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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교향악축제의 시즌이 다가왔다. 4월 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막을 열어 4월 20일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연주로 막을 내릴 때까지 총 18개의 교향악단이 무대에 오른다.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총 출동하고, 더불어 국내 유명 연주자 및 장래가 촉망되는 신진 연주자들의 협연도 감상할 수 있는, 그야말로 클래식 애호가로서는 놓칠 수 없는 축제의 장이다. 하지만 군인은 놓치겠지…….

2010 교향악축제 시즌에 나는 진주의 시퍼런 하늘 아래서 점호장과 연병장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실제 공연은 보러갈 수 없었지만, 임관 후에 교향악축제 공연을 줄기차게 방영해 준 Arte TV를 통해 대부분의 공연을 감상했다. 올해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보러 갈 생각이지만, 뭐? 시간이 허락?

다음은 교향악 축제 일정. 현재는 모든 프로그램이 확정되었지만, 각 오케스트라의 프로그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는 표를 달리 찾을 수가 없다. 달력 칸마다 오케스트라 이름을 예쁘게 새겨서 클릭하면 자세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게 해 놓기는 했다. 디자인의 시대라는데, 겉멋을 좇고 실용성, 편의성은 상실하고 있다.





1. 기대되는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금번 출연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연주자를 꼽자면, 아마 ‘클라라 주미 강’일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아는 사람은 아는 기대주였지만, 내 기억으로는 2009년도 쯤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부터 인지도가 대폭 상승했다. 이후 각종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면서 지금은 ‘기대주’에서 ‘스타’의 반열로 발돋움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 그녀가 연주할 곡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2010년도에 코리안심포니와의 협연으로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연주했었다. 그 때는 훨씬 체격(?)이 좋았는데, 이후 다이어트를 했는지 지금은 아주 날씬해졌다.



 

신현수

2008년도 교향악축제 때 들었던 신현수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잊을 수 없다. 이후 2009년 유베르트 수당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같은 곡을 연주했을 때에는 한층 더 심도가 깊어진 연주를 들려주었다. 종종 그 미모가 더 회자되기는 하지만, 정말 무게감 있는 연주를 들려주는 실력파 연주자다. 가끔 경쾌한 음악까지 너무 무겁게 연주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클라라 주미 강과 묘하게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작년 대원음악상 시상식 무대에는 이 두 사람이 함께 무대에 올라 사라사테의 곡을 듀엣으로 연주했다. 그때 이 두 사람을 촬영하던 카메라맨들 사이에서 누가 더 예쁘냐를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는 일화도……. 신현수도 역시 이번 무대에서 브루흐를 연주한다! 바로 스코틀랜드 판타지. 실은 그녀가 연주하는 ‘브루흐 1번’이 더 듣고 싶다. 1악장은 신현수의 연주 스타일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




권혁주

음악 외적인 것으로도 주목을 받는 위의 두 바이올리니스트와 달리, 이 투박한 외모의 남자 바이올리니스트는 오직 그의 음악성만으로 주목을 받는다. 서울시향 마스터피스 시리즈에서 연주한 모차르트 4번의 그 또랑또랑한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인터뷰를 보면 엄청난 연습벌레에 완벽주의자인 것 같은데, 음악에 대한 집중력이 대단한 것 같다. 이번에 그가 연주할 곡은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무난하게만 연주해도 박수갈채가 쏟아지는 곡이지만, 개성을 보이기에는 쉽지 않은 선곡일 수도 있다. 좀 더 특별한 차이코프스키 연주가 되기 위한 그 무엇을, 그는 가지고 있을까.

2. 오케스트라 & 지휘자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한민국의 대표 오케스트라. 협주곡 없이 프로그램을 구성한 것은 다소 오만 해 보이기까지 한다. 프로그램은 확정되었는데, 드뷔시의 La Mer와 라벨의 La Valse,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이다. 드뷔시와 라벨의 선곡은 확실히 의도적인 것 같다. 작년 신년 음악회 때에도 같은 구성으로 프로그램을 짜지 않았나? 그 때는 이 두 곡이 메인이었고, 신현수의 협연으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었다. 이번에는 메인 곡이 차이코프스키로 바뀌었다. 비창은 최근에 유포니아가 연주한 곡. 연주에 참여한 사람이라면 들으러 가기를 권하고 싶다.

성남시립교향악단, 새 상임 지휘자 임평용

내 고장의 교향악단. 그러나 연주회를 그리 자주 보러 가지는 않았다. 2009년 말, 베토벤 9번을 연주한 송년 음악회는 실망을 안겨줬을 뿐이다. 최근에 성남시향에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상임 지휘자가 바뀐 것이다.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특히 이번에는 위에서 언급한 기대주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와 협연을 준비하고 있으니, 더욱 기대가 크다. 하지만 난 역시 몇 달 후에 TV를 통해서나 볼 수 있겠지.

울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 김홍재

내 음악 생활의 원점, 오사카 대학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감격의 연주 무대에서 지휘를 해 준 분이 바로 김홍재 지휘자였다. 유학생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공교롭게도 한국인이라니. 그러나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결국 말 한 마디 붙여보지 못 했다. 연습 때 음악적 지시 외에 쓸데없는 말은 일절 하지 않는 과묵한 스타일. 메트로놈처럼 완벽하고 정확하게 타점을 찍는 지휘. 언젠가 한 번은 이 지휘자가 지휘하는 프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꼭 보러 가리라 마음먹었는데, 벌써 수년이 흐르도록 그 다짐은 지켜지지 못 하고 있다. 이번에 울산시향은 스타 첼리스트인 송연훈과의 협연으로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고, 메인으로는 말러 5번을 연주한다. 월요일 연주라 이것도 TV로나 볼 수 있을 전망이다.

3. 프로그램

한국 오케스트라들의 프로그램 구성은 안이하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그나마 익스플로러 시리즈니 마스터피스 시리즈니 여러 기획을 통해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려고 노력하는 서울시향 정도가 프로그램 구성에 고심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가을이면 온통 브람스, 겨울이면 온통 차이코프스키로 프로그램을 짜버리는 건 짜증까지 나게 한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별로 없는 국내 오케스트라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곡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결국 모든 오케스트라가 비슷비슷한 곡들을 연주하면 차별성이 없어져서 오히려 관객 몰이에 해가 될 뿐이지 않겠는가.

대중들이 클래식과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인 교향악축제에서 참신한 프로그램 구성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지만, 교향악축제의 역사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클래식 저변 확대’란 목표는 대체 언제까지 들고 갈 것인가? 이제 점차 지방 연주단체들의 실력도 향상되는 추세이니, 이런 대규모 축제일 수록 고심의 흔적이 역력한 독창적인, 그러면서 설득력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임으로써 대중과 클래식 애호가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이번 프로그램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시나 낭만 쪽에 치중되어 있고 간간히 모차르트 등의 고전파 작곡가가 눈에 띌 뿐이다. 현대 작곡가로는 스트라빈스키와 프로코피에프, 쇼스타코비치 등이 이름을 올리고는 있지만 페트루슈카나 교향곡 5번(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같이 유명세를 떨친 곡들 위주로만 선곡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스트라빈스키의 곡들이라면 불새나 페트루슈카 말고도 얼마나 다양한 곡들이 있는가? 듣기 편한 곡 중에서 고르자면 E 플랫 교향곡도 자주 연주되지는 않지만 훌륭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듣고 싶은 곡들은 참 많지만, ‘매력적인’ 프로그램은 별로 없다.


2011/03/23 01:20 2011/03/23 01:20