단했다. 옆에서 이들의 공연을 내내 흐뭇하게 지켜보던 엄마 왈 “오늘 공연의 메인은 얘들이구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유도된 앙코르 요청에 두 곡을 더 부르고, 꼬마 관객들에게는 색색의 공까지 던져주며 공연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성공적으로 끝났다.

공연이 끝나고는, 따로 마려된 별실에서 공연 주최자와 지인들이 모여 조촐한 연회를 열었다. 교수님 부부를 따라서 나도 들어가게 되었는데, 동네 아저씨인 선우재덕씨가 사람들에게 어묵을 나눠주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요즘 어묵 장사를 시작했다나. 막걸리야 그렇다 치고, 와인은 대체 어묵과 어떤 조화를 이루는 거지.

단장, 후원회장, 총무, 지휘자, 저명인사 등등의 인사가 이런 자리에서 빠질 수 없지.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하도 사람들이 먹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기에 내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경청 해 주었다.

이번 연주회가 제1회였다고 한다. 지역 사회 공헌이라는 공익적 기치를 내걸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지역 사회에 공헌을 하겠다는 것인지 나로선 잘 알 수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공연은 여는 자체로 막대한 지출이 될 뿐이다. 아무리 공익적 목적이라지만, 아마추어 공연으로 돈을 벌수야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CEO들의 세계이니, 오히려 돈 빠지는 수챗구멍을 열어두는 것이 자금 마련을 위한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으려나. 어떤 아줌마는 이 모임 구성을 위해 1억 원을 선뜻 내놓았다는 얘기도 있다. 뭐 CEO들의 호사스러운 취미 활동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건전하게 논다는데, 차라리 칭찬을 해줘야지.

아무튼 좀 웃긴 하루였다.


2009/11/07 03:03 2009/11/0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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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집 앞마당에 내걸린 잭오랜턴


Happy Halloween!!!

‘할로윈’ 앞에 ‘해피’라는 수식어가 가당키나 한 건지 모르겠다.

모든 사령(邪靈)들의 날인 ‘할로윈’이 모든 성인들의 날인 ‘만성절(11월 1일)’ 전날인 것이 재밌다. 사실 ‘Halloween’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든 성인들의 날 전야’라는 뜻의 ‘All Hallows Eve’가 줄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밤중에 온갖 잡귀들이 인간 세상으로 나와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면, 동이 틀 무렵부터는 다시 성인들이 세상에 고요와 안정을 찾아준다는 것일까.

이런 성(聖)과 사(邪)의 뚜렷한 대비 때문에 할로윈 시기가 되면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1940년, 디즈니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다. 총 8곡의 클래식 음악에 그 음악의 성격을 잘 살린 애니메이션을 결합시켜 만들어낸 일종의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인데, 비록 공개 당시에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 했지만, 이후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명작 애니메이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곡이 바로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과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다. 해설자는 ‘profane’과 ‘sacred’의 대비라는 표현을 썼다. 말 그대로다. 보름달이 뜬 밤, 하늘은 온통 요기(妖氣)로 가득하다. 불협화음이 자아내는 음산한 분위기 속에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의 모습이 보인다. 이윽고 산 정상에서 마왕(魔王)이 눈을 뜨고, 검은 그림자로 산하(山下)를 뒤덮어 잠들어있던 귀신들을 깨운다. 기괴한 형상을 한 귀신들이 모두 산으로 모여들고, 이윽고 산에 피어오른 지옥의 화염을 둘러싸고 광란의 축제가 시작된다. 마왕은 지옥의 불길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귀신들을 희롱한다.

그러나 축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멀리 마을에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지옥의 불길은 순식간에 잦아들고, 귀신들은 움츠러든다. 밤의 축제가 끝났다. 귀신들은 흩어지고,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흐르는 가운데, 멀리서 손에 등불을 밝힌 순례자들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성절은 835년에 생긴 이래 오늘날까지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축일로 남아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친숙한 것은 ‘할로윈’이 아닐까 싶다. 귀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한 위인도 아닌 ‘성인’이 비기독교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념인데 비하여, 잡귀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고, 또 잡귀들에 대한 위령제의 성격을 띠는 제식이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 할로윈의 개념 자체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Mussorgsky (1839 - 1881)

Night On Bald Mountain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장난스럽고 유쾌한 느낌이 드는 ‘할로윈’보다는, 차라리 ‘파우스트’에 묘사된 ‘발푸르기스의 밤(4월 마지막 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사실 이 곡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축일인 ‘성 요한 축일 전야제’인데, 이 날 역시 명칭과 날짜만 다를 뿐 ‘발푸르기스의 밤’이나 ‘할로윈’과 성격이 같다. ‘축일의 전야’라는 것은 할로윈과 판박이고, 마귀들이 ‘트라고라프’라는 바위산 정상에 모여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는 것은 ‘발푸르기스의 밤’ 전설에서 산 이름만 바뀌었다는 느낌이다.

이 곡은 본래 무소르그스키의 미완성 오페라인 ‘소로친스크의 시장’에 삽입될 예정이었던 곡이라고 한다. 무소르그스키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고, 작곡가로서 경력을 시작한 뒤로도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서 도중에 쓰다가만 곡들이 여럿이다. 역시 천재(天才)가 있었던지 착상이 뛰어났지만, 빈약한 이론 지식 때문인지 착상한 멜로디의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완벽히 완수하지 못 한 경우가 빈번하다. 한편 오케스트레이션의 귀재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나 라벨 같은 이들이 무소르그스키가 생전에 남겨놓은 음악의 파편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관현악곡으로 다시 편곡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라벨이 관현악 판으로 편곡한 ‘전람회의 그림’ 등이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편곡을 했다.

2009/10/31 06:49 2009/10/3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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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시청하는 Arte TV의 광고를 통해 알게 된 바흐 페스티벌. 지난 토요일에는 바흐 페스티벌 공연 중 하나인 ‘바흐를 위하여’를 보고 왔다. 소프라노 임선혜가 바흐의 칸타타를 노래했고, 메튜 홀스가 지휘하는 레트로스펙트 앙상블(Retrospect Ensemble)이 연주를 했다.

레트로스펙트 앙상블의 전신은 1980년에 창단된 영국의 고음악 연주단체 킹스 콘소트(Kings Consort). 20년 넘게 이 팀을 이끌어온 로버트 킹이 2007년에 물러나고, 2009년에는 이름까지 레트로스펙트 앙상블로 바꿨다고 한다.

고음악 연주단체 답게 악기도 바로크 시대 악기를 사용한다. 하프시코드(쳄발로)와 바로크 바이올린, 바로크 오보에와 바로크 바순 등…….

장소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 자리는 맨 뒷 열 좌측에서 두 번째 자리. 사실 티켓링크 쪽에 더 좋은 자리가 여럿 남아 있었는데, 티켓링크의 그 팝업 플래쉬 예약 시스템이 내 컴퓨터에서는 지랄 맞게 느려서 좌절. 티켓 한 장 예약하는 데 거의 30분쯤 걸렸다. 겨우겨우 끝마치고 결제 하려는데 무슨 보안 프로그램 안 깔렸다면서 액티브액스 떠주시고 처음부터 다시. 욕을 바가지로 퍼부은 다음 인터파크에서 예매해버렸다.

연주 프로그램은

칸타타 <바로 그 안식일 저녁에> BWV 42 중 신포니아

칸타타 <내게 주신 복에 만족하나이다> BWV 84

<오보에 다모레와 현을 위한 협주곡 A 장조>, BWV 1055

-인터미션-

<오케스트라 모음곡 1번 C장조> BWV 1066

칸타타 <이제 사라져라, 슬픔의 그림자여> BWV 202

사실 오케스트라 모음곡 1번 하나 바라보고 간 연주회였다. 오보에 협주곡은 제목만 오보에 협주곡이지, 원래 악보는 소실되어서 주로 쳄발로 협주로 연주된다. 그런데 이 날은 정말 오보에 협주로 연주를 하더라. 하지만 솔직히 오보에의 연주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근대에 들어 가장 발전한 악기가 관악기라는 것을 절감할 만큼, 바로크 오보에의 소리는 현대 오보에의 그 청아한 소리 대신 어딘가 짓눌린 듯한 갑갑한 소리가 났다. 악기의 한계를 제쳐두고라도 연주자의 실력이 그렇게 뛰어났다고 볼 수도 없었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실수가 있었던 것. 엉뚱한 것 가지고 트집 잡을 생각은 없지만, 자기 쉬는 부분에서 다리를 꼬고 앉는 거만한 태도를 보일 정도의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바로크 시대의 오보에. 현대의 오보에와는 생김새부터가 많이 다르다.>

BWV 42 신포니아는 이날의 기악 음악 중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었다. 하기야 성악곡 분야에 대해서는 통 무지한 나이니, 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만. 참고로 덧붙이자면, 바로크 시대에 ‘신포니아’라고 하면 오페라나 칸타타 같은 성악극의 시작 부분이나 중간에 삽입되는 기악 음악을 의미했다. 요즘 말로 옮기면 ‘서곡’이나 ‘간주곡’ 정도가 될까. 곡은 좀 심심한 편이었다. 아무래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니까, 낯선 것도 있고.

그래도 오케스트라 모음곡 1번은 상큼했다. 또 지휘와 연주를 같이 한 것을 처음 봤는데, 이것도 인상 깊었다. 건반 악기 연주자들에 한해서 이렇게 지휘와 연주를 같이 하는 경우가 있는데, 물론 고음악 연주단체에서는 상당히 일반적이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하는 것을 ?き振り(히키후리)라고 한다. ?く는 피아노 등을 ‘치다’란 의미이고, 振る는 지휘봉을 ‘흔들다’라는 의미에서 ‘지휘하다’의 뜻으로 통한다. 그러니까 합쳐서 ‘치며 지휘하기’가 된다. 영어나 한국어에 이런 표현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관객을 등지고 쳄발로 앞에 앉아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한편, 지휘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번 연주회의 수확이라면 역시 소프라노 임선혜의 칸타타였다. 성악은 별로 즐기지 않아서 모두가 생소한 곡들이었지만, 과연 명불허전이라 음색이 고울 뿐만 아니라 기교도 완벽해서 처음 듣는 곡들임에도 감명을 받았다.

이날은 연주 실황이 라디오로 방송 되었는지, 객석 뒤편에 설치된 데스크에서 진행자가 연주 사이사이에 계속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라.

연주회는 주로 큰 홀로 다녔고, 체임버 뮤직을 실황으로 즐길 기회는 별로 없었지만, 이런 분위기도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아무래도 이런 연주회까지 찾아 올 정도 관객들이니 매너도 좋았고 말이다.

100% 만족한 연주회는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좋은 기분 전환이 되었다.

2009/10/19 03:55 2009/10/19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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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명동에 갈 있었는데, 그때 대한음악사에 잠깐 들러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론도’의 악보를 사왔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Rond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C-dur, K. 373

이 곡은 단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엄밀히는 ‘협주곡’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보통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하면, 각각 쾨헬 넘버 207, 211, 216, 218, 219가 붙여진 총 5개의 협주곡을 떠올리게 된다. 서로 가까운 숫자들의 나열이라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 5개의 협주곡이 비슷한 시기에 작곡되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말년 작품 번호가 600대이니, 200대 초반의 번호가 붙은 곡들이라면 겨우 35년에 불과한 모차르트의 생애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작곡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사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부터 5번까지는 모차르트가 겨우 19세였던 1775년 4월부터 한두 달 간격으로 완성되어, 같은 해 12월까지 약 9~10개월 만에 모두 작곡이 완료되었다. 협주곡 1번의 작곡 시기가 1775년 4월이 아니라 1773년 4월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상당히 신빙성이 있지만, 2번부터 5번이 1775년 6월부터 12월 사이에 모두 작곡된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토록 짧은 시간동안에 작곡되었음에도 협주곡 3, 4, 5번은 바이올린 협주곡 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며, 오늘날 수많은 전공생들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는 ‘교재’이자, 프로 연주자들이 사랑하는 단골 레퍼토리가 되어있다. 이를 보면 정말이지 모차르트에겐 작곡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조차 필요치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야 여기서 새삼스럽게 떠들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우리의 호기심을 끄는 한 가지는 어째서 5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한 것이 한 시기에 집중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더불어 1775년 이전이나 이후에는 정말 모차르트가 쓴 바이올린 협주곡이 단 한 곡도 없는 것일까?

전자의 의문점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시작하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후자의 의문점을 해결 해 보도록 하자.

우선 1775년 이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없을까? 1933년이었던가,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마리우스 카사드쉬라는 사람이 ‘모차르트의 사라진 바이올린 협주곡을 발견했다’며 세상에 악보 하나를 공개했다. 그것이 ‘아델라이데 협주곡’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협주곡으로, 카사드쉬의 주장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10살 때쯤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곡은 세상에 발표된 직후부터 줄곧 위작 논란에 시달렸고, 결국 현재는 이 곡이 카사드쉬의 위작이라는 것으로 잠정 결정이 난 상태이다.

그렇다면 1775년 이후에 작곡한 협주곡은? 사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6번과 7번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두 작품이 줄곧 1775년 이후에 작곡된 모차르트의 협주곡이라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재는 이 두 작품도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니라 위작이라는 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위작으로 여겨지는 아델라이데 콘체르토와 6번, 7번 협주곡을 제외하면, 3악장 구성으로 완벽하게 쓰인 협주곡은 더 이상 없다. 아마도 모차르트는 1775년 불과 몇 달 사이에 정열을 쏟아 부어 5개의 협주곡을 작곡한 뒤로는, 더 이상 이 장르에 미련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전 악장을 갖춘 완전한 협주곡이 아닌, 단악장으로 된 것들이라면 1775년 이후에 작곡된 것도 몇 개가 있다. K 261, 269, 373이다. 사실 이 곡들은 독립된 악곡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가 자신이 이미 작곡 해 놓은 협주곡들의 일부 악장을 대체할 목적으로 작곡한 것이다. K261번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다지오’란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본래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의 2악장을 대체할 목적으로 작곡되었다. K269번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론도’인데, 이것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3악장을 대체하기 위해 작곡했다.

오늘 소개하는 K373번은 조금 특이하다. 이 곡은 단악장짜리 곡이지만 모차르트가 자신이 작곡한 협주곡의 한 악장을 대체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작곡 시기는 1781년 4월로 되어 있다. 이 곡에 관해서는 한 가지 일화가 전해 온다. 모차르트가 빈에 머무르고 있을 때,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친분이 있는 귀족(혹은 대주교의 아버지?) 저택에서 음악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 연주회에서는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안토니오 브루네티와 대주교 궁정 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들이 연주할 협주곡의 3악장에 문제가 있었다.

일설에는 3악장이 통째로 없어졌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애당초 그런 곡이 선곡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곡에 대해 까다로워 작곡가들에게 수정 권고도 서슴없이 했던 안토니오 브루네티가 3악장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사실 모차르트의 K261이나 K269도 브루네티의 권고에 따라 작곡하게 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아무튼 결국 3악장을 새로 작곡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곡은 소위 말하는 ‘땜빵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작곡된 C-Major의 론도는, 경쾌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명곡이다. 비록 길이는 짧고 구성도 간결하지만, 오케스트라 반주 위로 떠오르는 솔로 바이올린의 유려한 주제 선율은 일품이다.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모차르트는 역시 모차르트다.

악보는 피아노 반주보가 딸려서 가격이 약 2만 5천원정도 한다.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겨우 4페이지(양면 인쇄로 1장!)의 솔로 악보인데, 억울하단 느낌도 든다. 악보에는 손가락 번호가 꼼꼼히 쓰여 있어 매우 친절 해 보이지만, 따라 짚어보면 결코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어렵게 만들어놨어.

아무튼 언젠가는 멋지게 연주 해 보고 싶은 곡. 누군가 피아노 반주를 해줘야 할 텐데…….

2009/09/03 04:41 2009/09/03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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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이, 벌써 여름은 저만치 물러가고 가을이 가까이 오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브람스에 빠져있다.

 “자유롭지만 고독하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오늘 소개할 곡은 The Variations on a Theme by Haydn Op. 56a(하이든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 번호 56a)이다. 이 곡은 1873년 여름에 작곡되어 같은 해 11월에 브람스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편성은 2관 편성.

이 곡은 이미 제목만으로도 우리에게 상당히 많은 정보를 제공 해 주고 있다. 우선 곡의 형식이 ‘변주곡’이라는 것. 이 ‘변주곡’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상당히 친숙하다. 그런데 변주곡이 대체 무엇이란 말이지?

본래 변주(變奏)란, 어떤 선율을 여러 가지 작곡, 연주 상의 기법을 사용하여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변주’의 방식으로 곡 전체를 구성한 것이 이른바 ‘변주곡’으로, 악곡의 주제 선율을 시종 다양한 기법으로 변주해 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변주곡은 상당히 자유로운 작곡 형식이다. 기본적으로 변형을 할 원형의 멜로디(주제)가 초두에 제시되는 것은 당연한 약속 같은 것이지만, 이후에 어떤 식으로 몇 번 변주가 이루어질 것인가는 전적으로 작곡가의 개성에 달려있다.

이런 변주곡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명곡들로는 하나의 선율을 무려 30번 변주하여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기교를 이용한 변주의 진수를 보여주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 그리고 바로 이 카프리스 24번의 주제 선율을 이용하여 전혀 새롭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관현악판 변주를 들려주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끄는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등이 있다.

브람스 역시 변주곡 형식의 곡들을 남기고 있는데, 오늘 소개할 ‘하이든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변주곡 역사에서도 각별한 위치를 지닌 곡이다. 대체로 변주곡은 장대한 심포니나 모음곡 같은 비교적 규모가 큰 악곡의 한 악장으로 작곡되는 것이 통례다. 그런데 ‘하이든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변주곡 형식이면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작곡된 최초의 관현악곡인 것이다.

사실 이 곡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먼저 작곡되고, 오케스트레이션은 나중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버전이 먼저 공개가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먼저 작곡된 피아노 버전이 오케스트라 버전에 밀려 작품 번호 56b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곡의 제목으로 돌아가 또 다른 정보를 탐색 해 보자. 곡 초반 2분가량 제시되는 이 근사한 주제 선율이 어디에서 얻어졌을까? 곡의 제목은, 이 주제 선율이 하이든의 작품에서 가져온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선율이 정말 하이든이 작곡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Haydn, Divertimento in B-dur 2nd mov.

하이든의 디베르티멘토 1번으로도 알려진 곡의 2악장이다. ‘Chorale St. Antoni(성 안토니의 성가)’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여기의 멜로디는 분명 브람스가 변주에 사용한 멜로디가 맞다. 그러나 이 곡을 정말 하이든이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오늘날에는 오히려 다른 작곡가의 작품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러나 설령 이 희유곡을 하이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작곡했다 하더라도, 과연 그 제3의 작곡가가 주제 선율을 작곡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성 안토니의 성가’라는 제목이 그런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지만, 지금까지는 이 부제와 관련하여 주제 선율의 근원을 밝혀줄 어떤 추가적인 정보도 발견되지 않았다.

여전히 미스터리인 아름다운 주제 선율이 제시된 뒤, 이후 이 주제가 총 8번 변주된 다음, 피날레로 마감한다. 8번에 걸쳐 다양한 시대의 기법들로 폭넓은 변주를 들려주는데, 각각의 변주가 모두 개성 넘치고 아름답다. 개인적으로는 정열적이면서도 유려한 1번 변주가 마음에 들지만, 여러분들의 선택은 어떨지?

본래 하나의 곡으로 쉼 없이 연주되는 이 곡을 변주별로 쪼개서 올린 것은, 각 변주간 구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통째로 된 파일의 용량이 커서 안 올라간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 대충 보니까 파일 크기가 10메가가 넘어가면 업로드가 안 되는 것 같다. 이건 텍스트큐브 자체에 걸려있는 제한인 걸까? 이래서는 용량 6기가의 서버를 사용하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 수정이 안 되나.

지휘는 토스카니니.

2009/08/30 05:25 2009/08/30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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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음악/오페라

기사(騎士)이자 가수인 탄호이저는 천성이 오만하며 절제보다는 탐락을 미덕으로 여기는 자다. 용모가 수려하고 노래 솜씨가 뛰어나서 그를 흠모하는 아가씨들이 많았지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 방자한 청년에게 걱정스런 시선과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탄호이저 역시 순수니 절제니 신앙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가치들을 전통의 미덕이라며 고수하고 있는 이 촌구석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는 진심으로 이 따분한 마을은 자신이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여겼다.

결국 탄호이저는 길을 떠났다. 관능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열정에 있는 그대로 도취되기 위해, 이윽고 환희의 마력에 휩싸여 영원한 쾌락을 누리기 위해. 그리하여 그가 도착한 곳은 베누스베르크, 즉 ‘비너스의 도시’였다. 술에 취한 사티로스와 목양신들이 바쿠스 신의 여사제들을 거느리고 흥청망청 향락을 벌이는 무릉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보다 더 매력적이며, 꿀보다도 더 감미로운 목소리를 지닌 비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랑의 여신 비너스는 잘생기고 누구보다도 노래 솜씨가 뛰어나며 관능에의 욕망으로 충만한 이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탄호이저는 비너스의 마음을 사, 그녀가 지배하는 쾌락의 정원에서 신과도 같은 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탄호이저가 하프를 타며 노래를 시작하면 어느 새 비너스는 그의 등 뒤로 다가와 흰 팔로 탄호이저의 늠름한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부드러운 가슴을 등 뒤에 맞대며 귓가에 달콤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러면 탄호이저는 정념이 솟구치고 피가 끓어오르며 하프를 타던 손을 멈추고 열락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비너스는 이 세상의 모든 미를 합한 것보다도 아름다웠고, 이 세상 모든 사랑의 기교를 몸소 가르쳐주었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일찍이 꿈꿨던 모든 것이 이루어진 비너스의 도시에서, 그러나 탄호이저는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늘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요정들은 탄호이저의 노래 소리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다. 비너스의 빛나는 얼굴도 더 이상 고향 마을 처자들의 소박한 용모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관능에의 진한 욕구가 식자, 침대 위에서의 향락도 더 이상 그를 사로잡지 못 했다. 그러자 탄호이저에게는 갑자기 비너스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솟구쳤다. 마치 자신이 비너스의 포로가 되어, 잘못된 향락의 길로 빠진 피해자처럼 생각되었다. 가슴 한편에서 새로운 삶, 무절제와 탐락을 벗어던지고 보다 의식이 있고 신사적인 삶에 대한 열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탄호이저의 눈은 새로운 의지로 반짝이는 듯했다.

떠날 때가 되었다. 탄호이저는 비너스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러자 비너스는 노발대발 화를 내며 탄호이저를 저주했다. “배신자! 당신을 붙잡지는 않겠어. 그러나 당신이 요구하는 것은 곧 당신의 파멸이 될 거야. 결코 평화를 찾지 못 할 사람. 결코 용서를 얻지 못 할 그대. 그러나 치유를 원한다면, 그때는 내 품에 돌아오게 되겠지.” 그러자 탄호이저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나는 당신에게서 평화와 안식을 찾지는 않을 거요. 나의 구원은 성모 마리아에게 있으니까!”

베누스베르크에서 빠져나오자,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하늘같았다.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졌다. 새들의 지저귐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축복하는 소리로 들렸다. 자기도 모르게 자세를 바로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자못 신사적인 태도로 말을 몰았다.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내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 삶을 살리라. 참된 사랑을 찾고, 참된 신앙을 가지리라!

이윽고 탄호이저는 자신의 고향 마을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그럴수록 탄호이저의 마음 한 구석은 무거워졌다. 한때 그토록 거만하게 굴었던 나를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그들을 경멸하고 오만한 태도로 마을을 떠났는데, 이제 와서 다시 돌아가다니! 마을 근처에 이르자 몇몇 사람들이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과거에 오만방자했던 탄호이저에게 경계심을 품었다. 그러나 탄호이저가 신사적이고 겸손한 태도를 취하며 인사를 하자, 마을 사람들은 경계를 누그러뜨렸다. 그들은 탄호이저가 오랜 시간 넓은 세계를 여행하며 드디어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마을 사람들은 재능 있는 젊은이가 성숙해서 돌아온 것을 크게 반겼다. 탄호이저는 마음 한 구석에서 죄책감을 느꼈지만, 마을 사람들의 환대에 이내 그 죄책감을 벗어버렸다. 그는 정말 자신이 마을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성숙한 인간, 새로운 사람이 된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엘리자베트. 지난날 탄호이저에게 그토록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던 그녀가 아직도 그를 못 잊고 있다고 한다! 엘리자베트는 바르트부르크의 노래의 전당에서 오래전에 떠나간 탄호이저를 아직도 그리워하며 회상에 잠겨있었다. 볼프람의 안내를 받고 노래의 전당으로 간 탄호이저는 엘리자베트와 재회하고, 그녀에게로 자신을 이끈 기적을 찬양하며 이 조신한 아가씨의 마음을 다시 휘어잡기 위해 달콤한 말들을 쏟아냈다.

바르트부르크의 영주는 탄호이저의 귀환 소식을 듣고 그를 환대하는 의미에서 노래 경연 대회를 개최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경연 대회를 통해 탄호이저가 그동안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알고 싶어 했다. 탄호이저는 흔쾌히 경연 대회의 참가를 수락했다.

이윽고 노래 경연 대회가 시작되었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인가가 노래의 주제로 던져지자, 이 정숙한 도시 바르트부르크의 사람들은 저마다 진실 되고 고귀하며, 정신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잠자코 듣고 있던 탄호이저는 점점 이 순진한 사람들의 생각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사랑의 본질이라고? 이 자리에서 나보다 그것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누가 뭐래도 나는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의 사랑의 독차지하였던 사람이다! 정신과 영혼의 사랑?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맑은 샘? 그 정절을 지키는 지순함? 내가 이 사람들에게 진짜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야겠다!

“샘이 있다면, 나 불타는 갈증을 식히기 위해 그 샘으로 기꺼이 입술을 축이리. 샘이 마르지 않는 것은 마치 나의 갈망이 꺼질 줄 모르는 듯, 영원히 내 그리움이 불타도록 영원히 나 그 샘에서 활기를 찾겠소.”

마을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탄호이저가 성숙한 인간이 되어 돌아왔다는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 사람들은 그래도 마지막 기회를 부여하는 셈 치고, 진실함의 미덕을 가르치는 노래로 탄호이저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탄호이저는 이를 비웃으며 외쳤다. “우리의 육신에는 즐거운 향락이 어울려! 그리고 사랑은 그 향락 속에만 있지!”

그러자 귀부인들은 탄호이저의 음탕한 생각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얼굴을 붉히다 이내 황급히 자리를 피했고, 마을의 신심 깊은 기사들은 격분하여 탄호이저를 추방하려고 들었다. 그때서야 탄호이저는 자기가 그만 자제심을 잃고 어떤 위험을 초래하였는지를 깨닫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기사들의 거친 포승이 그의 몸을 휘감으려는 순간, 그 앞으로 한 여인이 몸을 내던졌다. 영주의 조카인 엘리자베트였다. 엘리자베트는 기사들 앞에 무릎 꿇고서 눈물로 호소했다. “나의 소원은 이 분의 구원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감히 이 사람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엘리자베트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탄호이저가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고통스런 참회의 길을 떠나는 마지막 기회를 부여 해 달라고 탄원했다.

엘리자베트의 헌신에 탄호이저는 죄책감을 느꼈다. 결국 자신이 돌아와서는 안 될 곳에 돌아왔음을 깨달았고, 변했다고 믿은 자신이 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새로운 삶의 의지로 믿었던 열정은 결국 향락에 대한 권태로움의 반대급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았다. “떠나겠소, 순례자들과 함께. 천사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로마로!” 탄호이저는 순례자들의 무리와 함께 로마로 향하는 고통스런 순례길에 올랐다.

그 뒤로 또 긴 시간이 흘렀다. 구원을 위해서라지만 탄호이저를 고생스러운 순례길에 보낸 엘리자베트는 날마다 고통스러워하며 예배당에서 탄호이저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이교의 신인 비너스와 향락에 빠져 젊음을 낭비하고, 신앙으로부터 등을 돌린 탄호이저가 구원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트는 나날이 얼굴이 창백해지고 몸이 야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로 순례 여행을 떠났던 순례자들의 무리가 바르트부르크로 돌아왔다. 엘리자베트는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뛰어나가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았지만, 그 안에서 탄호이저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엘리자베트는 절망했다.

엘리자베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성모 마리아에게 이제 그만 자신을 거두어 달라는 기도를 올린다. 볼프람이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 그녀의 집으로 데려다 주려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볼프람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홀로 바위산을 향해 걸어간다.

볼프람은 엘리자베트에게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음을 알지만, 그녀를 위해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홀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볼프람은 저녁별에게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엘리자베트를 결코 잊지 못 하는 자신의 인사를 저녁별이 대신 전해주기를. 이제 가냘프게 흔들리는 그녀의 생명이 꺼지고 나면, 하늘나라의 천사가 되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한편 탄호이저는 순례자들의 무리와 함께 고생고생하며 겨우 로마에 당도했다.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천국의 열쇠를 전해 받고 지상에서 그 권세를 대신 행사하는, 지상 교회의 수장 교황 앞에 엎드려 자신의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교황은 베누스베르크에서 그토록 오랜 시간 향락에 물든 생활을 하며 신을 져버린 탄호이저는 낡은 지팡이에 새싹이 돋지 않는 한 영원히 구원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저주를 내렸다. 탄호이저는 절망에 빠진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다른 순례자들과 떨어져 홀로 괴로움을 곱씹었다. 이제 그에게 돌아갈 곳은 베누스베르크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어느 밤, 베누스베르크를 향해 가다가 고향 마을 인근을 지나게 된 탄호이저는 한 남자의 노래 소리에 이끌려 다가간다. 그는 볼프람이었다. 볼프람은 탄호이저를 한 번에 알아보지 못 했다. 탄호이저는 다 헤진 옷을 걸치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한데다가 몹시 야위어 있었다. 그 옛날 자신감과 생기가 넘치던 아름다운 청년의 면면은 사라져버리고, 겨우 지팡이에 의지하여 힘겹게 서 있는 초라한 사나이가 있었을 뿐이었다.

탄호이저는 볼프람에게 베누스베르크로 가는 길을 묻는다. 어느 때고 치유가 필요해지면 결국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비너스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탄호이저는 스스로를 향해 자조 섞인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탄호이저의 체념을 눈치 챈 비너스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났다. 탄호이저는 모든 구원의 희망을 버리고 비너스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 시작했다.

비너스는 이제야 말로 탄호이저의 영혼을 취해 영원히 자기 곁에 두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탄호이저의 낯빛은 이미 시체처럼 어두워져 있었다. “지옥의 쾌락에…….” 탄호이저는 절규했다. 이때 볼프람이 그를 막아섰다. “전능하신 주여! 당신의 종을 구하소서!” 비너스는 거듭 탄호이저를 재촉했다. “비켜나시오, 내게서 멀리 떨어지시오!” 탄호이저는 볼프람을 향해 위협적으로 말했다. “한 단어가…….” 볼프람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당신을 구할 것이요.” “아니, 나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소. 비키시오, 볼프람!” “어서 내게로 와요, 탄호이저, 당신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 비너스가 팔을 벌려 탄호이저를 맞이하려 했다. “탄호이저, 한 천사가 당신을 위해 희생했소.” 볼프람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 천사가 곧 당신 위에 나타나 축복할 거요.” 그러나 탄호이저는 거의 비너스 품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윽고 볼프람이 외쳤다. “엘리자베트요!” 볼프람의 눈에서도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탄호이저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엘리자베트…….” 그때였다. 마을에서 장례 행렬이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애통함을 담아 노래를 불렀다. 비너스는 절규하며 사라졌다. 볼프람이 잠시 행렬을 멈추게 하고 탄호이저를 관 가까이에 데려갔다. 새벽의 어스름한 빛 속에, 그러나 새벽별처럼 평화로운 모습으로 엘리자베트는 관 속에 누워있었다. 탄호이저는 쓰러졌다. 그리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동녘에서 태양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온화한 빛이 한 순례자의 낡은 지팡이를 비추었을 때, 그 위에 돋아난 푸른 새싹에 맺힌 이슬이 반짝였다.

이상이 바그너의 음악극 ‘탄호이저’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바그너는 이 곡을 1843년 테플리체에서 작곡하기 시작하여 1845년에 완성한다. 대본은 하인리히 하이네, 호프만 등의 작품과 독일 전승들을 참고, 짜깁기하여 직접 썼는데 역시 내용은 좀 엉성한 편이다. 갈등 구조가 뜬금없고 해결이 갑작스럽다.

성(聖)과 속(俗)의 대립 구도, 그리고 타락과 회개의 이야기 구조는 서양 예술에서 줄기차게 반복되어 온 하나의 패턴이다. 비너스는 속된 사랑을, 엘리자베트는 성스러운 사랑을 상징하며, 타락한 삶으로부터 구원에 이르는 상승의 이야기 구조는 본 오페라의 주인공인 탄호이저의 삶 속에 매우 ‘극적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이런 뻔한 얘기는 그만 하자. 바그너의 음악극 속 주인공은 탄호이저이지만, 내 이야기 속 주인공은 탄호이저가 아니다. 재능이 넘치고 끝까지 방종하여 정신 못 차리다가 여인의 희생으로 구원 받는 행운의 사나이는, 이 블로그에서 주인공으로 거론될 자격이 없다. 21세기에도 ‘왜 여자들은 나쁜 남자에게 끌리나’ 같은 주제가 여전히 술자리 이야깃거리로 거론되고, 이를 다룬 심리학 서적이나 심지어 거지같은 소설도 줄기차게 출판되는 판에, ‘엘리자베트’를 주인공으로 꼽을 이유도 없다.

오히려 주인공을 찾아야 한다면 엘리자베트를 초월하는 진상 중의 진상, 그러나 정작 사람들로부터 주목도 제대로 못 받아 존재감마저 미미한 미련퉁이 남자, ‘볼프람 폰 에셴바흐’야 말로 이 블로그에서는 주인공으로 대접 받기에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자 그럼 위의 줄거리에서는 자세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이 한심남의 스토리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알고 보면 볼프람, 이 남자도 노래에 소질이 좀 있다. 탄호이저만큼은 아니더라도 노래 경연 대회에서 첫 타자로 노래를 뽑아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을 정도다. 그런데 성품이 지나치게 올곧다. 여인들을 보고 반할 수는 있지만, 차마 그들의 순수를 조금이라도 흐트러뜨리는 짓은 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탄호이저처럼 갈증이 나면 샘물을 들이키기는커녕, 이래서야 샘물을 퍼서 가져다준대도 입을 못 댈 사람이다.

볼프람은 엘리자베트를 남몰래 사랑하고 있었다. 탄호이저의 노래에 푹 빠져있던 엘리자베트가, 탄호이저가 떠나가 버린 뒤 상심에 잠겨있는데도 볼프람은 그 주위를 맴돌며 애만 태울 뿐 엘리자베트를 어찌 해보지 못 한다. 남의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어진 선을 과감하게 넘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볼프람에게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어느 날 탄호이저가 돌아온다. 지난날 탄호이저의 거만한 태도를 기억하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계심을 품을 때, 가장 먼저 탄호이저의 개심을 믿고 그를 환영한 사람이 다름 아닌 볼프람이었다. 그것은 볼프람이 탄호이저의 본심을 꿰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볼프람이 그렇게 믿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엘리자베트를 위해 가장 좋은 일이었으니까!

볼프람은 앞장서서 탄호이저를 엘리자베트에게로 데려간다. 이 장면에서 볼프람은, 배경이 되는 벽면에 서서 두 사람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윽고 두 사람이 감격의 재회를 하자, 자신에게는 희망의 빛이 사라졌다며 절망한다. 이런 미련퉁이! 이런 답답한 인간!

‘그녀만 행복하다면…….’은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만큼이나 역사가 깊고 해명이 불가능한 멍텅구리 순진남들의 심리다. 결국 볼프람, 너는 엘리자베트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어!

그러나 볼프람은, 평범한 순정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상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는다. 탄호이저가 순례지에서 돌아오지 않자 절망에 빠진 엘리자베트가 죽어가며 자신의 희생으로 탄호이저의 죄를 대속(代贖)하기를 비는 모습을 보고서, 한편에서 볼프람은 그녀의 가련한 숙명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바위산으로 홀로 올라가는 엘리자베트를 차마 붙잡지도 못 하고 그녀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이윽고 떠오른 저녁별을 붙잡고 하소연한다.

이 하소연이 저 유명한 아리아 ‘저녁별의 노래’가 되었다. 엘리자베트가 사랑한 사람은 탄호이저였다. 엘리자베트의 희생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도 탄호이저, 그리고 엘리자베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사람도 역시 탄호이저였다. 그러나 엘리자베트를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볼프람이다. 물론 이야기 속의 인물이니까 그랬겠지만, 볼프람은 자신이 결코 탄호이저를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볼프람은 자신의 역할을 엘리자베트의 조력자로 한정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다른 남자를 위해 희생하기로 한 결심까지 받아들이고, 그 숙명을 완수하는 것을 돕는다.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서도 그 미운 탄호이저가 비너스의 품으로 안기려 드는 것을 전력을 다해 막는다. 현대판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이 장면이 다루어졌다면 이때 볼프람은 탄호이저의 뺨을 주먹으로 한 대 후려갈긴 뒤, 땅 위에 엎어진 탄호이저를 깔고 앉아 멱살을 잡고 외쳤을 것이다. “정신 차려! 너 때문에 엘리자베트는 죽었단 말이야. 나의 엘리자베트가…….” 눈물이 뚝뚝.

오페라 계의 진정한 루저(looser) 볼프람. 종종 여인네들은 너무 쉽게 ‘나도 이런 사랑 한 번 받아 봤으면’하고 말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오페라 안에서조차 철저히 외면당하기만 하는 이 슬픈 사랑의 숙명은 도저히 구제 받을 길이 없다! 마치 지구가 태양 주위를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영원한 시간을 두고 맴도는 것처럼, 조금만 멀어져도 가슴에 서리가 내리고 조금만 가까워져도 속까지 시커멓게 태워버리는 이 바보 남자들의 가련함이라니.

오페라 탄호이저의 숱한 명곡들을 뒤로 하고, 이 세상 짝사랑으로 가슴앓이 하는 모든 순정남들을 생각하며 ‘저녁별의 노래’를 띄워본다.


Wie Todesahnung, Damm'rung deckt die Lande,
umhullt das Tal mit schwarzlichem Gewande;
der Seele, die nach jenen Hoh'n verlangt,
vor ihrem Flug durch Nacht und Grausen bangt!
Da scheinest du, o lieblichster der Sterne,
dein sanftes Licht entsendest du der Ferne
die nacht'ge Damm'rung teilt dein lieber Strahl,
und Freundlich zeigst du den Weg aus dem Tal.

O du mein holder Abendstern,
wohl grußt' ich immer dich so gern;
vom Herzen, das sie nie verriet,
gruße sie wenn sie vorbei dir zieht,
wenn sie entschwebt dem Tal der Erden,
ein sel'ger Engel dort zu werden.

죽음의 예감처럼 어둠은 땅에 내려
검은 옷자락으로 골짜기를 덮네
저 높은 곳을 희구하는 영혼도
어둠과 공포를 향한 비행이 두렵다
그때 네가 나타나는구나, 아 사랑스런 별
부드러운 빛이 멀리서부터 다가와
그 사랑스런 빛이 어둠을 꿰둟고
계곡의 길을 은은히 밝힌다

아, 나의 다정한 저녁별,
너에게 나 언제나 기쁘게 인사한다
나의 그녀가 너의 곁을 지나갈 때에
그녀를 끝까지 따르는 나의 인사를 전해다오
천국의 천사가 되기 위하여
그녀가 지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천국의 천사가 되기 위하여
그녀가 지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2009/08/10 03:17 2009/08/10 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