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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초까지만 해도 나는 이상하리만치 활력에 넘쳤다. 하루 5시간을 자면서 퇴근 후에 바이올린 연습과 복싱을 병행하고, 매일 도시락을 만들고, 점심시간과 잠 잘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자투리 시간에 키케로 서간집 번역에 착수하는 등 정말 쉴 틈이 없을 만큼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러다가 수요일 눈 휘몰아치는 날씨 속에 트래킹을 하고 몸살이 났는데, 그와 함께 모든 기력을 잃어버렸다. 감기는 주말까지 날 괴롭혔다. 약을 먹으면 잠시 상태가 호전되었지만 약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열이 오르기를 반복. 결국 며칠을 약에 의지한 채, 약에 취해 보냈다.

지금은 저 모든 일들이 어떻게 가능했나 싶다. 1주일 째 운동을 가지 않았다. 오늘 간신히 바이올린 연습을 재개했지만, 두 시간 연습은 상당히 고됐다. 기운이 하나도 없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퇴근 후에 방에 돌아오면 몸은 저절로 침대로 향한다. 생각해 보면 근 몇 달 사이에 이렇게 게으르게 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생산적인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니, 하루라는 시간이 의외로 참 길다.

쉬는 동안, 도올 김용옥의 ‘대한독립운동사’라는 몇 년 전 다큐멘터리를 찾아서 보기 시작했다. 역사에 대한 나의 애호는 어디까지나 취미 수준에서 억눌러 두고 있지만, 이렇게 ‘인간의 이야기’를 마주할 때 나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결국 나의 사명은 학업에 있는 것일까? 온통 학자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집안에서 나 혼자만은 큰돈을 벌어보겠다고 경영학과로 진로를 택했건만, 지금 내게는 돈이며 집이며 차며 온갖 부귀와 영화보다도 저 연해주 벌판에 내버려져있는 연자방아의 화강암 맷돌에 얽힌 한 조각 이야기가 더 가치 있게 느껴진다. 페르시아의 왕이 되는 것보다 진리를 알고 싶다고 했던 그리스의 한 철학자가 생각이 난다.

나는 공부가 하고 싶다. 군대에서 어깨에 단 계급장과 남을 부리는 권력을 인생 성공의 척도로 삼는 저 졸렬하고 멍청한 인간들을 너무 많이 보고 살기 때문일까. 하지만 바깥세상이라고 해서 무엇이 다를까. 자본주의 사회라고, 자본에 그렇게 거대한 힘을 쥐어주면서 정작 그 자본의 획득이나 사용에 있어서는 아무런 도덕적인 책임도 묻지 않는 이 폭력적인 사회를 보라. 힘 있으면 깡패 짓을 하고 살아도 된다는 조직 폭력배들의 생각과 무엇이 다른가?

그 옛날 일본은 대동아공영이니 탈아니 하는 논리를 펴면서 주변국들을 침탈하고 인민을 학살하고 가혹하게 수탈했다. 그것은 20세기 제국주의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자유, 자본,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경쟁’과 ‘생존’을 기치로 내걸고 중소기업과 중소 상인들을 다 잡아먹으면서 전 국민을 자기 노동력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하는 대기업들의 행태는 과거 그 악랄했던 약탈자들의 행위와 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더 잘 살기 위함이라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그 옛날 일본의 제국주의가 농업 사회였던 이 땅에 백화점, 카페를 세우며 허망한 근대화의 환영을 퍼뜨렸던 것처럼, 오늘날에는 재벌들이 사람들에게 금융이니 부동산이니 유통이니 하는 말들과 함께 자본주의의 환상을 심고 있다. 빵 한 조각, 전구 하나라도 만들어내는 일은 비천하게만 생각하면서 큰돈을 굴려서 투자 수익을 내는 것은 능력이라고 칭송한다.

나는 저 빌어먹을 사회주의도 싫고 공산주의도 싫다. 하여튼 ‘주의’랍시고 무언가를 종교처럼 신봉하는 그런 광신적인 태도가 역겹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자본주의가 종교인가보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를 믿고, 불교는 불(佛)을 섬긴다는데, 자본주의는 자본교로 이름을 바꿔야 하지 않나. 맹신자는 신앙의 대상에 대해 도덕적 검증을 하지 않는데, 자본교의 많은 신자들도 그렇게 자본을 믿고 있을 것이다.

2012/02/16 00:57 2012/02/16 0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