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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프로포즈도 한 적이 없다. 언젠가부터 결혼이라는 단어가 우리 둘 사이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는 했지만, 특정할 수 있는 어느 날 "결혼을 하자"고 정한 것은 아니었다. 치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어떤 흐름에 휩쓸리고 마는 우리의 인생처럼, 이번에도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덧 나는 결혼이라는 단계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이러한 이행을 매우 자연스러운 내 인생의 한 과정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인지, 혹은 언제부터 우리 사이에 언제 결혼이라고 하는 뚜렷한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와중에도 '결혼 준비'라고 하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입학식 날' 만큼이나 엄정하고 확실한 시작점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국이 광복을 맞은 지 정확히 69주년이 되는 지난 금요일부터 결혼 준비의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8.14 밤부터 8.15 금요일 아침까지

학창 시절에는 휴일이면 종종 오후 제법 늦은 시각까지도 잠을 자고는 했다. 아니, 고등학생 때만 하더라도 방학 중이나 휴일의 평균 기상 시간은 오후 1시 전후였다. 아마 대학생이 된 이후로, 그보다는 좀 더 확실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 이후로, 아무리 휴일이라 하더라도 오후 늦게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직장인이 되고나니 휴일 기상시간은 9시 전후, 늦어도 10시 반 이전이 되었는데(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나를 두고 여전히 '게으름의 죄악'에 빠졌다고 힐난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새벽닭이 울 때까지 밤을 충분히 즐길 체력이 더 이상 내게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 빨리 잠들면 그만큼 빨리 일어나게 된 다는 것. 요즘은 주말이라 하더라도 새벽 2시를 넘겨 자는 일은 드물고, 제아무리 늦어도 3시 언저리에는 반드시 잠들게 된다. 그 시간을 넘어가면 그 어떤 신나는 일로도 정신을 깨어있도록 유지시키기가 힘들다.

그래도 비교적 어제는 늦게 잔편이었다. 동탄에서 지찬이와 종필이를 만났는데, 이렇게 셋이서 모인 것은 거의 정확하게 1년 만이었다. 사실 만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그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만남이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것뿐인지도 모르지만.

동탄이라는 동네는 내가 한 때, 그러니까 결혼은커녕 연애에 대한 생각도 없던 시절에 단기적으로는 투자의 목적으로, 장기적으로는 내가 안거(安倨)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오피스텔이 있는 곳. 최근에 골치를 썩이던 세입자를 가까스로 내보내면서 오피스텔을 청소하기 위해서도 몇 번 들른 일이 있는 낯익은 동네. 그래서 가는 길도 잘 알고 있으니, 이곳에 살고 있는 지찬이의 편의를 위해 나는 기꺼이 동탄으로 찾아가기로 했던 것이다.

찾아가는 데에야 애를 먹지 않았지만, 밤의 동탄은 낮의 동탄과는 사뭇 달랐다. 내 오피스텔 인근이 설마 그런 엄청난 환락가였을 줄이야. 저녁 메뉴를 고르기 위해 이 가게 저 가게 둘러보며 고작 몇 블록을 오가는 사이, 도대체 호객꾼이 몇 명이나 달라붙었는지! 동탄의 공원 풍경은 참으로 기이하기까지 했다. 아직 그렇게 늦지 않은 시간, 제법 선선한 날씨에 동네의 젊은 주부들은 장바구니를 끼고 걸어가는가 하면, 어린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기도 했는데 이런 매우 일상적인 풍경 속에는 행인, 특히 남성들의 얼굴빛만 살피고 있는 호객꾼들의 무리가 마구잡이로 뒤섞여있었다. 서로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이질적인 풍경이 한 데로 겹쳐져있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몇 차례 호객꾼들의 끈질긴 제안을 물리친 끝에, 손님이 별로 많지 않은 양꼬치 집으로 들어갔다. 양꼬치 스무개 가량과 칭따오 한 병을 주문 해 놓고, 세 남자의 길고 긴 수다는 시작되었다.

1년 사이에 제법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만 보면 세 사람의 삶은 1년 전보다 훨씬 비슷해졌다. 세 사람 모두 직장인이 되었고, 세 사람 모두 만나는 사람이 있었으며, 현실에 대한 안주와 불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지닌 채 월급, 저축, 결혼, 주택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근심을 한 보따리 짊어지고 있었다. 이 시대 착한 남자들의 자화상이란!

11시쯤 맥주 두 병으로 간단하게 1차를 끝낸 우리는 다시 거리에서 몇 차례 호객꾼들의 집요한 접근에 시달리다가 24시간 커피숍에 들어가 앉았다. 거기서 다시 우리들의 수다는 12시를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정확히 새벽 1시였다. 서둘러 한 시간 전쯤 방전되어버린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갈아 끼우고, 유희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잘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깨어있었다. 아니, 어쩌면 깜빡 잠들었다가 소리를 듣고 일어난 건지도 모르지.

내가 잠든 건 아마 2~3시쯤이었던 것 같다. 깨어나 보니 9시 반쯤이었다.

2014/08/18 01:21 2014/08/18 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